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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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불안의 바다서 눈 덮인 산사 떠올릴 때 10년 전 겨울, 첫 회사를 그만둔 나는 <모비 딕>을 들고 어느 산사에 갔다. 책을 만들며 밥벌이를 하는데도 두꺼운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게 억울해서 홧김에 산 책이었다. 나는 두툼한 책을 책상에 놓아둔 채 연이은 야근을 견뎠다. 몸과 마음이 지쳐 탈진할 지경일 때 표지의 고래 그림을 보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면 차분히 이 책을 읽을 거라고, 나는 당장 도망치자며 아이처럼 조르는 자신을 어르고 달랬다. 그런데 모처럼 산사에 앉아서 읽기 시작한 <모비 딕>은, 슬프게도, 무지막지하게 재미가 없었다. 물론 당시의 내게 그랬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책이 800페이지 내내 고래를 쫓고 싸우는 투쟁과 파멸과 분노와 우정의 이야기일 줄 알았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지만, <모비 딕>은 고래에 대한 방대한 박물지이자 백과사전의 성격이 강했다. 고래의 어원과 옛 문헌, 포경선의 구조, 선원의 역할, 포경과 고래 해체 기술, 심지어 포경 도구에 이르는 상세한 정보를 저자 허먼 멜빌은 놀라운 솜씨로 소설의 서사에 결합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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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왕을 칭찬하던 맹자 마음처럼 대학 시절, <맹자>를 배웠다. 물론 자발적 학구열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필수 과목이었다. 열등생이었던 나는 뭔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다. 특히 맹자와 왕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앞부분 구성 자체가 괴로웠다. 맹자는 융통성 없는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던 반면, 왕들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첫머리에서 양혜왕은 맹자에게 묻는다. 어르신께서 먼 길 와주셨으니 우리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죠? 보통 사람들은 허허 웃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시느라 수고했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하필 이익을 말씀하셨습니까? 오직 어짊과 의로움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의로움이 왜 이익보다 중요한지에 대한 설교가 하염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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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소년 간첩들 울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속초에 다녀왔다. 설악산과 동해안 사이에 자리한 이 아름다운 땅에서라면 유쾌하고 가벼운 잡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실향민 사진가가 찍은 낡은 설악산 사진집, 이북 출신 고깃배 선장이 손으로 쓴 자서전 같은 것을 찾아다니며 분주한 가을을 보냈다. ‘속초(束草)’라는 이름은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쓴다. 읍이나 면이 아닌 ‘시’의 명칭이 이렇게 소박한 한자어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원은 분분하다. 속새풀이 많아서, 영금정 옆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둔 것 같은 모습이라서, 속초의 지형이 하필이면 누운 소를 닮아서, 심지어 울산바위에 새끼줄을 묶어줄 테니 도로 가져가라며 울산 원님에게 대들었던 신흥사 동자승이 있어서. 이 모든 이야기가 멋지고 예쁘다. 먼 옛날의 정치세력이나 거창한 지형을 이름으로 삼은 곳들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부드럽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속초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관광객도 많고, 인구도 조금씩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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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언어로 예술을 오염시키는 방법 기관의 자문이나 심사에 참여하는 일이 늘었다. 중년에 다다른 나이와 잡다한 직함들 때문일 것이다. 10여년간 사진에 대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일을 해온 터라, 작가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판단하는 자리에 가기도 한다. 물론 마냥 즐겁지는 않다. 지원서를 읽다 보면, 작가들이 해온 작업과 그들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회의에서 만나는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조심스럽다. 간혹 작업을 함부로 단정짓는 이들도 있지만, 그 말을 야멸차게 끊는 이도 나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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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함께 한자를 공부하자 나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다. 독자들의 언어를 상상하고 변화를 가늠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무지하다고 탓하는 습관이 내게는 없다. 주어진 원고를 잘 읽히는 한국어로 다듬는 일도 벅차다. 문제는 우리가 ‘한국어’라고 부르는 모호하고 흐릿한 대상이 수천만의 개인이 사용하는 언어들의 집합이라는 점이다. 교육 수준과 독서량뿐 아니라 출신 지역이나 가족 구성, 심지어 식습관이나 취미 생활에 따라서도 언어는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받은 원고 중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라는 표현이 있다면, 편집자들은 ‘심심한’을 ‘깊은’으로 고친다. 문맥상 반드시 사과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야 한다면 그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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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목이 곧은 이들의 슬픔 초여름부터 합천을 다녔다. 깨진 그릇 조각과 녹아내린 유리조각, 낡고 오래된 통장과 문서 같은 것들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땅거미가 드리워진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차로 한참 달려 들어가다 보면, 합천과 해인사가 놓인 지형을 ‘지극히 깊다’고 표현하던 건축사학자 전봉희 교수의 명료한 설명이 떠오르곤 했다. 특히 옛날에는 영남 서부 내륙의 한복판에 자리한 합천 땅에 다다르기 위해 거친 산자락과 굽이치는 물줄기를 겹겹이 지나야 했을 것이다. 물론 특정한 지역을 ‘멀다’거나 ‘깊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충분히 신중해야만 한다. 이 말은 서울이나 대도시를 ‘가까운’ 곳으로, 지역을 ‘먼’ 곳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과 서쪽은 험준한 소백산맥으로, 동쪽은 영남의 수많은 지류가 합류하는 낙동강으로, 남쪽으로는 지리산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솟아난 산들로 둘러싸인 이 지역을 설명하는 데 마땅한 다른 표현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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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둡고 흐릿한 이의 존경심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갖게 된 확신이 있다. 죽도록 노력하더라도 나는 어느 한계 이상의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얄팍한 공부나 흐릿한 판단력 때문만은 아니다. 전자는 계통적이고 성실한 독서와 배움으로, 후자는 눈 밝은 동료들과의 문답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이 꽤 필요하겠지만. 에둘러 말할 생각은 없다. ‘서울 출신의 고학력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솔직히 저 비릿한 단어들 중 몇 개는 이미 반쯤 부서진 이빨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듯이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소수자성을 찾아내 들이밀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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