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주백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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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책 ‘Song of Ariran’의 동북아 문화사 김산의 회고록만큼 여러 국가에서 번역한 경우는 없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아리랑의 노래>를 펴낼 정도였다 일본, 중국, 한국에서 김산의 자서전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매개물이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맥락이 있었다 특히 한국서 김산의 자서전은 민주화 과정에서 이념의 벽을 넘어서며 민족독립정신도 들여다보고, 개인 삶의 자세도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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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위기의 시기, 필요한 리더십과 버려야 할 리더십 위기의 시기에요구되는 리더십은목표를 명확히 제시해총력을 결집하게 하며그 과정의 다양한 문제를씨름하며 결단하는행동지향형 실무 자세를취하게 한다 12·3 친위쿠데타 이후한국 사회에도위기 리더십이 존재한다헌정 질서 회복을 향해나아가면서도갈등으로 치닫지 않도록상황을 잘 관리함으로써이중권력 상태를 만든집단리더십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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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친위 쿠데타 진압으로 민주공화를 재단장하자 87년 체제는 공화를 사장시킴으로써 주권과 권력 과점의 격차를 조장했다. 그 폐단은 내란 정국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평시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순간에도 ‘법의 지배’가 관철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조화하면서 공공성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민의 덕성’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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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김산의 ‘아리랑’과 12·3 친위쿠데타 친위쿠데타 기획자들은두터워지는 시대정신을반국가세력의준동으로 간주하여척결하겠다고 밝혔다시민 공감을 얻기 어려운명분을 내세우며권력욕만 드러냈다 실패했기 때문에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실패했어도 많은 사람의공감을 얻는 경우는 많다일제하 공산주의운동에참가한 사람 자서전인‘아리랑’의 주인공김산의 삶이 그랬다그는 실패 연속에도 불구조선독립 향한 민족의식을놓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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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과잉 이념과 독립운동 그리고 현재 만주 민족주의운동 세력과 사회주의운동 세력은 연대 대상으로 보기보단배제 상대로 취급했다 배제 과정이 격렬할수록 외부 힘에 더 의존했다 여기에 항일·독립 과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극히 좁을 수밖에 없다동시에 자기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념의 과잉과 극단 대결로 치닫는 과정은 민족문제를 풀어갈 공간을 축소해 버렸다오늘날 분단시대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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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뉴라이트’, 생존 논리들 촛불혁명을 ‘난동’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을 깎아내리는 시선은 독립정신을 왜곡하려는 시도와도 맞물려 있다왜곡의 시선은 종북·친북의 잣대로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을 함부로 갈라치기한다사실보다 가치를 내세워 독립운동사=건국과정사 왜곡된 계보화로 이어진다 또 반공친일파의 삶을 공과율로 봐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이것이 2024년 현재 보수우익화한뉴라이트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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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테러? 의열투쟁이었다 안중근의 이토 암살 놓고일본 교과서의 시선은 다양한국병합 ‘계기’로 설명하다1990년대 초반 이후에 변화민족·의병운동가 표현 늘어‘조선 근대화’ 방해자로 간주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서술 김원봉이 주도한 ‘의열단’일제에 대항 암살파괴 활동‘주와 종을 혼동’ 비판받자민중 무장역량 강화로 전환윤봉길 의거가 돌파구 제공군사학교서 청년투사 배출독립전쟁에 나설 간부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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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史淵 새로운 기념 하기 1907년 8월1일은일본이 대한제국 군대강제로 해산하자여기에 순응하지 않은시위보병 2개 대대가일본군과 시가전 벌인 날이후 광복군 제2지대서광복군 역사 정리하며‘독립전쟁기념일’로 간주 1917년 7월4일 발표된대동단결선언은제국서 민국으로 전환을명확히 함으로써대한민국 임시정부가민주공화제 내세우게 했고대한제국과 독립운동그리고 대한민국으로연결되는 근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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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분단시대’, 강만길이 바꾸어 놓기 시작한 시선 남북 분단을 유기적 연결체로 보려는 강만길의 시선은 민주화운동 진척 과정에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으로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한반도 분단문제를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국제질서 측면에서 주목하며 연구한 이삼성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남북이 ‘경쟁과 배제의 (비)대칭적 관계’를 지속한 시선도 정착했다. 모두 분단현실의 고유성과 (비)연속성에 주목하며 학문 만들기에 노력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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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 史淵 시대정신 찾아보기 3·1운동 때처럼 주체의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최근의 경험은 촛불항쟁일 것이다 하지만 촛불난동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되치기당했고, 그렇게 힘썼던 분단 문제는 단 1㎜도 현상을 변경하지 못했다 이제 다시, 민주주의 확대와 분단 극복을 아우르는 시대정신 찾아내 두 과제의 해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1876년의 개항, 1910년의 망국과 1945년의 해방은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 전환 국면을 만든 역사인 데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현대사이기도 하다. 개항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과 국가가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되는 신호탄이었고, 망국은 그 편입의 귀결이었다. 해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 시작점이었고, 현재 진행형인 분단은 그 길의 귀결 지점이다. 개항, 망국, 해방은 외부의 요소가 급속한 전환을 추동한 결과라는 점에서 공통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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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史淵 히틀러의 ‘나의 투쟁’ 독후사, 그럼 지금은? ‘나의 투쟁’에는 역사와 관련한 사상과 대중파시즘으로 가는 방향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다그럼에도 모든 죄악의 근원과 책임을 히틀러의 ‘단독죄책론’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단선적 역사관에 빠지면 대중파시즘에 동조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되레 면책을 줄 수도 있다 청소년 시절에 친구나 선배 집에 놀러 가면 문학, 사상, 인물에 관한 글을 모은 전집(全集)이 거실 장식장에 빼곡히 진열된 경우를 자주 본 기억이 있다. 비싼 전집류 구입은 경제성장으로 폭넓게 형성된 도시 중산층의 교육열, 과시 욕망과 연관이 깊으며, 지적 허기짐을 일거에 메워 주는 방법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경까지 좀 잘나간다는 출판사들은 이때를 기회 삼아 회사의 운명을 걸고 전집류를 기획하여 외판 영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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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백의 사연史淵 이름 없는 독립군을 기억하자 민생단사건과 국민혁명그리고 자유시참변은한국독립운동사에서한순간 최대의 독립군이희생된 아픈 역사다희생자 중 가장 많은 수가민초였을 것이다 3·1절을 맞아 생각해본다지금 독립운동 관련 시설어디에도 없지만모든 무명 독립운동가를기억하는 기념물이독립기념관부터 시작해각지에 설치됐으면 한다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박사논문 준비차 1993년 연변대학에 반년 정도 유학을 다녀온 지. 정식 절차를 밟아 그곳에 가기 위해 서울 수유리 교육장에서 4시간 동안 반공 정신교육을 수강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중국을 포함해 8개 국가를 방문하려는 한국인이라면 그래야 나갈 수 있었다. 몇달 전인 1992년 8월에 한국이 중국과 수교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