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령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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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여름날은 팡팡 터지는 축제잖아요 오후 4시에 친구가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거라고 하듯, 어떤 행복은 기다리던 때가 오기 전부터 시작된다. 불꽃놀이가 열리는 날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들뜬다. 아직 밤하늘에 불꽃 하나 피지 않았는데도 마음속은 이미 축제다. 불꽃놀이가 열리는 어느 여름날, 자매는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도시를 물들인 햇빛은 곧 후텁지근한 공기를 만들지만 언니와 동생은 소화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닌다. 공원에 울려 퍼지는 색소폰 연주에 맞춰 몸을 흔들고, 달콤한 수박을 베어 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
그림책 몽고반점, 네가 아기의 수호천사라면… 시작의 순간들은 대개 서툴고 여리다. 막 피어난 이파리는 연하고, 막 켜진 촛불은 조용한 숨결에도 금세 흔들린다. 이 세상에 막 도착한 아기들의 몸에도 몽고반점이라는 푸른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이곳에 오기 전 어딘가의 빛을 몸에 묻혀온 듯 연약한 시작의 기색처럼 보이는 이 푸른 자국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책장을 열면 아주 먼 곳에 사는 작고 파란 ‘몽’이 의자에 앉아 있다. 몽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곧 별 하나가 떨어지고 몽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 별을 품에 안는다. 애지중지 키운 별 속에선 작은 아기가 태어난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엄마를 만날 때가 되었고 몽도 함께 삼신호에 올라타 길을 떠난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를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몽은 아기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는다. -
그림책 들리지 않는 나를 들어주는 이들과 세상 속으로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그 약점에 스스로 압도되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곁에서 다정한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따뜻한 손짓이 나를 잡아준다면, 우리는 용기 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 유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야는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꾼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력 문제는 야구팀에 들어가려 할 때마다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유야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연습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팀을 찾아낸다. -
그림책 시기와 불안에 흔들림 없는 나무로 산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보다 뒤처진 것은 아닌지, 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답을 찾으려 할수록 질문은 늘어나고 마음은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초연할 수 있는 존재를 꿈꿀 때가 있다. 어떤 변수들이 밀려와도 발목 잡히지 않을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의 존재를. -
그림책 소중한 사람의 곁을 지키기 위한 쉼 없는 달리기 때때로 삶이 달리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내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끝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은 위기도 찾아온다. 그렇게 모든 것이 벅찰 땐 나를 기다리는 가족, 혹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될 테니. -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보통 사람은 이상한 사람인가, 보통 사람인가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배낭 위엔 흰 새가 올라타 있고, 카페에 앉은 사람은 떡하니 ‘가짜뉴스’라고 적힌 신문을 읽는다. 옆집 굴뚝엔 바나나가 꽂혀 있다. 그 집 아저씨가 가꾸는 정원엔 낙타가 보인다. 아이가 가는 곳곳마다 이상한 사람들, 그리고 조금씩 어긋난 풍경들이 지나간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노골적인 장면들로 독자를 맞이한다. ‘이상함’은 처음부터 책장 한가운데에 놓인다. 일러스트레이터 카타리나 소브럴이 그린 세상에선 보라색 나무가 자라고 자전거 안장은 핫도그로 만들어진다.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왜 여기에 이게 있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피식 미소가 새어 나온다. -
그림책 상처를 가능성으로 만드는…이토록 무해한 상상 집 안을 날쌔게 돌아다니다가 꽝! 넘어진 아이의 머리엔 혹이 생겼다. 거울을 확인한 아이는 ‘알’이 자란 이마를 보며 놀란다. 그러곤 볼록 솟아오르는 알만큼 호기심도 부풀어 오른다. 만약 주변에 걱정 많은 어른이 있었다면 괜찮냐고 달려왔을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는 알로 보이는 혹 앞에서 울음 대신 질문을 꺼낸다. 이 알에선 누가 태어날까? 아이는 백과사전에서 온갖 알들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타조가 나오기엔 너무 크고 벌새가 나오기엔 너무 작은 알. 누나는 악어알 아니냐고 끼어든다. 수탉이 나올 것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아이는 아침부터 울어대는 수탉은 원하지 않는다.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아이는 결국 수건으로 머리를 칭칭 감아 따스한 등불 밑에서 알을 부화시키려 한다. 한숨 자고 눈을 떠보니 “꼬꼬 꼬꼬꼬!” 자그마한 병아리들과 암탉이 방을 돌아다닌다. 아이는 다행히 수탉은 아니라고 안심한다. -
그림책 인샬라, 잿빛 가자에서 색색의 꿈을 꿉니다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던 아이가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를 발견한다. 일상이 무너진 가자지구에서, 한 어린이가 친구를 만들고 싶어 보낸 편지다. 편지엔 전쟁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포연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삶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편지를 보낸 아이의 이름은 칼리드. 칼리드는 편지를 받을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칼리드는 축구와 수영 그리고 올리브 나무를 좋아한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가끔은 방에 꼭꼭 숨어 있어야 해서 공을 찰 수 없고, 모든 것이 모자라 수영을 할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리는 ‘그들’이 있다고도 말한다. -
그림책 토끼 대신 범 내려왔다…쑥대밭 용궁 어떡하지? 은색 파도가 부서지는 동쪽 바다 아래엔 큰 병에 걸린 용왕이 누워 있다. 잉어 의원은 육지에 사는 토끼, 즉 토선생의 간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바다 밖에서도 숨 쉴 수 있는 건 오직 자라 영감뿐이다. 귀가 아주 어두운 자라 영감이 생김새조차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동물을 꾀어 그의 간까지 빼 올 수 있을까? 물고기 신하들의 ‘잘 듣고 실수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뭍으로 올라온 자라 영감. -
그림책 그렇게 우리 광장에 함께 앉아 이겨냈다 책상에서 밤새워 공부하는 수험생,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수도승,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 이들 모두 ‘엉덩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엉덩이 싸움은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며 가장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작가 둘채는 엉덩이 싸움을 시작한 한 소녀의 투쟁을 오직 검은 펜 선으로 따라간다. ‘앉아있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녀는 대통령의 ‘앉기 금지’ 선포를 맞닥뜨린다. 그러곤 앉을 권리를 되찾으려 광장에 앉는다. 이미 많은 동지가 “서있기를 거부한다” “앉는 게 뭐 어때서”가 적힌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작가는 폭력 대신 평화를 선택한 삽화 속 시민들을 둥글고 부드러운 그림체로 그려냈다. -
그림책 숨기고 싶은 손톱…어쩌죠? 또 물어뜯고 싶은데 무의미하게 슥슥 넘기는 스마트폰 속 쇼츠 영상, 배고프지 않아도 먹게 되는 야식…. 나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인 걸 알지만, 이성보다 몸이 항상 먼저 나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고쳐지지 않는 버릇은 어른에게도 숙제다. 하물며 어린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잘 먹는 호호는 손톱까지 물어뜯어 먹는 습관이 있다. 호호가 뜯어낸 손톱들은 잇자국이 더해져 마치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뾰족한 박쥐 같다. 호호도 알고 있다. 갈기갈기 찢긴 손톱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학교 수업 중엔 손을 들지 못하고,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도 팔을 자신 있게 내밀지 못한다. -
그림책 짝 잃은 양말은 쓸모를 잃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사라진 양말한 짝 루시아나 데 루카 지음·줄리아 파스토리노 그림 | 문주선 옮김 | 여유당 | 40쪽 | 1만7000원 빨래를 하고 나면 양말 하나 홀로 남을 때가 있다. 집 구석구석을 찾아도 사라진 한 짝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양말 알록이와 달록이가 있다. 이 둘의 생이별도 어느 날 세탁기 속에서 갑작스레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