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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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영화 <서울의 봄>의 기세가 심상찮다. 원래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현대사나 정치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은 드물다. <서울의 봄>은 훨씬 더 앞당겨졌을 수 있었던 서울의 봄을 십수 년이나 늦춘 1979년 12월의 그 사건을 다룬 영화다. 40년도 더 된 이야기에서 21세기의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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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익숙함은 옳은가 문화란 익숙함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 문화 안에서 살아가다보니 거기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친근하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 먹었던 집밥의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고 이민자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모국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문화란 사람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같아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그 영향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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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 언젠가부터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이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점차 힘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점점 나빠져 가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옛날이 좋았고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며 요즘 것들은 예의없다는 결론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선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에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숨어 있다. 선이란 사람들 간에 합의된 사회적 규칙이다. 선을 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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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세는 따라야 하는가 사람들은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꽤나 대세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특정 상품의 유행뿐만이 아니라 대학입시, 고시, 의대 진학, 부동산, 코인 열풍 등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강력한 대세들이 한국에는 많이 존재한다. 대세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는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유명한 실험으로 증명된 바 있다. 애시는 7, 8명의 참가자들을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히고 선 하나가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고, 잠시 후 서로 다른 길이의 세 개의 선이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며 좀 전에 본 선과 같은 길이의 선을 고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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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끄러움과 죄책감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면서 서로의 욕구가 충돌하는 일이 많아졌고, 인간은 도덕과 윤리, 법률을 만들어 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도덕과 법률은 결국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훈련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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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방예의지국의 ‘비밀’ 동방예의지국. 지금은 좀처럼 듣기 힘든 이 말은 옛날 중국이 우리나라를 부르던 말이다. <후한서>의 ‘동이열전’에 따르면 동이는 풍속이 순후하여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공자마저도 살고 싶어 했던 ‘예의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예의의 나라로 불리게 됐을까. 바깥에서 보이듯, 예의 바른 사람들이 잔뜩 살아서 예의의 나라가 된 것일까. 과거 우리나라가 예의를 중시했던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삼강오륜을 강조한 유교의 영향이라 생각해 왔으나 기록에 드러나듯이 유교가 전래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은 예의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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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저출생 다시 보기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자 대세다. 데드크로스가 시작된 2020년 이래로 저출생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뿐이다. 2070년이 되면 인구가 30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구 감소를 기정사실이자 대세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출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다는 사실은 모두 잊은 것일까? 광복 직후 1600만명이었던 남한의 인구는 30여년 후인 1983년에 4000만명을 돌파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였다. 당시의 인구밀도는 세계 3위. 나라가 터져나간다는 비명이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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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남 탓의 심리학 남 탓이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는 태도를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귀인(歸因)이라 한다. 사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그다음에 이어질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귀인은 심리학의 중요한 주제로 연구돼 왔다. 예를 들면, 시험을 잘 못 본 학생이 그 이유를 자신의 노력 부족에서 찾았다면 학생은 다음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시험을 잘 못 본 다른 학생이 만약 자신이 시험을 못 본 이유를 문제를 이상하게 낸 선생님 탓으로 돌렸다면 이 학생이 다음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이 문제를 ‘제대로(?)’ 내시기를 기도하는 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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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은 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나 미국은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를 쓴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일본은 쌀 ‘미(米)’자를 쓴다. 우리나라도 쌀 미자로 미국을 표기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름다울 미(美), 미국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왜 미국에 아름답다는 의미를 덧붙였을까. 1910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종묘사직은 종말을 맞았다. 망국은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사람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때는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이 망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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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륵은 오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천년 이상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대표적 메시아 신앙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00여년 남짓이지만 메시아 신앙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바로 미륵이다. 한국에 미륵의 흔적은 차고도 넘친다. 미륵의 이름을 딴 절에서부터 이름난 절의 미륵전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고, 이름 모를 산기슭과 길가에 늘어선 돌부처 또한 미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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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슬램덩크 열풍에서 본 새 시대의 가능성 슬램덩크의 인기가 화제다. 누적 관객 수는 어느덧 350만명을 넘었고 31권짜리 만화책이 중쇄를 거듭하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강백호, 서태웅과 함께 보낸 사람으로서 뿌듯함과 아련함이 얽히는 마음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언급했듯이 슬램덩크 열풍에는 필자와 같은 중년들의 향수가 한몫을 차지한다. 애니메이션 속의 강백호와 서태웅은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2023년의 중년들은 그들과 함께 달리며 옛날의 나를 만난다. 그냥 과거가 아니라 가장 젊고 아름답고 풋풋했던 때의 내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램덩크 열풍에는 복고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세대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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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일이 서로를 대하는 법 정부의 일본에 대한 대응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1월31일 요미우리 신문은 한·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근거해 강제동원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면서 “한국 정부도 피고 일본 기업에 보상과 관련하여 직접 관여가 어렵다는 판단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관련한 더 이상의 보상과 사과는 없다는 일본 측의 주장에 정부는 수용적인 입장이다. 외교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에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은 행정안전부 소속 기관이다. 즉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우리 돈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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