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
우리동물병원생명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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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오래전 그날 10여년 전 “당신의 그리운 시절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얼른 한 대목 당당하게 꺼내 놓으려 했지만, 곰곰이 더듬어도 뒤져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 겨우 찾아낸 것이 고작 하루,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입니다. 개운히 눈을 뜨고, 하숙방 옥상에서 담배를 피워 물자, 바람에선 바삭 마른 빨래 내음이 나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습니다.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이 없고, 근심도 걱정도 없으니, 속 끓일 터럭 하나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하숙집 아주머니가 외판원에게 속아 들여놓은 시드니 셸던 전집을 읽다, 선선한 바람에 기분 좋은 낮잠을 잤습니다. 부족한 것도 필요한 것도 없는 하루였습니다. 애써 그날을 기억해 낸 후로 지금껏, 저는 때때로 눈을 감고 그 여름의 하늘을 떠올립니다. 잘 마른 수건의 햇볕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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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행동하는 양심 우리집 나비는 식구들 반기기에 꽤나 열심인 개입니다. 귀를 한껏 젖히고 현관까지 펄쩍펄쩍 뛰어나와야 보통인데, 그런 나비가 사람이 들어와도 딴청을 피우고, 불러도 못 들은 척 눈을 피하면, 역시나, 곧 들킬 사고를 저질러 놓았습니다. 제 잘못을 알고 마음 졸였나 봅니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별하는 도덕적 기준을 ‘양심’이라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양심을 일컬어 ‘마음의 삼각형’이라 했는데, 나쁜 짓 저지를 때 그 모서리에 찔린 마음이 아픈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말에도 ‘양심에 찔린다’는 표현이 있으니 그 죄책감과 수치심의 저릿한 통증은 시대불문, 국적불문. 나비조차 그러하니 종족도 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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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꽃핀 쪽으로 누군가 절 때리는 시늉만 해도 ‘얼핏 보면 진돗개’ 나비가 달려듭니다. 순둥이 주제에 말도 못하니, 안절부절못합니다. 나름 귀여워서 ‘아야, 아야’ 해가며 놀려대는데, 제가 가해자 역할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큰누나 때리는 시늉에 제 손을 차마 물지는 못해서 앙앙 씹어 말리기 바쁘고, 무릎이 아파 혼자 토닥거리기만 해도 머리를 밀어 넣고, 병아리 소리를 냅니다. 나비는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손을 들어 뭔가를 때린다는 게 너무 무섭고 싫은 모양입니다. 편을 가르지 않아 기특합니다.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왔습니다. 한강물 대신 소설가 한강이 용솟음쳤습니다. 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속보 자막을 본 순간, ‘지금 뭘 본 거지?’ 싶어 눈을 비볐습니다.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내 화면엔 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가 오래 비쳤고, ‘저거 광주 이야기던데, 전두환 좋아하는 사람들 배 아파 큰일 났네’ 하는 생각에 비죽이 웃었습니다. 쌤통이다 싶었는데, 배만 아프고 말 그들이 아니더군요. 역사왜곡, 문학위선이라 주장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을 헐뜯고, 출판사 로비, 파시즘 운운하며 노벨상 권위를 폄훼합니다. 급기야 일부 보수단체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규탄시위를 이어가는 모양입니다. 우리집 개도 ‘네 편 내 편’이 없건만, 그들에겐 글보다, 글쓴이의 진영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탓에, 그 편가름의 천박함이 도를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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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산책을 나온 건지, 냄새를 맡으러 나온 건지. 우리집 나비는 수렵견의 습성이 강해, 유독 ‘냄새 맡기’에 열심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함께 산책하는 입장에선 “대충 하고 갈 길 좀 가십시다” 하고 싶지만 후각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개들의 본능적인 욕구 해소에 꼭 필요합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탓에 후각을 무기 삼아 먹이를 사냥할 기회가 없으니, ‘냄새 맡기’만이라도 힘껏 도와줘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후각과 냄새는 소중합니다. 며칠 전, 혼자 부대찌개 앞에 앉았다가,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졌다는 노랫말에 비하면 분위기가 참 옹색합니다만, 라면 냄새, 햄·소시지 냄새가 얼굴에 덮치자, 함께 나눠 먹으며 키득거리던 마음씨 좋은 사람이 그립고, 소란했던 시절이 소환됐습니다.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는데, 과거에 맡아본 냄새를 매개로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얻은 감각정보와 달리, 후각정보는 대뇌 변연계로 이동하는데, 우리들 뇌에서 장기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냄새라는 정보가 변연계에 들어오면 기억이나 감정과 연결됩니다. 그렇게 연결된 냄새는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과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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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대한사람 대한으로 수의사가 직업이니 별의별 개들을 다 만납니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개도 있었고, 돈을 주면 넙죽 인사부터 하는 개도 봤습니다. 그리 거창할 것 없더라도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지?’ 하며 놀라고, ‘얘는 천재 아닐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집 나비는,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너는 왜 이런 것도 몰라?’가 일상입니다. 하도 모르는 것이 많으니, 귀찮아서 일부러 모른 척하나, 의심이 일기도 합니다. 누구나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상식이라고 합니다.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교양도 상식이고, 공동체가 합의한 가치관도 상식입니다. 우리는 버스나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거리낌 없던 시절을 지나, 공공장소나 실내에서의 금연은 상식이 된 시대에 이르렀고, 교통사고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으뜸이던 시절을 지나, 사고 접수와 블랙박스가 상식이 된 덕에 대거리가 없어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알아야만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의 경계는 흐리지만, 상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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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해브 어 나이스 드림 우리집 나비는 종종 꿈을 꿉니다. 혼자 짖기도 하고, 허공에 대고 허우적허우적 달리기도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와 고양이, 조류 혹은 일부 어류도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들의 꿈은 행복한 색깔일까요? 아직도 우리는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삽니다만, 이미 120년 전 프로이트는 저서 <꿈의 해석>을 통해 미신에 기댄 해몽을 배척하고, 꿈을 과학적으로 탐구했습니다. 학창 시절, 너도나도 보길래, 저도 한번 읽어보았지만, 문장과 단어가 어려워 이해는 고사하고 읽어내기도 힘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소양이나, 꿈의 재료, 꿈의 목적을 소원 혹은 욕구의 성취로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어머니 꿈해몽도 영 틀린 말은 아니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이루고자 하는 꿈도 ‘꿈’이라고 부르지요? 아이들의 장래희망, 젊은이의 포부를 “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소원의 성취라는 맥락에서 인류는 프로이트 이전부터 꿈의 본질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언어에 녹여냈기에 꿈은 두 가지 뜻을 가진 단어가 되었나 상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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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외로워도 슬퍼도 우리집 나비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가족들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탓에, 분리불안이 심했습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날엔, 짖다가 울다가 급기야 토하고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무리를 지어 사는 갯과 동물에게 난생처음 강요된 외로움은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나 봅니다. 제가 쓰는 원장실 책상에 알 수 없는 명함이 100장도 넘게 있어 정리 중입니다. 아는 사람이 참 많네요. 이 명함의 주인들에게는 저 또한 ‘아는 사람’일 겁니다. 옆 건물 카페 사장님도 아는 사람이고, 앞집 편의점 사장님도 아는 사람, 매일 점심을 때우는 백반집 이모님은 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 편이 되어, 도와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명함책을 뒤져보고, 전화 연락처를 끝까지 내려보아도 눈에 반짝하고 들어오는 이름은 없습니다. 저도 분리불안, 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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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혼자서도 잘해요 “나비야, 앉아.” 수백 번 말했습니다.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나비가 솜털이 보송보송, 궁둥이가 말랑말랑, 백설기 같던 시절. ‘앉아’ 한 동작을 가르치느라 땀깨나 흘렸습니다. 간식으로 어르고, 폭풍 칭찬으로 달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설명하고 또 설명했습니다. 나비가 스스로 국어사전을 뒤적여 ‘앉다’란 단어를 찾아보거나, 사진이라도 검색해 공부할 걸 기대할 순 없으니,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친절하게 꾸준히 설명합니다. 사람이 그보다 나은 건 당연하겠지만, 스스로 공부할 게 참 많은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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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황희정승맹사성과학장영실 대부분 하얗고 큰 개들의 이름은 장군이나 백호인 것에 반해, 우리집 개의 이름은 ‘나비’입니다. 중학생이던 나비의 작은누나가 지었는데, 이름만 듣고 섣불리 고양이를 상상하는 사람들을 놀려주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얼핏 무서울 수도 있는 외모인데, 이름 덕에 사람들의 경계가 조금 누그러지기도 하고, 이름 덕에 저렇게 착한 순둥이가 되었나 생각이 들어 작명센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춘수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은 이름의 상징성과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한다고 배웠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짐으로써 그 본질로 인식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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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용감한 자에게 행운이 깃든다 살인청부업자였던 존 윅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아내 헬렌은 이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헬렌이 그에게 남긴 것은 비글 품종의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남편에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강아지와 주인공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주유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러시안 마피아 요제프는 존 윅의 자동차, 1969년식 머스탱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자신에게 팔기를 권했으나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밤사이 존 윅의 집을 습격합니다. 그렇게 자동차를 훔쳐내는 과정에서 어린 강아지인 데이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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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해피 버스데이! 큰딸 민지의 생일입니다. 2006년 3월21일은 제 평생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태어나 준 것이 고마웠고, 이제껏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고맙습니다. 훌쩍 커버린 요즘에야 데면데면하지만 그 기쁜 마음을 전하려고 매년 생일을 축하합니다. 우리 나비의 생일은 1월9일입니다. 농장에서 어미와 형제들이 함께 구조된 탓에 태어난 날을 정확히는 알 수 없어서 집에 처음 온 날을 생일로 정했습니다. 누나들은 용돈을 모아 장난감을 사주기도 하고, 알아듣지는 못할망정 생일 축하 노래도 열심히 불러줍니다. 나비가 잘난 명견이어서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도 아니고, 큰일을 해냈기에 축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 와준 것이 감사하고, 우리 식구가 되어 준 것이 기쁘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그저 존재함을 감사하는 마음이라 더욱 소중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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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나비에게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가 데리고 산책해보면, 의젓해서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작은 강아지들과 인사도 잘하는 착한 녀석인데, 고등학생인 제 누나들과 산책할 때는, 행인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진돗개를 닮은 덩치 큰 개가 등줄기에 하얀 털을 곧추세우고 으르렁거리면 저라도 흠칫 놀라겠습니다. 순둥이 나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갯과 동물의 행동학에선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란 개념을 차용해 설명합니다. 긍정, 부정, 강화, 처벌로 구성된 조건화를 말하는 건데, 원하는 행동을 한 동물에겐 좋은 자극을 주거나 나쁜 자극을 제거해줌으로써 보상해 그 행동을 강화하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한 동물에겐 나쁜 자극을 주거나 좋은 자극을 제거함으로써 처벌해 그 행동을 교정한다는 원리입니다. 가령, 자동차에서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 경고음이 울리도록 하는 것은, 원하는 행동이 일어났을 때, 나쁜 자극을 제거해주는 것이니 ‘부정강화’에 해당합니다. 반면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보너스를 줘 독려하는 것은 원하는 행동에 좋은 자극을 더한 것이니 ‘긍정강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