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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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대통령의 만찬 처음엔 신선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60대 남성의 특기가 스테인리스팬에 계란말이라니. 얼치기지만 주부 경력 30년이 넘은 나도 스테인리스팬은 쓰기 쉽지 않은데. 잠깐이었지만, 20대 대선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을 든 윤석열 후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9월24일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렸다는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인 듯하다. 한동훈 대표가 여전히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밥 먹는 데 너무 충실한 나머지 대화를 잊어버린 탓일까. 술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고려해 오미자차로 건배를 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였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던 것 같다. 체코 순방 성과에 대한 설명과 국정감사에 대한 걱정이 전부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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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 ‘스톱(STOP)’을 외쳐야 한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것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불안해하지만 사회적 토론의 테이블에 쉽게 올려놓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폭력과 범죄임이 분명하지만, 사건의 원인 규명과 행위자 처벌, 그리고 유사 범죄의 예방에 관해 공권력의 통제가 최소한에 그치는 사건들이 있다. 젠더폭력의 몇몇 사건들은 전형적 사례다. 헤어지기를 원하는 연인을 살해하거나,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성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위협한다. 강의실이나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료들의 신체를 딥페이크로 합성해 조롱하고,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문자들로 희롱하는 단톡방을 들락거린다. 교제살인,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위계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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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아리셀 화재 그 후, 우리는 달라지고 있나 2024년 6월24일 10시30분 경기 화성시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1분도 되지 않는 순간 불꽃과 연기가 작업장을 뒤덮었고 22시간이 지나서야 진압되었다. 23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중 5명은 한국인, 18명은 외국인이었다. 그중 17명이 여성이었고(한국 2명, 중국 14명, 라오스 1명),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가족이 모이고 장례를 치르고 정부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기도는 사건 백서를 만들겠다고 했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리튬 취급 사업장 점검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종 소방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의 ‘대국민 보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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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22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책임 22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하 여가위)가 구성되었다. 21대 국회에서 여가위의 존치 여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고 위원장 선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데 비해 22대에서는 국회 출범 자체가 늦긴 했지만, 여가위도 제때 진용을 갖췄다. 더불어민주당 10명, 국민의힘 6명, 조국혁신당 1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위원단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인선 위원장(국민의힘, 대구수성구을)은 재선의원으로 경북대 교수, 경상북도 부지사,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을 지냈다. 이어 국회 여가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순서대로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선 경력과 활발한 원 내외 활동으로 국민들의 신망을 받아온 중량감 있는 인사들과, 비례·초선의 젊은 신인 정치인, 그리고 여성가족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전문가들이 고루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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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자유주의 사회와 그 적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을 때, 위험에 빠진 조국을 걱정하던 사회학자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20대 청년이던 대학원 시절 책을 읽은 후 나눈 토론에서 나와 동료들은 이 포퍼의 책에 공감하기보다는 회의적이었다. 전두환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며 공동체와 사회운동의 가치를 믿었던 20대 청년들이 서구적인 개인의 자유를 역설하는 포퍼의 주장에 마음이 끌리기는 어려웠던 1980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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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1억원’의 매직? ‘1억원’의 비즈니스! 4000만원으로 시작해 5000만원이 되더니, 몇달 사이에 1억원으로 뛰었다. 출산장려금이다.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이 아이 한 명당 40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발표로 경질된 후 얼마 안 돼 더불어민주당이 자녀 한 명당 5000만원씩 주겠다고 선언했다. 엊그제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1억원을 주면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이 63%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조금 더 기다리면 2억원쯤으로 오를까? 인플레이션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한국에서도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지만, 인플레도 이런 인플레가 없다. 불과 1년 사이에 150%가 뛰었으니. 발표 주체도 다르고 정책화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지만, 가히 ‘출산 비즈니스’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색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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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22대 총선, ‘윤석열-조국 대전’에서 빠진 것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선거’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총선만큼 엎치락뒤치락이 심한 선거가 또 있을까. ‘정권 심판’ 구호로 야당 우위에서 시작됐지만, ‘한동훈’이란 스타 장관의 때이른 등장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은 역풍을 태풍으로 만들었고 선거를 한 달 남긴 시점엔 판세가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부정평가가 60%를 넘나드는데도 여당 압승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되었고 ‘국민의힘 170석’이란 예측까지 나왔다. 그때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와 함께 조국 전 장관이 ‘짜잔’ 하고 나타났다. 태풍의 방향이 다시 바뀌고 쓰나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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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지금 누가 여성정책을 말하나 3월8일은 ‘세계여성의날’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포용을 고무하라(#InspireInclusion)”라는 구호와 함께 성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고, 성별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모든 여성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다. 이 사이트에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여성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나쁜 나라들”이란 제목 아래 2016년부터 2023년까지 29개국의 유리천장 지수가 제시됐다. 성별 임금격차, 여성 고용률, 여성 관리직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2개 항목으로 산출되는 통계에서 한국은 부동의 29위, 꼴찌를 계속해왔다. 여성이 일하기에 가장 나쁜 나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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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철학도 실력도 없는 여야의 저출생 대책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모처럼 의견의 일치를 봤다. 지난 18일 동시에 발표된 저출생 대책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용이기는 하지만, ‘막대한 예산만 쓰고 성과는 없다’는 비판과 함께 국민의 큰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정책이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결과는 ‘예상대로,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현행 10일에서 1개월(유급)로 늘려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 연 5일 유급 자녀돌봄휴가, 육아동료수당, 여성가족부 폐지와 인구부 설치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신혼부부 가구당 자녀 수에 따른 1억원 대출과 탕감, 초등 이상 미성년 자녀 아동수당, 자녀 수에 따른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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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새해는 ‘선거의 시간’이다. 22대 총선까지 꼭 100일이 남았다. 그때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시계는 선거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선거제도도 확정되지 않았고 후보를 낼 정당들의 윤곽도 불분명하지만, 총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선거가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들 고민하실 것이다. 지지 정당과 후보가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팬덤정치도, 투표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는 정치혐오도 걸림돌이다.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멈추고 변화의 방향을 미래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구태들과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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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혐오범죄에 대한 법적 규제 넥슨전투. 최근 진행 중인 게임산업 집게손가락 논란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애니메이션,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영상의 한 장면을 잘라 집게손가락 모양을 남성 비하 표현으로 단정하고 창작자의 개인 신상을 뒤져 페미니스트라는 낙인과 함께 해고하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이어간 이 사건은 다행히 창작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진실이 가려졌다. 넥슨의 하청업체인 뿌리에서 문제가 된 장면을 그린 이는 40대 남성이며, 남성을 조롱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현역 의원들이 공격에 가담했고 아직까지 반성이나 사과의 뜻을 밝힌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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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약자들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고용노동부 “고평상담실에 가기 전 국가가 제공한다는 무료 법률상담소를 찾아가 봤기에 불신이 컸다. 피해를 입은 내가 받았던 무료 법률상담은 인터넷 예약을 통한 30분 내외의 비전문가 상담이었고 최소 며칠에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에 공황장애까지 있는 상태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평일, 점심시간 제외, 주말·공휴일 제외, 담당자가 공석이나 출장, 연차휴가면 불가능해 계속 보류…. 그렇게 사회적 외면을 받아 처절하게 버려지고 포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도움이 절실한 내가 미친 사람이 되어 그냥 포기하려 할 때 상담실은 달랐다. 병원 치료를 받고 늦게 도착해도 사무실 문을 열고 내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두려움과 겁을 내며 법정에 서야 할 때도 나를 붙들어 법원에 동행해 주었다. 늦게까지 일하며 김밥 한 줄을 나눠주면서 뭐라도 먹어야 된다고 힘내야 한다며 나를 붙들어줬고 살아야 한다고 더욱 고삐를 잡아챘다.”(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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