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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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현장 광주를 생각한다 새삼스럽지만 오월 광주는 우리 공동체의 역사다. ‘민중의 적’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김대중 대통령이 사면했던 것도 광주를 모두의 역사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광주는 그렇게 국가가 공인한 민주주의의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세속의 시대, 신성한 것은 온전하기 어렵다. 불행히도 금기가 될수록 희화화되거나 폄훼된다. 세상에 만연한 원한의 정치는 적대를 혐오의 열기로 금세 바꿔낸다. 우리 공동체에선 어떤 이슈든 ‘정치’를 투과하면 열광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공동체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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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현장 일당 우위 정치의 미래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사람이 국민 중 30% 정도를 차지한다(NBS 조사). 자세히 살펴보면 20·30대가 전체 비율을 끌어올리고 있고, 영남지역 국민의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한 결과다. 유권자들은 지지하다 이탈하고 다시 결집하는 등 활발히 움직이지만, 최근 수년간 공고화된 20~30%의 무당층은 고착화된 양당제에 대한 피로감, 제3의 대항세력 형성 실패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국민의힘의 몰락은 또 다른 차원의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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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현장 “그렇게 쓰라고 준 권력” 경계한다 중수청·공소청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을 들여다보는 일은 퍽 괴롭다.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에서 갈등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민주정치의 기저에는 정직하고, 애국적이고, 충성스럽고,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으며 반대하더라도 악의는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과잉정치화된 개혁의제는 대개 공동의 합의점보다는 진영에 근거한 진리 대결로 흐른다. 최근 한 언론인의 “진보인권 법률가”를 꾸짖는 글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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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현장 민주주의의 보루, 상호견제 민주주의는 통치자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권력에 대한 중첩적인 견제 장치를 둔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간 상호견제를 비롯해 정당 간 견제, 정당 내 견제(파벌), 시민들의 자유로운 선거 참여와 저항, 사회운동이나 언론의 감시·비판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촘촘하게 포개진 이 장치들의 원활한 작동은 민주주의의 척도이자 본질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는 반대 의견을 형성하고 전파할 수 있는 핵심적인 권리일 수밖에 없다. 권력교체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이뤄지기 위한 선거제도도 그렇다. 그래서 이러한 권리나 제도는 기본권으로 헌법에 보장되며 특정 정당에 의해 독단적으로 변형되어선 안 된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반민주적이었던 이유도 물리적 강압 수단을 통해 국가의 견제 기능을 일거에 정지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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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현장 국민의 뜻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예상했듯 다수 국민이 추가 건설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은 공론화를 통한 추진 결정을 공언했음에도 ‘신규 원전 불가피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왔다. 더욱이 핵발전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전제한 문항 설계는 편향성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가 여론 뒤에 숨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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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우리는 긴 겨울의 입구에 서 있는가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3년 만에 핵실험 재개를 지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곧장 상응하는 대응을 예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 핵무기를 유럽 동맹국에 배치하는 핵 공유를 추진 중이다. 중국은 통제 바깥에 놓여 있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핵무력을 증강(SIPRI 2025연감)하고 있고 일본은 그동안 지켜온 ‘비핵 3원칙’을 흔들며 재무장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단적으로 최근 일본 총리실 고위간부는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 군축의 마지막 안전판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마저 새로운 합의를 마련하지 못한 채 내년 2월 종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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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행 경향은 안에서부터 잠식하는 ‘내파’의 형식이다. 그러나 1년 전 ‘제왕’이라 착각했던 이가 벌인 자기파괴적 결단은 민주주의를 ‘외파’하는 시도였다. 내파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적 수단에 의해 벌어지며 헌정을 타락시키는 만큼 위헌·위법함을 따지기 쉽지 않다. 반면 외파는 결단주의적 이상으로 폭력적 수단에 의해 벌어지며 헌정 자체를 중단시키기 때문에 꽤 명확하다. 그만큼 해결 방향도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불행을 단순하게 외파 사건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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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제국’은 없다 지난 7월 김민석 국무총리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제국적 사고다. … 우리는 제국을 해본 적이 없다. 늘 식민주의만 했다. … 공격적인 관점을 가질 때가 됐다”는 발언은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제국적 사고’라는 도발적인 주장은 일종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에 사로잡힌 피해자 지위에서 벗어나 질서를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는 원대한 포부로 선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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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사법개혁은 가장 탈정치화된 논쟁으로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는 항구적인 불안정을 초래할 혁명을 억제하고 합의한 규칙 내 경쟁을 택했다. 그것은 인치 대신 법의 지배, 대표의 민주적 경쟁과 선출(수직적 통제), 국가권력 간 수평적 분할과 견제(삼권분립) 같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일방의 의지로만 바꾸는 건 어렵다. 우리 공동체는 전무 아니면 전부와도 같은 정치 대신 일시적인 후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의 안정적인 진보에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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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스마트폰 금지와 정치의 실패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사의 지도·통제(교육권) 강화와 학생의 스마트 기기 과의존 예방(학습권)이 입법 취지라고 한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듯 이 법은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교사들이 ‘통제’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즉각 학교공동체와 교실의 현실, 인권을 둘러싼 논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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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대통령을 민주화해야 한다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일터가 청와대와 지척인 까닭이다. 한국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은 이런저런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모이는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남태현 교수는 2018년 ‘대통령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게’라는 칼럼으로 대통령 개인에 기대는 정치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아직도 덕이 많은 군주 덕에 태평성대가 오고, 폭군 때문에 난세가 오는 중세에 사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그의 성찰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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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정치 없는 민주주의’ 사회학자 서동진은 우리가 악순환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광장의 정치가 조직한 힘을, 집권을 위한 에너지로 탕진하며 다시 아무런 사회적 구조 전환이 없는 정권교체를 위한 자원으로 소모하는 악순환을 말한다. 지난 수십년간 제도 정치 내에서 발생한 정치 세력 간 교착상태(집권 세력의 정치적 정당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광장의 정치가 동원되지만, 결국 희망과 기대를 ‘배반’당하고 정치적 행위의 최종 결과가 정권교체로 귀결되는 반복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