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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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상명하복만이 문제일까 공무원에 대해 ‘복지부동’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가 만난 중에는 자기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진심으로 믿으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꽤 드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공무원에게서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자신을 “승진은 포기한 사람”이라 칭하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면 후임자는 전임자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분도 이제 승진하셔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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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혁신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엘리자베스 홈스라는 여성이 있다. 혈액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 주장한 그는 2014년 기준 10조원 이상 가치로 평가받은 벤처기업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였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후 ‘에디슨’ 기술이 크게 과장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기업 가치는 0원으로 추락했고 그는 사기죄로 수감됐다. 금발의 매력적 외모와 집안, 학력, 언변 등 다른 장점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를 세상에 알린 그 기술, 그 혁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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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인맥을 깨뜨리는 시대적 책임 “○○대학은 사회 나가보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끈끈함이 다르대요.” 최근 대학 입시에 관한 동영상들을 보고 있는데 이런 댓글이 자주 눈에 띈다. 익히 들어본 말이기는 하지만 청소년 세대를 놓고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씁쓸하다. 대학뿐 아니라 특목·자사고, 국제중, 사립초, 영어유치원, 심지어 산후조리원까지도 그 효용을 일정 정도 ‘인맥 만들기’에서 찾는 인식은 꽤 일반적이다. 무리해서라도 자녀를 ‘학군지’에서 키우려는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입시와 부동산 쏠림의 일정한 원인이 인맥 지향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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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기업들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24일, ‘힐리스’라는 단어를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바퀴 달린 신발 이름이다. 22년 전,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투쟁 중이던 김주익씨가 목숨을 끊었다. 회사가 노조에 제기한 150억원 손해배상 소송으로 그의 월급은 물론 집까지 가압류를 당했다. 그는 유서에 “아이들에게 힐리스를 사주겠다 약속했는데 못 지켜 미안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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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심기 보좌’가 조직을 망친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과 사퇴 과정에서 불거졌던 ‘보좌관 갑질’ 문제는 벌써 지나간 이슈가 됐다. 당시 쏟아진 보도와 사회적 관심으로 본다면 차제에 국회 보좌관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할 만도 하건만 그런 움직임은 안 보인다. 이 점만 봐도 보좌관들이 어떤 처지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몇년간 일자리를 연구하며 대기업과 공공기관 청년 직원들을 인터뷰해 보니 상사의 갑질은 직장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사유였다. 갑질은 크게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앞서 강선우 전 후보자 사안에서처럼 사적 잡일을 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사의 말 한마디로 업무가 휙휙 바뀌는 것이다. 이 둘은 현실에서 대체로 중첩된다. 직원을 각자의 고유한 전문성과 능력에 따라 일하는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을 때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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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왜 아이들만 집에 두게 되는가 “며칠 전 떴던 뉴스 아닌가?” 지난 3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 어린 자매가 숨졌다는 소식을 보고 이런 의아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불과 9일 전 거의 똑같은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부산의 다른 아파트 화재 때도 자매가 목숨을 잃었고 부모는 일하러 나간 상태였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동일한 사고가 반복됐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구조적 문제”라면서 “진정성 있는 대책을 곧 국민께 발표드리겠다”고 했다. 벌써 지난 정부와는 상당히 다른 태도이고, 어느 정도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그런 대책이 곧 나올지는 미지수다. 정말 ‘구조적 문제’라면 그리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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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인력 쥐어짜기’가 원인이다 일하는 사람을 연구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세요?” 물으면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하는 답이 있다. “여럿이 하던 일을 이제 저 혼자 해서 힘들어요.” 어떻게 해내느냐고 물으면 “어찌어찌 하게 된다”는 답이 오곤 한다. 언젠가부터 한국 조직들은 직원 수를 서서히 줄이고, 일의 양은 서서히 늘리며 조여가야 한다는 암묵적 담합하에 있는 것 같다. 매출 증대 목표를 세운 기업은 당연하게 희망퇴직부터 시행한다. 위에서 목표를 하달하면 현장에선 어떻게든 두드려 맞춰 인력을 줄인다. 잘 마치면 담당자들은 치하를 받고, 경영진 임기가 연장되기도 한다. 일상적 감축도 늘 이뤄진다. 두 명 나간 자리에 한 명만 뽑는 식이다. 하청업체 인력 쥐어짜기는 더 쉽다. 계약 금액을 후려치면 업체가 알아서 인력을 줄여 마진을 맞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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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현장의 목소리는 왜 듣는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은 참 흔하다. 선거철인 지금은 정치권에서도, 특히 대선 후보 동선마다 한 번씩 들려온다. 그러나 한국에서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아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윗사람이 친히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미덕인 줄 알거나, 직원들과 화기애애하게 몇마디 나누다 “탕비실 간식 바꿔달라”는 민원 정도 들어주고는 소통 잘했다 여기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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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애순이는 좋은 사람이니까? “본연의 공약은 없는가? 남 욕하느라 돈만 쓰고 댕기는 것 같은디?”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 한 대목이다. 제주 도동리 어촌계장 선거에서 경쟁자 오애순(문소리)에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는 부상길(최대훈)에게 도동리 주민이 한 질문이다. 그런 공세에도 애순은 당당히 계장 자리에 올라 그를 지지한 주민들과 가족,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데 사실 애순을 당선시킨 것도 ‘네거티브’였다. 부상길이 바람피웠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애순 본연의 공약이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해외는 몰라도 한국 시청자들은 여기서 이상한 점을 거의 못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부상길은 나쁜 사람이고 애순은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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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전관예우와 사교육비 열두세 살 즈음이었나, 집안에 송사가 났는데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 크게 놀랐다.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한참 곱씹다가 혼자 결론 내렸다. 어른들이 잘못 알았을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만일 사실이라면 재판에서 이겨야 할 사람이 억울하게 지는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데, 존경받아 마땅한 듯 고고하고 대단해 보이는 법관들이 도저히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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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주 4일제’ 말할 상황 아니다 예전에 다닌 직장은 근속기간 상관없이 신입사원부터 대표까지 동일하게 연차가 27일이었다. 어느 해 안식월 등 다른 제도를 조정하는 대신 연차제를 바꾼 결과다. 그해 직원 퇴사율이 뚝 떨어졌다. 이 경험을 말하면 “법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꽤 있다. 연차휴가에 대해 ‘처음엔 1년에 15일, 이후로 2년마다 하루씩 늘어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60조에 그렇게 정해져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를 마치 ‘국룰’, 즉 국가가 정해준 휴가일수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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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헌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이제나저제나, 이 나라가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 다독인다. 더디더라도 반드시 옳은 길로 갈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고.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옳은 길인지 우리 대다수가 분명히 알고 있다고 실감할 수 있어서다. 현실은 언젠가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도록 복잡하게 꼬여 있는데, 왜 이번만큼은 이토록 답이 분명할까? 헌법이라는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국회의 해제 의결을 막으려던 일련의 조치들이 헌법 77조 위반이라는 것만큼은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거의 이견이 없다. 이 사실 하나만 붙잡고 가더라도 혼란은 종내 정리되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