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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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1796년, 효경교 붕괴 사건 1796년 음력 7월 말, 20대 나이에 종2품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된 신홍주(申鴻周)는 사은숙배를 위해 청계천을 건너야 했다. 효경교(孝經橋)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 그의 머릿속은 조금 뒤 행할 의례 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왕에게 올리는 부임 전 인사지만, 궁의 예는 혈기왕성한 젊은 무관에게는 영 익숙지 않았다. 효경교 중간에서 그를 태운 말이 그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궁에 들어갈 때까지 그 생각은 멈추지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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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1751년, 흥해군수의 ‘고발 사주’ 1751년 음력 7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권력형 범죄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경상감사 조재호는 직권으로 흥해군수 이우평을 파직하고, 그의 죄상을 조정에 보고했다. 그의 범죄행위를 감안할 때, 잠시라도 그를 공적 지위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이 사건 발단은 전해인 1750년 음력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력 10월은 한 해 결실을 거두는 시기이다. 당연히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봄에 빌렸던 곡식을 갚아야 하는 시기, 즉 환곡의 계절이기도 했다. 물론 곡식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수확이 좋으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늘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1750년 역시 예약된 흉년이었고,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환곡의 부담이 컸다. 관아에서는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곡식을 받아내야 했고, 결국 미납자들은 속속 관아에 잡혀 올 수밖에 없었다. 서원석의 아내 잉질낭도 미납 책임을 지고 흥해군 관아에 잡혀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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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사심으로 사심을 공격한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의 핵심 권한은 인사권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인사(人事)란 권력자-또는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가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자기 권한을 일정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부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목적에 부합되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특정 권한을 부여할 때, 이를 ‘합리적 인사’라고 말한다. 특히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인사의 목표가 국가 차원이 되면, 공적 차원에서 능력 유무를 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선은 꽤 촘촘하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을 가졌다. 그리고 왕의 인사권도 가능하면 이 시스템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인사가 그렇게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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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국방의 의무에 대한 국가의 책임 1781년 5월11일 새벽, 창경궁을 순찰하던 위장들과 부장들은 대로변 소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시신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여명이 트는 이른 새벽, 흐릿한 형체만 보고 마음의 준비 없이 시신을 맞닥뜨렸던 터라, 이를 본 모든 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새벽 댓바람부터 창경궁에 비상이 걸렸다. 궁궐 바로 앞에서 일어난 흉사였던지라, 이 일은 정조에게 바로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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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위임된 권력의 남용 1630년 음력 4월14일, 예안현(현 경북 안동시 예안면 일대) 향청에서 지역 향교와 서원을 통해 예안 유림들을 모았다. 현내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자는 게 의제였는데, 참으로 뜬금없는 의제였다. 본래 현내 복잡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 그 문제들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안현 대다수 유림들은 당시 예안현 내에 돌고 있는 예안현감에 대한 소문이 중요 의제가 아닐까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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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선비들 가운데 약간이라도 도의를 사모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속적 우환에 걸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소이다. (중략) 그들이 미진했던 점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이 지극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너무 높여 처신한 데 있고, 시의(時宜)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세상을 경륜(經綸)하는 데 용감했기 때문이오.”(<퇴계선생문집>, 권16, ‘기명언에게 답함’) 1559년, 이황이 나아감과 물러남의 도리를 묻는 33세의 젊은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의 일부이다. 기대승은 한 해 전 이미 대과에 합격했지만, 스스로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에 어둡다고 생각하여 이황에게 그 처신을 물어왔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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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당파와 도덕적 책임의 범위 1796년 음력 2월13일, 정조의 최측근인 좌의정 채제공이 파직되었다. 세손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채제공이었지만, 정조의 결단은 추상같았다. 발단은 영릉(英陵·세종대왕의 능) 별검 이주석에 대한 어사의 보고였다. 이 보고에 따르면 이주석과 그의 동료 이주명의 죄는 심각했다. 특히 두드러진 죄는 우금령(牛禁令·소 도축 금지령)을 어긴 일이었다. 조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 도축을 법으로 금했는데, 그에 더해 한 해 전인 1795년에는 이를 강조한 왕명이 별도로 내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주석은 능졸들이 영릉 내에서 소를 사적으로 도축하는 것을 허락했으니, 문제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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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하늘의 변화가 말하는 것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올해 겨울은 지난 겨울들에 비해 유난히 따뜻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쪽 지방은 겨울 동안 개울과 연못에 얼음 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난주 며칠 동안 남부 지방에 내린 비는 여름 장마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폭설이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야’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올겨울 하늘이 예년과 많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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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병곡역 난투 사건 1644년 음력 12월21일, 경상도 병곡역(현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 근무하는 역인(驛人)들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갓 무과에 합격한 선달들이 변방 부임지에 가는 길에 단체로 병곡역을 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원은 관료들의 공무 여행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므로, 이들의 이용이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겨우 무과나 합격한 선달들이 꼴에 양반이라고 종까지 대동하고 떼로 들이닥쳤으니, 평소 높은 관료들에게 시달려온 역인들의 얼굴빛이 좋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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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무명이 신분인 사회 근래 개인적으로 무명 가수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 3>를 즐겨 본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음반을 낸 경험 있는 무명 가수들이 참여하는 경연이다 보니 참가자들의 실력은 담보되어 있다. 거기에 참가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개인의 사연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 노래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데 가끔 그들의 음악보다 나의 귀를 더 사로잡은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수 임재범이 내뱉는 “에휴…” 하는 낮은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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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진상의 역설 비교적 오래된 이야기지만, 청어는 한때 우리네 겨울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 대표 생선이었다. 오죽 흔했으면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 정도였을까 싶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는 꽁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날이 쌀쌀해지면 살에 기름기가 올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보니, 겨울이 되면 조선시대 왕의 밥상에도 생청어가 빠지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기 동해와 남해 일부를 관할했던 경상감사 진상품 가운데 하나가 청어였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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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잡고 싶은 정치인 되기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정국은 총선을 향한 빠른 레이스가 시작된 모양새다.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와 난무하는 정치공학적 담론들로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보면, 총선을 향한 여당과 야당의 고민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오가는 담론들 속에 정작 정치의 본래 목적과 그것이 지향해야 할 원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하다. 너무 당연해서, 그래서 논의할 필요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새겨볼 필요조차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