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은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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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곤돌라 대신 자연을 더 허하라 남산이 위기다. 2009년 서울시가 남산 정상부 접근성 개선을 이유로 곤돌라 사업을 추진했지만, 서울시의회가 생태계 훼손 우려와 기존 남산 케이블카와 중복 문제 등으로 해당 사업을 부결시킨 바 있다. 다시 7년이 지난 2016년, 급격하게 증가한 중국인 관광객을 이유로 재추진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무산되었다. 그리고 또 7년이 지난 2023년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시는 남산 곤돌라 사업을 꺼내들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가 양양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추진되었다면, 남산 곤돌라는 명동 상권 활성화가 주요 명분이다. 케이블카는 관광 수요가 많으면 많은 대로 관광객 편의를 위해 추진되고, 수요가 적으면 적은 대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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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하기 “이제는 생물다양성 부문 ESG를 대응할 때, 약간의 기부나 사진 찍는 행사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 기업의 ESG 담당자가 제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공청회에 패널로 참여해서 강조한 대목이다. 이 담당자는 기업 활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자연자본의 손실에 대해서 구체적인 영향을 측정하고, 영향을 회피하고, 최소화하고, 복원하여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방안을 공시해야 한다며, 정량화된 공신력 있는 제도의 시급함을 토로했다. 기업이 이른바 ‘자연자원총량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ESG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변화되면서 자연자본에 대한 재무정보를 공시하는 제도(TNFD)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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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댄서의 리더십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2> 댄서들의 멋지고 치열한 한판 승부가 끝났다. 첫 번째 시즌 당시에도 댄서들의 멋짐에 빠져서 한참을 허우적거렸지만, 사실 두 번째 시즌까지 챙겨서 열심히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무심코 채널을 돌리던 짧은 순간 그들의 눈빛에 사로잡혔다. 그 눈빛은 춤에 대한 자부심이었고, 간절함이었으며, 동료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각 팀을 이끄는 수장들의 리더십이다. 극한의 경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리더십이 더욱 무거운 책임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리더십은 때로는 탁월한 춤 실력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성실함으로 혹은 구성원들을 끌어안는 성품으로 빛을 발하기도 했다. 리더십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다양성을 관통하는 것은 구성원들과의 ‘신뢰’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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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송편을 데우며 팬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냉장고에서 송편을 다섯 개만 꺼내서 겉면이 바삭해질 때까지 아주 약한 불에 굽는다. 달콤한 밤 송편만 골라 먹으면 좋겠지만, 들기름 향이 입혀지면 평소 싫어하던 콩 송편조차도 썩 맛있게 느껴진다. 긴 추석 연휴 동안 하루에 다섯 개씩 꺼내 먹어도 아직 냉장실에는 엄마가 넉넉히 싸주신 송편이 남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냉동실에는 메밀배추전과 동태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전 귀신’인 나는 한동안 신나게 냉장고를 파먹으면서 추석의 여운을 즐길 것이다. 단 한 조각의 전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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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클래머스강에서 사라진 것은 “댐 철거는 당파적인 이슈가 아니다.” 2019년 미국 오리건주 지역 신문에 실린 기고문 제목이다. 기고자는 14년 동안 오리건주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재직했던 정치인 출신 영화감독이다.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클래머스강에 위치한 4개의 댐을 철거하는 클래머스 댐 철거 사업이 합의되어 추진되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반대에 부딪히자 공화당 출신 정치인이 직접 중재하고 나선 것이다. 클래머스강 복원 사업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댐 철거 프로젝트다. 클래머스강에 있는 4개의 댐은 수질이 악화돼 독성 남조류가 자라고, 연어 등에 기생충이 번성해 어업에 악영향을 끼쳐왔다. 4개의 대형 댐을 철거하기 위한 초당적 노력은 부시 행정부 시절 성사돼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지며 2018년에 철거될 예정이었다. 이해관계자가 걸려 있는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강 복원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자 한국의 상황이 겹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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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힘내서 달립시다 24초. 내가 기억하는 100m 달리기 기록이다. 치타는커녕 기어다니는 악어보다 두 배는 느리다. 운동에는 거의 재능이 없었고, 숨쉬기 운동 외에는 걷기조차 싫어했더랬다. 그랬던 내가 올해 초부터 새벽 달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2㎞를 뛰는 것조차도 헉헉댔지만, 6개월을 꾸준히 뛰면서 이제는 4㎞를 거뜬히 뛸 수 있게 됐다. 이어폰 너머에서 달리기 애플리케이션 속 성우가 지시하는 대로 공원에서 그리고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달린다. 성우는 느리지만 열심히 달리는 나에게 연신 외친다. “정말 대단합니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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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엄친아’의 성공을 기원하며 얼마 전, ‘강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유럽 환경단체 활동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유럽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2030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자연복원법이 일부 정당의 반대로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유럽의 생물다양성 전략도 결국은 큰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에 암담했다. 환경정책 부문에서 왠지 잘난 ‘엄마 친구 아들’처럼 느껴지던 유럽마저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유럽이 ‘2030 EU 생물다양성 전략’을 무난하게 채택한 것부터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이상한 일이다. 몇년 전 한국에서 반짝 유행처럼 휩쓸고 지나간 ‘그린 딜’이 여전히 유럽연합(EU)의 정책적 우산이라니. 게다가 육지와 해양의 30% 보호구역 지정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년 만에 화학농약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가능할까? 녹지의 순손실을 막고, 30억그루의 나무를 심고, 2만5000㎞의 강을 자유롭게 흐르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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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모씨가 선택하는 생물다양성 이웃 동네에는 철거 예정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고, 건물마다 노란색 출입 금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둘러졌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들어선다던 그 아파트 단지 공사가 본격화되나 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그린벨트가 또 사라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씁쓸했다.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보며 도시 팽창이나 녹지축 훼손을 걱정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 테니 아마 우리 동네에서는 혼자서만 씁쓸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웃 동네에 사는 엄마 친구 아무개는 보상금을 수십억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수십억이라. 나는 과연 누군가 나의 낡은 집을 수십억에 사준다고 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그린벨트가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지키겠다며 뿌리칠 수 있을까. 내 직업이 주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일이라지만, 예상컨대 채 하루를 고민하지 못하고 수십억을 택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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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우회전 가속페달, 강원특별법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운전자는 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다. 3개월 계도기간 동안 교통사고가 유의미하게 줄었지만, 본격 단속이 시작되면서 운전자들 반발도 나오는 모양새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바뀐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시민들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도 법을 지키는 이유는, 자고로 법이란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이며, 법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힘 있는 정치 집단은 다르다. 마음에 안 드는 법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특별법’을 동원해서 망가뜨리고 비켜간다. 지난 2월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내용은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각종 환경 법안을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강원지역의 ‘자치권’을 요구하면서도 중앙정부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법안 발의의 탈을 쓴 총선 홍보물’이겠거니 싶어서 상식 이하의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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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 생태위기, 뭉쳐야 찬다 각 부문별 국가대표 스포츠 스타들을 모아서 축구를 하는 예능이 유행했다. 몸을 쓰는 일에 둔한 내 기준에는 운동선수라면 모든 종목의 운동을 잘할 것 같지만, 농구 선수가 발을 쓰는 건 다른 일이구나 하고는 허를 찔린 듯했다. 사실은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큰 틀에서는 모두 예술가이지만 음악에는 흥미가 없는 화가, 춤을 못 추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언뜻 보면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이는 환경 이슈 역시 생태보전 부문과 에너지 전환 부문의 접근 방법이 매우 다르며, 심지어는 충돌하기도 한다. 에너지를 전환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 시설을 많이 지어야 하는데, 이는 생태보전 측면에서는 여타의 개발사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석탄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탄소배출이 없고 안전하지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부문과 더 직접적인 충돌이 생긴다. 토지이용에서 경합이 일어날 때 지대 지불 능력은 낮고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생태계와 재생에너지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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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얼어붙은 강의 기억을 찾아서 “북쪽의 바람이 바다와 만나는 곳, 그곳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강이 있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에 나오는 자장가다.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특별한 강 아토할란에는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가 찾아 헤매는 깊고 진실한 답이 남겨져 있다. 이 강은 얼어붙어 있지만, 과거의 비밀스러운 모든 진실을 품고 있다. 물은 구름에서 빗물이 되어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 더욱 낮은 곳을 찾아 그리고 더 넓은 강을 이루며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그리고 바다에서 다시 빗물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순환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이해하면 이 여정에 담긴 특별한 강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연기반해법’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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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풀씨들 도전은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보통 낙관적이다. 시민사회에서 활동가로 살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활동하면서 힘든 점이 없냐’는 것인데, 나는 늘 별로 힘든 일이 없다고 같은 답을 하곤 한다. 기존과 다른 길을 가보자고 제안하는 일은 당장은 기득권의 거대한 벽에 막히고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우리의 캠페인이 결국 승리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을 함께 걷는 선량한 사람들과 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사는 곳이 다르고, 일면식도 없고, 가는 길이 차이 나도 따뜻한 시선으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나의 친구이자 동지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선량한 나의 동지들은 최근 들어 더욱 가파른 속도로 많아지고 행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