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준서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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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자가 ‘불방 KBS 다큐’서 했던 말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뿐 “KBS 다큐멘터리에서는 슬펐던 과거 이야기보단 그동안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유가영씨(26)는 세월호 생존자다. 그리고 4월 방영이 무산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의 주인공이었다. 가영씨는 지난해 12월부터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2월에 돌연 ‘제작이 중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4월18일 방영 예정인 다큐가 4월10일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가영씨가 KBS 다큐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그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세월호 10주기를 약 한 달 앞둔 지난달 18일 만난 가영씨는 “10년 동안 제가 무엇을 했고, 지금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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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⑤ ‘편안한 지점’을 찾아가는 몸···트랜스젠더만의 이야기일까? 자신이 남성이나 여성 어느 성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은 사람, 법적 성별을 바꾸지 않은 사람 등은 트랜스젠더가 아닐까.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질병이 아닌, 성별이 불일치한 ‘성 건강 상태’라고 규정했다. 특정 요건을 갖춰야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라는 것이다. 100명의 트랜스젠더가 있다면 100개의 정체화 과정과 트랜지션이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상상력은 아직 빈곤하다. 사회가 해당 성에 대해 기대하는 외양을 갖추는 것은 물론 성역할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트랜스젠더는 여자 또는 남자가 되는 것일까. 트랜스젠더는 그저 ‘나’로서 존재하며 편안한 지점을 찾아가는 ‘상태’의 몸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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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④ “아픈 게 왜 두려운지 생각해보면 잘 아플 수 있는 사회 해답 나와” “보통 한국 사회를 규정할 때 ‘남성’ ‘비장애인’ ‘선주민(먼저 살던 사람)’ 중심 사회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덧붙여 ‘건강 중심’ 사회라고 말해요. 모든 사람이 건강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사회죠.”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47)는 지난달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픈 몸은 질병을 가진 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한 대표는 본인이 난치성 질환을 갖게 되면서 산업화·경제성장이 압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아픈 몸들을 위한 ‘언어’가 없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잘 아플 권리, 즉 ‘질병권’을 이야기하는 운동을 2019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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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② 14년차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우리 몸은 오답이 아니야”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한 동화 중에 주먹으로 물이 새는 둑의 구멍을 막고 선 소년 얘기가 있거든요. 가끔 제가 그 소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안된다고요.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가는 게 안되면 반 발자국, 그것도 안되면 버티기라도 하자고 다짐하죠.” 김지양씨(38)에게선 뜻밖에도 너무 비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10년 넘게 몸 다양성 관련 활동을 해 온 원동력을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김지양’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데뷔 14년차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패션 잡지 ‘66100’ 편집장이자 동명의 의류 브랜드 대표이고, 세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자 강연가, 외모 강박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임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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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조울증이 함께 왔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소개팅할 때 보통 ‘뭐 좋아하세요?’ 물어보잖아요. 전 ‘안 해본 게 뭘까요’라고, 대답해요.” 학원 강사, 옷 가게, 시민단체 활동가, 비건 카페 사장, 강연자, 작가…스물 아홉 인생 동안 거쳐간 직업만 10개가 넘습니다. 다재다능이거나 변덕 때문 만은 아닙니다. 이사고 작가는 스스로를 ‘ADHD의 표본’이라 부릅니다. 집중의 밀도와 빈도는 높지만, 지속되지 않습니다. 한 달 넘게 공들여 작업한 빈티지 매장을 하루만 딱 열고, 팔아치운 적도 있습니다. ADHD와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이사고 작가를 지난달 이틀에 걸쳐 자택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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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이렌’ 리더 소방관 김현아 “다 바꿔보자…‘퍼스트 펭귄’이 되고 싶었다” ‘편견을 먹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지난달 전세계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은 전·현직 경찰관,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맨, 운동선수 여성 24인이 직업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여성들이 진흙을 뒤집어쓰고, 망치와 삽을 들고 경쟁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출연자들은 “악바리는 자신 있거든요”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 같은 기개 넘치는 대사를 날리며 편견을 부쉈다. 그중에서도 소방팀의 활약은 대단했다. 프로그램은 팀워크를 보여주는 ‘아레나전’과 서로의 기지를 공격해서 탈락시켜야 하는 ‘기지전’으로 구성됐다. 소방팀은 방송되지 않은 분량까지 총 세 번의 아레나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부상을 입은 팀원을 위해 한계까지 노력하는 모습,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전략을 짜는 모습 등으로 많은 시청자의 응원을 받았다. 소방팀 4인의 리더를 맡았던 김현아 소방장을 지난 23일 경기 화성소방서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