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선
SF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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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저게 날 속였어 나는 간혹 스스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 덕분에 영화 <그래비티>(2013)를 매우 당황스러워하며 보았다. 나는 오로지 두 가지만 알고 있었다. 등장인물이 우주에서 조난당한다. 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다. 작중 인물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왕복선에 탑승한다. 신참인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는 망원경 수리를 위해 우주 유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인공위성 파편 더미가 그녀를 습격한다. 팀의 지휘를 맡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그녀를 구조해 귀환한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이미 파괴되었고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90분 안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야 한다. 90분 후에는 파편 더미가 지구를 일주하여 주변을 뒤덮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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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탐조로 한 걸음 내딛는 일 지난여름엔 CCTV 영상을 잔뜩 구경했다. 국가교통정보센터에서 제공하는 보령해저터널 근방 CCTV 화면에 새호리기가 등장한 덕분이었다. 어쩌다 그쪽에 둥지를 틀었는지, 누구든 접속하기만 하면 새호리기가 파닥거리고 갸웃거리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새호리기는 이름대로 눈을 홀릴 정도로 현란하게 비행하고, 성체는 3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다소곳이 앉은 새는 그저 주먹만 하고 복실복실한 생물로 보였다. 매과에 속하는 조류답게 색상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몸이 날렵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몹시 멋지고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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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엿듣는 알고리즘아, 들어봐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인스타그램의 추천 알고리즘이 화제에 올랐다. 그다지 관심도 없는 게시글이 자꾸 나오더라는 거였다. 한 명은 딱히 원한 바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불륜 문화를 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쩌다 불륜 사연을 읽었더니 슬금슬금 비슷한 게시글이 나타났다고 들었다. 한두 개 보고 나니 추천 피드가 온통 뒤덮였다고. 알고리즘은 사소한 행동마다 황급히 반응한다. 극성 보호자처럼 호들갑이 심하다. 심지어 앱을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 정보를 수집하는 듯했다. 우리가 정말로 감시되고 있을까? 실험 삼아 우리는 그날 나왔던 키워드를 외쳤다. “동탄! 청약! 불륜! 불륜!” 웃기게도 하나같이 남의 휴대폰을 타깃으로 삼았다. 짧은 실험 결과 한 명이 당첨되었다. 인스타그램의 추천 피드에 갑자기 청약 관련 게시글이 생겼다. 우리는 ‘진짜네!’ 하며 실컷 웃었고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이동하며 확인해보니 나도 당첨이었다. 지금까지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불륜 관련 게시글이 나의 피드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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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사주팔자의 쓸모 간혹 “내가 점을 보러 갔는데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돈을 내서라도 용한 점술가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 뉴스에서 보는 무속 이야기는 불쾌하지만 개개인의 소소한 일화는 재미있다. 사주팔자 풀이가 현대화되는 모습도 흥미진진하다. 전에는 여자에게 관직에 진출할 사주가 있으면 결혼운으로 봤지만 지금은 남자와 똑같이 직업운으로 본다든가, 연애운을 볼 때 성적지향을 먼저 확인하더라는 경험담이라든가, 앱을 사용하면 간편하게 사주팔자를 확인할 수 있다든가. 다들 한때 혈액형에서 성격을 읽었듯이, 지금 MBTI 체계를 유형별로 파악하듯이, 사주풀이도 의외로 흔한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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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성큼걸이와 스트라이더 논쟁 오랜만에 ‘성큼걸이’ 이야기를 했다. 성큼걸이는 J R R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물 ‘아라곤’(혹은 ‘아라고른’)의 별명이다. 작중에서 아라곤은 본래 곤도르 왕가의 후손이지만 혈통을 숨긴 채 오랫동안 떠돌이로 생활한다. 순찰자로 지내는 시기에는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다며 ‘스트라이더(strider)’라고 불린다. 그리고 스트라이더가 성큼걸이라는 한국적인 명칭으로 변하는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었다. 저자인 톨킨은 언어학을 깊이 파고들었던 사람답게 소설에 나오는 언어를 매우 공들여 만들었다. 작중 요정들이 쓰는 ‘퀘냐(높은요정어)’나 ‘신다린(낮은요정어)’은 고유한 글자, 문법, 발음, 단어를 갖추고 있다. 인공어치고 완성도가 높은 덕에 우리는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요정어로 의사소통할 수도 있다(한국에는 팬이 제작한 요정어 학습지가 나온 적이 있는데, 여타 외국어 학습지처럼 글자부터 일상회화까지 차근차근 안내하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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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북토크의 견물생심 북토크와 출판기념회는 어감이 다르다. 전자가 아기자기한 만남의 자리라면 후자는 정치인이나 나이 지긋한 사람의 부대행사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둘 사이의 간격이 훨씬 가까웠던 모양이다. 본래 북토크는 출간을 축하할 겸 작가를 예우하는 행사였다고 들었다. 지금의 북토크는 출판사의 마케팅과 독자의 팬심이 조응하는 자리다. 작가는 ‘신간이 나왔습니다. 우리 애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는다. 아이돌이 신곡을 발매하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과 유사하다. 양쪽 다 얼굴을 내밀고 존재를 알리고 호감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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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버섯과 원고료 막막(makmak)을 뒤집으면 캄캄(kamkam)이라는 말장난을 보았다. 관점을 바꿔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니, 어쩜 그리도 막막하고 캄캄한지…. 작가로 지내면서 나도 종종 그런 감정에 빠졌다. 마감일이 코앞인데 한 글자도 쓰지 못했을 때. 당장 닥쳐오는 일정에 허덕이느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프리랜서로 몇년 혹은 몇십년을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질 때. 통계청의 예술인 실태조사를 참고하면 작가 중에서 예술활동으로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얻는 사람은 전체의 10% 이하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많겠냐마는, 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상당량의 불안과 우울을 공유하는 편이다. 이번에 출판 관련 지원금이 더 삭감됐다더라. 전쟁으로 종잇값이 올라서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더라. 한국 출판사들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40% 넘게 줄었다더라. 분명 새로운 소식인데 하나도 신선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책의 존재감은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듯이, 지금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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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모르는 단어를 기대합니다 창피한 기억이 있다. 내가 열 살 언저리였던 때, 어느 공터에 있는 트럭에서 ‘어름’을 팔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트럭 쪽으로 돌아가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름은 틀렸어요. 얼음이라고 써야 맞아요.” 아저씨는 웃으면서 자기가 몰랐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간질간질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어름’이 예전에는 맞는 표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조금 겸허함을 배웠다. 어린이를 대하는 방법도 약간은 배운 듯하다. 이때 배운 겸허함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되었다. SF의 특징은 낯선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는 단어가 낯선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독자는 어렸을 때의 나처럼 ‘내가 아는데, 이거 틀렸어. 내가 맞아’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다. 낯섦은 소설의 배경이 비현실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존 스칼지의 소설 <무너지는 제국>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플로우 붕괴만 아니었다면, 반란도 성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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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데스게임과 업무상 재해 갑자기 ‘데스게임’에 꽂혔다. 데스게임은 말 그대로 죽음이 걸린 게임을 뜻한다. 데스게임을 다루는 작품은 <배틀로얄>이나 <오징어 게임>처럼,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서 생존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는 내용을 보여주곤 한다. 탈락자, 패배자는 죽는다. 혹은 죽으면서 게임에서 낙오된다. 참여자는 왜 그런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참가한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즉사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절박해진다.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러다가도 게임 종류에 따라 협동해야 한다. 덕분에 데스게임 작품에는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찐득한 드라마가 피어난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가 주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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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돌고래 기사단을 생각하며 돌고래는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적 생명체이며 돌고래와 대화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한때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1961년 미국 그린뱅크의 국립전파천문대에 모였던 10명의 과학자도 그중 일부였다. 프랭크 드레이크, 칼 세이건 등을 포함한 이 모임은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SETI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참석했던 존 C 릴리는 다른 종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며 특히 돌고래에 빠져 있었다. 참석자들은 돌고래 이야기에 매혹되는 한편, 돌고래의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 외계 신호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전혀 다른 두 지성체 간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만들고, 비공식적으로는 ‘돌고래 기사단(The order of the Dolphin)’을 결성했다. 농담 같지만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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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나의 ‘낯선’ 달리기 연습 달리기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헬스장보다 야외에서 달리는 쪽이 기분 좋고 체력도 잘 는다는 거였다. 달리기 초심자로서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진 못했다. 밖을 달리다 보면 나와 몸과 세상이 얼마나 서먹한지 절감하게 된다. 바닥은 디딜 때마다 딱딱하게 굳어 나를 밀어낸다. 공기는 날카롭거나 텁텁하다. 내 다리는 의지에 반해 자꾸 땅에 달라붙으려 든다. 애써 팔다리를 통제하고 있으면 사지가 자유롭다는 개념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상한데? 안 되는데? 물론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나 되어야 ‘오체불만족’ 생각에 빠진다. 몸뚱이가 물리적 실체를 지닌 구속복처럼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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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 인생의 게임 게임 개발자 라프 코스터는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이라는 책에서 가상의 게임을 제시한다. 자, 가스실처럼 생긴 우물이 있다. 당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우물에 떨어뜨려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을 한다. 희생자는 외형이 제각각이다. 어린 사람, 장성한 사람, 뚱뚱한 사람, 키 큰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던져진다. 바닥에 떨어진 희생자들은 우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선다. 만약 누가 우물 밖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게임에서 진다. 하지만 희생자를 잘 떨어뜨린다면 아래에 깔린 사람들은 가스에 질식해 죽는다. 이 게임을 계속하려면 당신은 희생자를 효율적으로 죽여야 한다. 이게 전부고, 반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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