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선
SF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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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SF 영화의 메시지 전송 속도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처음 이채로웠던 장면은 지구와 인간의 모습을 그린 금속판이 우주선 벽에 한가득 걸려 있는 부분이었다. 파이어니어호에 실렸던 금속판과 동일하게, 영화 속 금속판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계 문명에 어떻게든 인류를 소개하기 위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태양계의 행성들과 우주선 그림, 인류가 진화하는 그림, 그림의 축척을 알려주기 위한 수소 원자 표시 등. 원작 소설에도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소설에서는 그레이스가 깨어난 후 자신이 인류를 위해 우주 한복판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거의 100페이지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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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새 책보다 헌책인 경우 갖고 있던 책을 대거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사할 때마다 책은 정말 애물단지다. 한 권에 500g이라고 잡아도, 큰 책장 하나를 채울 양만 넘겨도 책은 1t 트럭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책더미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으면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 집도 땅도 없는 주제에 굳이 책을 소장하는 미련한 사람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종이 쓰레기 사이에는 심리적으로 굳건한 관문이 존재한다.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모셔두고 싶고, 정 안 되면 새 주인이라도 찾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미련스럽게 미적미적 중고 판매 목록을 만들고 있자니 샛길로 빠지고 상념에 빠지게 되었다. 책도 상품인데, 헌책이 새 책보다 좋을 게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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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SF엔 주연 아닌 주설정이 있다 영화 <아바타>의 외계인은 피부가 파란색이다. 새파란 피부는 그들이 지구에 없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표지다. SF에서는 인물이 파랗거나 투명하거나 어쩌면 형광빛으로 반짝거릴 수 있다. 비현실성은 SF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다. SF는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가정하는 장르이므로 오히려 SF의 설정은 명백히 비현실이어야 한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발생한다. SF에서는 아무 설정이나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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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장님 코끼리 놀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여러 사람이 코끼리를 둘러싸고 고뇌에 빠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인간의 손으로 만져서 파악하기에는 코끼리가 너무 크다. 게다가 코끼리의 모양새는 꽤 독창적이다. 코끼리 코를 만지는 사람은 귀, 다리, 상아를 만지는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 코끼리를 경험한다. 만약 코끼리에 관해 전혀 모른 채 코를 만진다면, 나는 그걸 뱀처럼 길쭉한 생물의 몸통이라고 여길 터다. 그러다 입에 도달하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여기가 입이라면 내가 만졌던 부위는 대체 뭐지? 코끼리의 신체는 어디까지 뻗어 있는 거지? 처음부터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의문에 빠질 일도 없다. 정보의 제약이 물음표를 부른다. 눈을 쓰지 않고 코끼리를 이해하려면 단서를 조합하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 추리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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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슈뢰딩거는 왜 고양이를 말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슈뢰딩거의 방정식보다 훨씬 대중적이다. 하긴 고양이가 방정식보다 사랑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자신의 ‘고양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 고양이를 사용했다. 이 사고실험에서 고양이는 상자 안에서 죽었을지 살았을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고양이의 생사는 우리가 상자를 열어서 관측할 때 비로소 결정된다. 그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는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슈뢰딩거는 그런 불확정성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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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기에 빅풋이 있다면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뿔 달린 말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코뿔소는 분명히 현실에 존재한다. 비록 코뿔소는 유니콘이 아니지만, 이런 사례는 ‘환상의 생물’과 실재하는 생물 사이의 경계가 약간은 불명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 고대 판타지 소설 <봉신연의>에 상서로운 영수(靈獸)로 등장하는 사불상은 환상의 생물인 동시에 실존하는 종이다. 현실의 사불상도 당나귀의 몸통, 말의 머리, 소의 발굽, 사슴의 뿔을 갖추었지만 넷 다 아닌 모습(四不像)이다. 사불상의 이름에는 신화와 사실이 혼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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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실은 언제나 하나’는 없다 미스터리 장르는 정답을 가정한다. 특히 수수께끼나 퍼즐 풀이 성격이 강한 고전적인 미스터리는 작품 전체가 독자를 향한 퀴즈로 만들어지곤 했다. 자, 범인은 이 중 누구일까요? 정답은 다음 페이지에 밝혀집니다. 독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려면 문제는 물론 정답도 그럴듯해야 한다. 미스터리 작가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생긴다. 오답을 삭제할 것. 훌륭한 정답을 제시할 것.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스는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을 소거하고 남은 것,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추리로 걸러내고 마지막으로 남는 하나가 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홈스를 만들어낸 저자 코넌 도일에게서 이름을 딴 명탐정 코난의 말이 더욱 간결하고 대중적이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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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성의 없음과 부담 없음 사이 나는 ‘문자 메시지’를 문자로 된 메시지로 여겼다. 글을 쓰듯 문자를 보냈다. 지금이라면 ‘ㅋㅋㅋㅋ ㅇㅇ’이라고 쓸 일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입력하는 식이었다. 지금 떠올리니 약간 징그럽기도 하다. 요즘 누가 마침표까지 꼬박꼬박 찍는다고. 그래도 이 버릇은 온라인 채팅, 메신저, 블로그, SNS로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나이 있는 남자분인 줄 알았어요… 너무 점잖게 말해서’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온라인 대화를 위한 문장 규범을 받아들인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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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좋은 제목을 짓는 방법 ‘데못죽’이 <놀라운 토요일> 방송에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줄임말을 보고 본딧말을 맞히는 퀴즈로 웹소설 제목이 출제됐다는 거였다. 데못죽은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별칭이다. 줄임말만 보면 의미를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방송에 나왔던 오답 중 하나는 ‘데이트 못하면 죽는 남자’였다) 본래의 제목은 내용을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주인공은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몸에서 눈을 뜬다. 그는 자신에게 경고하는 시스템 메시지를 본다. 정해진 기간 내에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면 죽는 ‘상태 이상’에 걸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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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틀리고 싶을 때 SF를 본다 당신이 틀렸다. 이런 말은 언제나 불편하다. 감정적으로 불쾌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내 생각이나 판단이 틀렸는지 어떤지, 틀렸다면 어떤 오류가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은 인지적으로 부담스럽다. 다시 말해,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인지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하던 대로. 우리 머리는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야 당황해서 뒤늦게 수습에 나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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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공룡의 멸종, 과연 우연일까요 공룡의날은 6월1일이다. 그런데 국제 공룡의날은 5월 셋째 주 화요일이다. 둘 다 기원이 그리 오래되진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명확한 이유 없이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5월의 기념일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어느 선생님들이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과학과 공룡 탐구에 빠져들게 하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공룡사랑단의 세를 키우려는 건전하고도 야심만만한 속셈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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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일부러 배회하는 사람들 친구가 지금도 ‘피크민’을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피크민이라는 색색의 조그마한 생명체와 함께 다니는 게임 ‘피크민 블룸’ 이야기였다. 게임 플레이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모바일 기기에서 게임을 실행하고, 어디로든 냅다 걷는다. 그러면 나의 위치 정보를 토대로 게임 속 증강현실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를 따라 꽃이 심어지고, 피크민이 졸졸 쫓아온다. 남들이 심은 꽃을 보거나 새로운 피크민 모종을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