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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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선생님, 저 잘했죠. 칭찬해주세요.” 2011년 겨울이었다.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표적이 되어 수배생활을 마치고 부산구치소 7上1, 0.68평짜리 독방에 갇힌 첫날이었다. ‘철커덩’ 육중한 철문을 잠근 간수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나도 모르게 김남주 선생님께 독백처럼 건넨 인사였다. 이런 독방에서 9년3개월을 사셨을 선생님의 삶 앞에 조금은 부끄럽지 않고, 칭찬받고 싶은 날이었다. 선생님은 이 감옥이 “팔과 머리의 긴장이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독서실이고 정신의 연병장”(‘정치범들’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꿈을 키워나가야 할까. 내심 꿈에 부풀기도 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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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이번 희망버스는 ‘아리셀’로 간다 8월17일 희망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이번엔 화성시 전곡산업단지에 있는 리튬이온배터리업체 아리셀 참사 현장이다. 6월24일 대형폭발사고가 일어나 중국 동포노동자 17명, 한국 노동자 5명, 라오스 이주노동자 1명 포함 총 스물세 분이 사망했다. 충북인뉴스 기자 최현주님 사연은 가슴 아팠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특집기사 외에도 줄기차게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 그리고 경기도 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기사 등을 보도해 주던 참 고마운 분이었다. 그의 남편 김병철님도 사망했다. 아리셀의 연구소장이던 그는 폭발사고가 난 3동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평소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등을 챙겨 간식과 도시락을 나눠 먹던 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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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이게 나라냐고,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부들부들 떨린다. 참담하다. 지난 7월4일이었다. ‘용호성’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내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재직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공연 예정이던 <개구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좌파 문화예술인이 연출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연 자체를 무산시킨 당시 사건에 관여했음이 밝혀져 있다. 2014년엔 영화 <변호인>을 파리 한국영화제 출품 작품에서 배제토록 지시했다. 같은 해 3월경엔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교문수석 모철민, 문체비서관 김소영 등으로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총 19명이 좌파 성향이니 위촉을 배제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문체부 담당 사무관에게 여러 수단을 강구해 배제 대상자를 책임심의위원에서 제외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2015년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파견돼서는 국악원의 정기공연 프로그램인 ‘금요공감’의 공연작으로 예정된 <소월산천>의 연출이 당시 국정원 및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대상이라는 이유로 공연 2주 전 공연을 변경 혹은 취소하도록 지시했음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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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키다리 아저씨’ 김판수의 노래 이야기 수재 소리를 들으며 1961년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친구의 삼촌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법 전공 박노수 교수로부터 친구와 함께 유학을 오라는 멋진 제안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보릿고개조차 힘겹게 넘던 때, 국경을 넘어 유학을 가는 것은 조선시대 박지원이 사절단에 뽑혀 청나라 열하를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가자.” 청년은 학교 입학 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 학생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등 나름 의협심이 강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에 비판적 인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싶은 기대와 용기도 충만했습니다. 청년은 케임브리지대에서 1년 수학 후 박노수 교수 추천을 받아 덴마크 코펜하겐의 국제학교 ‘인터내셔널 피플스 칼리지(IPC)’ 영화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핀란드에서 온 눈동자가 지중해처럼 푸른 소녀 에텔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20대는 무엇을 해도 좋고 아름다운 생의 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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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여섯 박스의 경옥고 지난주 금요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최인기를 위한 꿀밥’ 자리를 가졌다. 얼마 전 1년2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최인기를 위로하는 소박한 자리였다. 2023년 2월10일 그와 그의 동료 다섯 명이 법정 구속됐을 때 이 지면에 ‘감옥만 여덟 번째인 최인기를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구속 사유가 근 10여년 전인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강남구청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연대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연대한 일로 10여년간 경찰, 검찰, 법원에 끌려다녔으면 충분한 죗값을 받은 것과 같은데 실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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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바람의 세월’, 그 10년에 대하여 <바람의 세월>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다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이었던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 선생은 그해 8월8일부터 캠코더를 들고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4·16TV’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보관한 영상자료만 5000여개, 50테라바이트에 이른다. 편당 1~1.5기가바이트인 영화로 치면 5000여편. 하루도 빼지 않고 8시간씩 4년여를 쉼 없이 찍어야 가능한 분량이다. 처음 뵐 때 검었던 머리는 세어 이제는 은빛이다. 그는 지금도 해마다 몇번씩 딸이 물길 따라 주검으로 돌아왔던 동거차도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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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내 마음속 ‘파블로 네루다 문학학교’ 청소년을 위한 파블로 네루다 평전을 쓴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출간은 아직 못했다. 세계의 혁명가와 위인들에 대한 평전을 제안받고는 두말없이 나는 파블로 네루다를 써보겠다 했다. 사랑과 혁명의 시인으로 동시에 불리는 그를 꼭 한번은 사숙해 보고 싶었다. 더불어 그의 시와 삶을 좇다보면 자연스레 근대 남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공부가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엔 사랑의 시인으로 시작했다. 그의 첫 시집인 <스무 개의 사랑노래와 한 개의 절망노래>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사랑에 관한 최고의 작품이다. 하지만 네루다는 일찍 얻은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근원적인 외로움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외로움을 떨쳐보기 위해 머나먼 아시아로 새로움을 찾아 떠났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의 랑군과 실론섬 그리고 싱가포르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더 깊은 소외의 늪을 경험하게 된다. 기묘하고 신비로운 의식들과 문화, 종교들. 거기에 가난과 질병과 오랜 식민지 생활 속에서 무엇을 빼앗기는지도 모르는 채 쓰러져가는 불행한 인간가족들의 삶이 빚어내는 여러 세계의 모순과 비참이 그를 더욱 고독하게 했다. ‘대양을 응시하는 텅 빈 조개껍질’ 같았고, ‘삶의 공허가 검은 바다처럼 차오르’던 청년 시절. 그 공허와 혼돈이 모아져 이상야릇한 초현실주의 문학의 한 전범으로도 불린 시집 <지상의 거처>가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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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1000송이의 국화와 야생화의 바람 백기완 선생님 3주기 추모대회가 지난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서 열렸다. 추모로만 끝낼 수는 없어 올해도 사람들이 모여 투쟁대회와 행진을 조직했다. ‘학살과 착취를 멈춰라’는 외침 아래 장애인, 철거민, 도시빈민들, 비정규노동자들, 그리고 평생을 거리와 광장에서 함께해 온 원로 선생님들이 같이했다. 뼛속 깊이 저항의 의지로 다져진 그들 민중의 열기로 모처럼 거리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1000송이의 국화꽃과 야생화를 들고 이스라엘 대사관을 거쳐 이태원 분향소까지 나아가며 분노할 일만 태산처럼 쌓여가는 작금의 현실을 직시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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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당신을 ‘날리면’ 되는 일인가 오늘도 아침부터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서야 했다. 지난 18일에 발생한 강성희 의원 관련 대통령 경호처의 폭력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작년 6월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장에서 그들에 의해 같은 식으로 입이 틀어막혀 들려 나와야 했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나섰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개인이 끌려 나온 게 아니다. 대통령과 행정부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라는 국회조차 가만히 입을 틀어막고 있으라는 협박과 폭력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충분히 국회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회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그리고 2200만 노동자 가족의 권리보장법인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 역시 국회의 결정을 거부했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일명 ‘김건희 특검’ 또한 거부권 행사가 기정사실처럼 거론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상습적인 직권남용이나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국회(의원)의 역할과 기능, 그 결정을 이렇듯 함부로 취급할 바엔 아예 국회도 해산시키고 ‘왕’ 마음대로 해먹고 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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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나의 직업은 텔레마케터였다 지난 시절 나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로 수배받던 시절 어느 보수언론 기자가 나에 대한 심층 기사에서 시인의 탈을 쓰고 평택대추리 미군기지 이전확장 반대,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용산 철거민 진상규명 투쟁 등 현장만 쫓아다니는 전문시위꾼이라고 한 게 오히려 나의 정체성에 어울렸다. 시인을 가장한 전문시위꾼에 이은 나의 직업은 오히려 텔레마케터에 가까웠다. 무제한 요금제가 없던 시절에는 전화통화료만 20만원 넘게 나와 절망하던 때도 많았다. 하루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되뇌다 보면 입이 돌아가려 하기도 했다. 세 번째 직업이라면 외판원이 맞다. 시도 때도 없이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티켓과 물품을 팔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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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2200만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노란봉투법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자주적으로 만들어 사용주에게 단체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는 게, 고용노동부 통계로 22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라는 내용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사용주들이 들어주지 않을 경우 노동력 제공을 일시적으로 거부하고 일손을 놓고 쉬는 파업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누가 ‘보장한다’가 아니라 ‘가진다’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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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둑’ 선배 소집이라고 했다. 안 갈 수가 없었다. 2012년 5월 광주 5·18기념재단 2층 대강당 옆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얘기를 들었다. 항상 겸손하며 노련한 오두둑 선배는 늘 물음형이었다. 대강당 안에서는 ‘평화바람’의 명목상 단장인 문정현 신부께서 그해 5·18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금 5000만원 모두 내놓자고 했으니 길 떠나는 종잣돈은 되지 않겠어요?” 식이 끝나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거리며 나오신 신부님은 오두둑과 평화바람 사람들이 결정했으면 된 거지 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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