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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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 자기소개서에서 성장 배경에 대한 부분은 대개 비슷하다. 어려서 겪은 가정 환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역설한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저는 독서를 즐기고 총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을 받아 저는 예의 바른 성품을 길렀습니다.” 어릴 때의 환경이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지능이나 성격은 타고날까, 아니면 만들어질까? -
전중환의 진화의 창 ‘뜨거운 손’은 인간 본성이다 “오케이… 하지만 오늘의 정대만은 최상이다, 산왕.”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드 정대만은 산왕공고와의 경기 초반에 3점 슛을 성공시킨 뒤 손목을 가볍게 풀며 중얼거린다. 이날 ‘손끝에 불이 붙은’ 정대만은 3점 슛을 8개나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농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어떤 선수가 가끔 ‘그분이 오시거나’ ‘슛발이 받는’ 날을 맞으면 득점포를 미친 듯이 터뜨리곤 한다. 오늘 뜨겁게 불타오르는 선수에게 패스를 몰아주라고 팬들은 자기 팀 선수들에게 난리다. 이처럼 슛을 연거푸 성공시킨 농구선수는 다음번 시도에도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것을 ‘뜨거운 손(Hot hand)’ 현상이라 한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믿을까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런 의심이 들었다. 혹시 얘가 산타클로스는 말짱 허구임을 알면서도 선물을 더 받고 싶어 짐짓 속아주는 척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라. 산타 할아버지는 이미 유치원 산타 잔치에 오셔서 선물을 건네주셨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우리 집을 방문해 침대 머리맡에 또 다른 선물을 놓는다고? 말도 안 된다. 물론, 막상 성탄절 아침에 선물을 열며 활짝 웃는 아이를 보고 내가 괜한 의심을 했음을 깨달았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자.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뿐만 아니다. 미취학 아동은 미키 마우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 <겨울왕국>의 엘사 여왕, 드래건, 티니핑, 슈퍼맨, 뽀로로, 피터 팬, 귀신, 요정, 신, 천사, 악마 등이 정말로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영웅은 왜 존재하는가 2001년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는 북적이는 승강장에 서 있었다. 술에 취한 일본인이 선로에 굴러떨어졌다. 이씨가 뛰어내렸다. 취객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전동차가 이들을 덮쳤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구하고자 목숨을 던진 이씨의 행동은 일본 열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족에게 조의금과 위로 편지가 쇄도했다. 신오쿠보역에 추도문이 새겨졌다.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이야기가 실렸다. 긴 세월이 흐른 올해에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부산에 있는 의인 이수현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분노를 터뜨릴까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루미는 길거리에서 진우와 어깨를 부딪쳐 꽈당 넘어진다. 들고 있던 한약 팩들이 산산이 흩어진다. 진우는 넘어진 루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긴커녕 차갑게 내뱉는다. “아이 씨, 조심 좀 해.” 뒤돌아 사라지는 진우 등 뒤로 화가 난 루미가 고함친다. “쟤 뭐라는… 야! 너나 조심해!” 왜 우리는 남들로부터 모욕이나 무시당했을 때 분노를 터뜨릴까? 분노에 대한 기존의 시각은 분노를 세밀히 묘사하거나 다른 대상에 비유한 다음에 인과적 설명이 다 끝났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분노는 외부 위협에 대한 공격적 반응이다’ 혹은 ‘분노는 심적 압력을 배출하는 증기기관이다’ 같은 말은 실상 공허하다. 새로 알게 된 것이 없다. 반면 분노라는 정서가 특정한 진화적 기능을 수행해 먼 과거 조상들의 번식에 도움이 되게끔 자연 선택된 심리적 적응이라는 진화적 시각은 새로운 발견을 이끈다. 분노가 어떤 가설에서 추측하는 기능을 잘해내는 데 필요한 특질을 과연 지니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어떠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게끔 진화했을까?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피해자를 비난하는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이건 아니지. 세금으로 왜 보상해줘? 나라를 위해 순직한 것도 아니고 서양 귀신 축제에 술 퍼마시고 놀다가 죽은 건데…” 2022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포털 뉴스에는 이처럼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댓글이 넘쳤다. 작년 제주항공 2216편 사고 때도 “유가족들만 횡재네요. 보상금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일 듯”이라는 악성 게시물이 어느 인터넷 동아리에 게시되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모욕을 근절할 전담 수사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공포영화도 안 봤어? 어둠이 내리면,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1996년 공포영화 <스크림>의 한 장면을 보자. 부모가 다 외출한 집에서 여고생 케이시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살인마 고스트 페이스와 통화 중이다.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사색이 된 케이시는 울부짖는다.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 살인마가 나지막이 나무란다. “‘누구세요?’라고 떠들면 절대 안 돼. 공포영화도 안 봤어? 죽기를 바라는 짓이야.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는지 밖에 나가 조용히 확인하는 게 낫지.” 곧 살펴보겠지만, 이 대사는 우리가 공포물에 빠져드는 진화적 이유를 완벽히 설명해준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시애틀 추장의 편지는 허구다 1854년 북미 원주민의 한 부족을 이끌던 시애틀 추장이 백인 지사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원주민이 대대손손 살아온 영토를 팔고 보호구역으로 옮겨가라는 미국 정부의 통첩에 대한 답변이었다(연설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 추장이 보낸 편지라는 설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는 수천 마리의 들소를 보았다. 백인이 달리는 기차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그냥 내버려둔 것이었다… 우리는 안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함을. 마치 핏줄이 한 가족을 묶어주듯이 세상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지 않았다. 인간은 그 안의 한 가닥 실에 불과하다. 인간이 그물에 무슨 짓을 저지르든, 이는 자신에게 저지르는 짓이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소유의 심리 누가 무엇을 소유한다. 참 까다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어렵긴 뭐가 어려워? 유아도 그 정도는 다 아는구먼!”이라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듯하다. 하긴, 키즈카페에 널린 장난감 블록을 몇개 모아서 놀던 세 살배기 아이도 다른 아이가 그중 하나에 손을 대면 “이건 내 거야!”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음악은 영역 방어에서 유래했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단연 주인공이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식, 장례식, 축제, 스포츠, 종교의식 등 어느 행사에서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음악 말이다. 거리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K팝을 목청껏 떼창한 시민들은 세대를 넘어 모두 하나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음악이 지닌 이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음악은 왜 진화했을까?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부끄러움을 모를까? 진화론적 '윤석열 탐구' 자기가 여전히 으뜸인 줄 아는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 같았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은 구치소 앞을 당당히 걸으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입을 앙다문 채 미소 짓는 특유의 꾸러기 표정이었다. 그는 간간이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환호를 끌어냈다.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대혼란에 몰아넣고, 국격을 추락시킨 내란 수괴치고는 너무나 태연하고 뻔뻔했다. 윤 대통령은 왜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까? 온 국민이 내란 사태로 엄청난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손실을 입었음을 그는 정녕 알지 못하는 걸까?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운동은 몸에 좋을까 혹시 새해를 맞아 꾸준히 운동하기로 결심하셨는가? 빈정댈 의도는 전혀 없지만, 지금쯤 그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인 가운데 운동 부족인 사람이 열 명 중 여섯 명이나 된다. 세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사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헬스장은 섬뜩한 고문기구들이 늘어선 귀신의 집을 연상케 한다. 러닝머신부터가 19세기 영국에서 죄수에게 중노동을 시키기 위한 징벌도구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운동은 고역이라는 직감이 별로 틀리진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