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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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진화는 사실이자 과학 이론이다 미국의 한 진화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만평은 이렇다. 의사가 환자에게 결핵이라고 진단한 다음에 묻는다. “혹시 창조론자이신가요?” “네, 진화는 그냥 이론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죠?” 의사가 답한다. “인간이 항생제로 결핵에 맞서게 된 이후, 결핵균은 웬만한 항생제에는 내성을 지니는 새로운 균주로 계속 진화해 왔습니다. 다행히 이런 내성 세균에도 잘 듣는 최신 항생제가 근래에 나왔죠. 하지만 생명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믿으신다니, 값비싼 신약보다 80년 전에 처음 나온 항생제를 처방해 드릴까요?”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종교적 믿음을 지니는가 인류학자 파스칼 보이어의 책 <종교, 설명하기>에는 어느 날 그가 손님들을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이 현장 조사하고 있던 카메룬의 팡 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팡 족은 마녀의 배 속에 특별한 내장이 하나 더 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 내장 때문에 마녀는 한밤중에 마을 위를 날아다니고,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독을 푼다는 것이다. 가끔 마녀들은 성대한 잔치를 벌여서 희생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다음엔 누구를 공격할지 계획을 짠다고도 했다. 팡 족 사람들은 자기 친구의 친구로부터 하늘을 날던 마녀가 바나나 잎사귀에 내려앉거나, 순진한 희생자들에게 마법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분명히 전해들었다고 했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공생은 상호 착취다 어린 시절에 이런 학습 만화를 읽었다. 개미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진딧물에게 말한다. “뭐? 너희들의 천적 무당벌레가 나타났다고? 내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식물의 즙액을 빨아 먹는 진딧물은 다 소화하지 못한 당분을 배설물로 내보낸다. “친절한 개미야. 고마워! 나도 맛있는 감로를 내줄게.” 진딧물은 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개미는 진딧물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개미와 진딧물이 활짝 웃으며 만화는 끝난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커피가 보내는 경고 신호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가 나를 깨운다. 커피는 내게 따뜻함과 남다른 힘을 주고, 쾌락과 더불어 고통을 준다.” 커피 애호가였던 나폴레옹이 남긴 이 말은 진리다. 많은 이에게 커피는 삶의 원동력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 없인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전국에 커피전문점 수가 10만개를 넘었다니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임신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임신? 그거 헛구역질 좀 하면서 아기를 열 달간 배 속에 품다가 쓱 꺼내는 거잖아.” 혹시나 이렇게 생각하셨다면, 큰 착각이다. 본래 임신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젊고 건강하던 여성도 임신을 하면 두통, 소화불량, 변비, 허리 통증, 요실금, 가려움, 입덧, 부기, 숨 차기 등에 시달린다. 임신부에게 기가 막힐 노릇은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의사는 “정상적인 증상입니다”라는 말만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물론 임신중독증이나 임신성 당뇨 같은 질병에 걸린 임신부는 더 큰 피해를 본다. 사실, 근대 이전에 임신 중에 혹은 낳다가 죽는 일은 여성에게 가장 흔한 사망 요인 중의 하나였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 가끔 이런 기분이 든다. 우주에 웅대한 목적이 있고,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느낌 말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돌이켜보면 퍼즐처럼 맞춰지는 지난 삶의 행로에 이따금 경외감을 품게 된다. 이를테면, 애인에게 차인 덕분에 오히려 평생의 배필을 만난다. 대학을 재수하는 바람에 내 적성에 맞는 천직을 찾는다. 장대비를 피하려고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책을 집어 든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편가르기의 심리학 승패가 났다. 환호하며 혹은 탄식하며 개표방송을 시청하셨을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느라 하얗게 불태웠을 때와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가? 정확하다. 과학자들은 당파적 성향이 스포츠 팬덤과 유사함을 밝혀냈다. 남성의 경우, 상대를 때려눕히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월드컵 경기 때뿐만 아니라 선거일 밤에도 자기 편의 승패에 따라 솟구치거나 곤두박질친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상상의 세계에 빠질까 ‘듄친자’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듄>에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듄>은 서기 2만6391년에 우주에서 가장 귀한 자원 ‘스파이스’를 독점하고자 벌이는 갈등을 담은 SF 영화다. 듄친자들은 영화 <듄: 파트2>를 기꺼이 극장에서 ‘n차’ 관람한다. 10만원이 넘는 6권짜리 소설 전집을 베스트셀러에 등극시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수십년 전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가 꾸며낸 세상에서 등장인물들이 스파이스를 두고 싸우건 말건 우리는 알 바 아니지 않나(듄의 세계관을 해설하는 유튜브를 다 시청하고 소설 전집까지 덜컥 산 내 중학생 아들에게 간청하는 말은 아니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였다. 대학교 때 친했던 선배로부터 오랜만에 카카오톡이 왔다. 아마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보낸 듯했다. “중국산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테러범이 되는 법률안에 대한 반대 청원 부탁드립니다. 반대 의견이 만 명을 넘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잡해져서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제했다는 말은 명백히 가짜뉴스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비밀요원이고, 매년 쌍십절이 되면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으려고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등의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음모론이 어김없이 또 등장할 것이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음모론과 가짜뉴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은 민주당원이 휘두른 나무젓가락에 목이 세게 눌린 자작극이다.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마약 의혹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한 공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당이 내려보낸 고정간첩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2012년 대선은 투표지 분류기를 조작한 부정선거다. -
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점을 믿는가? 연말연시에는 사주나 타로로 새해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점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유튜브, 스마트폰 앱, 온라인 상담 서비스 등으로 길흉화복을 점친다. 미신을 믿는 이로 보일까 염려해서인지 대다수 사람은 ‘재미 삼아’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함이라고 보호막을 친다. 사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점성술은 말도 안 된다며 비판한 바 있다. 도킨스는 저서 <무지개를 풀며>에서 미국의 어떤 작가가 한 신문사에 가짜 점성술사로 근무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작가는 오래된 점성술 잡지에 있는 글들을 가위로 잘라내서 모자 안에 넣고 섞었다. 그리고 글 12개를 임의로 뽑아서 모은 다음에, 마치 점성술사가 쓴 것처럼 ‘별자리 운세’ 칼럼을 신문에 매주 연재했다. 그 점성술 칼럼은 독자들의 앞일을 족집게같이 맞힌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는 대학원생 때 이 일화를 읽은 이후로 지금껏 사주나 타로와 담을 쌓은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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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하기 2199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한다. 인간은 1999년의 가상현실을 실재로 착각하면서 인큐베이터에 갇혀 사육된다.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자신이 지금껏 정교하게 꾸며낸 환영의 세계에 살았음을 깨닫는다.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다. 두 워쇼스키 감독은 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네오 역에 정한 다음에 필독서 세 권을 건넸다. 개봉 직후 리브스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책들을 다 읽기 전에는 대본을 펴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읽고 또 읽어. 뭐라고 쓰여 있는지’라고 하셨죠.” 그중 한 권은 과학저술가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