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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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편가르기의 심리학 승패가 났다. 환호하며 혹은 탄식하며 개표방송을 시청하셨을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느라 하얗게 불태웠을 때와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가? 정확하다. 과학자들은 당파적 성향이 스포츠 팬덤과 유사함을 밝혀냈다. 남성의 경우, 상대를 때려눕히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월드컵 경기 때뿐만 아니라 선거일 밤에도 자기 편의 승패에 따라 솟구치거나 곤두박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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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상상의 세계에 빠질까 ‘듄친자’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듄>에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듄>은 서기 2만6391년에 우주에서 가장 귀한 자원 ‘스파이스’를 독점하고자 벌이는 갈등을 담은 SF 영화다. 듄친자들은 영화 <듄: 파트2>를 기꺼이 극장에서 ‘n차’ 관람한다. 10만원이 넘는 6권짜리 소설 전집을 베스트셀러에 등극시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수십년 전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가 꾸며낸 세상에서 등장인물들이 스파이스를 두고 싸우건 말건 우리는 알 바 아니지 않나(듄의 세계관을 해설하는 유튜브를 다 시청하고 소설 전집까지 덜컥 산 내 중학생 아들에게 간청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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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였다. 대학교 때 친했던 선배로부터 오랜만에 카카오톡이 왔다. 아마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보낸 듯했다. “중국산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테러범이 되는 법률안에 대한 반대 청원 부탁드립니다. 반대 의견이 만 명을 넘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잡해져서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제했다는 말은 명백히 가짜뉴스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비밀요원이고, 매년 쌍십절이 되면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으려고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등의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음모론이 어김없이 또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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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음모론과 가짜뉴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은 민주당원이 휘두른 나무젓가락에 목이 세게 눌린 자작극이다.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마약 의혹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한 공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당이 내려보낸 고정간첩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2012년 대선은 투표지 분류기를 조작한 부정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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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왜 점을 믿는가? 연말연시에는 사주나 타로로 새해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점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유튜브, 스마트폰 앱, 온라인 상담 서비스 등으로 길흉화복을 점친다. 미신을 믿는 이로 보일까 염려해서인지 대다수 사람은 ‘재미 삼아’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함이라고 보호막을 친다. 사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점성술은 말도 안 된다며 비판한 바 있다. 도킨스는 저서 <무지개를 풀며>에서 미국의 어떤 작가가 한 신문사에 가짜 점성술사로 근무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작가는 오래된 점성술 잡지에 있는 글들을 가위로 잘라내서 모자 안에 넣고 섞었다. 그리고 글 12개를 임의로 뽑아서 모은 다음에, 마치 점성술사가 쓴 것처럼 ‘별자리 운세’ 칼럼을 신문에 매주 연재했다. 그 점성술 칼럼은 독자들의 앞일을 족집게같이 맞힌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는 대학원생 때 이 일화를 읽은 이후로 지금껏 사주나 타로와 담을 쌓은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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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하기 2199년,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한다. 인간은 1999년의 가상현실을 실재로 착각하면서 인큐베이터에 갇혀 사육된다.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자신이 지금껏 정교하게 꾸며낸 환영의 세계에 살았음을 깨닫는다.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다. 두 워쇼스키 감독은 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네오 역에 정한 다음에 필독서 세 권을 건넸다. 개봉 직후 리브스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책들을 다 읽기 전에는 대본을 펴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읽고 또 읽어. 뭐라고 쓰여 있는지’라고 하셨죠.” 그중 한 권은 과학저술가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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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장례 의식과 비통함 인도네시아 베라완(Berawan)족의 장례 풍습은 독특하다. 장례식이 끝나면 시신을 큰 토기나 나무관에 넣는다. 토기를 집 앞 마당에 적어도 1년간 두어서 시신이 천천히 썩도록 한다. 가깝고 먼 친척들이 매일 방문해서 시신을 살피고 만진다. “어르신, 왜 돌아가셨어요?” 이렇게 고인에게 묻기도 한다. 담배나 음식을 권하기도 한다. 토기 밑에 연결한 관을 통해서 체액이 흘러나온다. 긴 시간이 지나서 유골만 남으면, 작은 단지에 유골을 담아서 능묘에 안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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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 독한 살충제 대학 시절에 애연가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쯤에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근엄하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차오른다. “자, 질문 있소?” 그러면서 담배 연기를 맛있게 내뿜던 교수님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물론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겨울에도 실외 흡연구역에 모여서 너구리굴을 만드는 흡연자들, 섬뜩한 경고 사진이 부착된 담배를 선뜻 사는 흡연자들을 보면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아니, 자기 목숨을 태우는 담배가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옛날 그 교수님의 흐뭇한 표정을 떠올리니, 이러한 타박은 비흡연자가 뭘 모르고 떠드는 말임을 비로소 알겠다. 담배는 정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담배를 끊기가 몹시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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