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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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성소수자에겐 차별금지법이 방탄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방탄복’을 입고 선대위 출정식에 참석했다. 선거운동을 할 때도 피습 위험이 있어 유권자와 거리를 두었고, 급기야 저격용 소총이 밀반입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군가의 신변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 같은 날,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10대 공약이 발표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제외하곤 ‘성평등과 인권’ 공약은 사라졌고,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광장의 ‘사회 대개혁’ 요구는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종교계 반발을 이유로 ‘사회적 합의’가 되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 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고, 그 합의라는 과정마저 위임해 버렸다. 차라리 민주당 내부의 합의가 부족했고, 그동안 정치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해 보인다. 이는 무관심을 넘어 무책임이고, 정치가 해야 할 역할마저 포기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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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성소수자 정책 과제를 다시 준비하며 윤석열이 파면됐다. 이후 대선 일정이 확정되며 각 정당은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파면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해산되어야 마땅할 정당의 후보들까지 참여하는 선거 리그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을 더 느끼게 된다. 다만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광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사회대개혁 과제를 모아 가는 과정을 보며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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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탄핵 이후에도 계속 펄럭일 무지개를 기대하며 1997년 1월 추운 겨울로 기억한다.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 총파업이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됐을 때 대학 1학년생이었던 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모였던 사람들과 깃발들 사이, 저 멀리 구석진 곳에서 펄럭이고 있던 무지개 깃발 하나를 발견했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까이 가 보았지만, 함께 앉아 있을 용기는 없었다. 그들은 마치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주변부로 밀려난 듯 보였고, 나는 숨겨왔던 성정체성이 그들에게 발각될지 몰라 거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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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변희수재단 설립 방해에 맞서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자기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싸웠고, 부당한 강제 전역 처분 결정에도 맞섰다. 순직을 결정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으며, 결국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나서야 명예롭게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승리했고, 차별에 맞선 그녀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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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어떤 선언도 성소수자를 지울 수 없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 성소수자 지원단체에 상담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외로움과 고립감, 누군가의 표적이 되거나 신체적 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긴급 상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2개월 만에 현실이 되었다. 트럼프는 취임했고,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만 초대된 화려한 취임식 모습은 평화, 환경, 인권 등 모든 영역에서의 후퇴와 인간 존엄에 대한 위협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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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광장의 무지개가 일상이 되길 비상계엄은 겨우 붙잡고 있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새해 계획을 잘 세워봐야겠다는 다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안갯속과 같은 미래의 불안을 매일 맞닥뜨리게 되었다. 동시에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광장이 열렸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꾹꾹 눌러왔던 억압의 상처가 분출되었다. 성소수자 단체들도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함께하고 있다. 광장에 마련된 ‘무지개 존’은 연대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서 생애 첫 발언을 한 청소년 성소수자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자신의 발언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평소 위기 상황이 자주 발생해 걱정을 많이 하던 내담자였는데, ‘무지개 존’에서 만난 시민들의 환호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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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HIV 감염인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지난 한 달 동안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당사자이자 동료 감염인의 돌봄 지원을 받는 이들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삶과 돌봄 경험이 남긴 의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HIV 감염인 파트너가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 원가족의 시신 인도 포기로 인해 장례 지원을 도왔던 이의 집엔 여전히 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시각장애와 편마비로 요양병원과 꽃동네를 전전하며 생활했던 이는 동료 감염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과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다. HIV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꿈도 포기하고, 공황장애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40대 감염인은 최근 장례지도사에 합격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들 모두 말벗이 되어주고 반찬을 나눔하고, 병원을 동행하는 돌봄 활동에 고마움을 아끼지 않고 표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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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청소년 성소수자 정신건강 손 놓은 정부 질병관리청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건강행태 현황을 파악하고자 매년 ‘청소년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약 5~6만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익명으로 참여하고 있고, 흡연·음주·식생활부터 성 행태·정신건강 등 총 100여개의 설문 응답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니, 청소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기에 유의미한 조사임이 분명하다. 다만, 현재로선 남녀 여부를 확인하는 성별 문항만 존재하고 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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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먹고사는 문제? 죽고사는 문제! 성소수자, 여성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위해 추모 발언을 하거나 트랜스젠더 자조 모임에서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을 종종 봐왔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삶을 위로하고, 평등한 세상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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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진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난 8월29일 대법원 선고로 인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해직 교사를 복직시켰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감직을 잃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 교육감의 활동을 익히 알고 있고, 학생인권법 제정이라는 중요한 과제 또한 남아 있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아쉽고, 앞으로 교육 현장이 어떻게 바뀔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가 지난 10년 동안 교육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평가가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2014년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해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최초의 교육감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공격받을 때마다 차별금지 원칙이 성소수자 학생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때로 본인이 직접 나서 인터뷰하는 등 학생 인권을 적극 방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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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살아만 있다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참여자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 소리로 화답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표정은 밝았고 홀가분해 보였다. 8월3일 개최된 제1회 퀴어청소년 무지개백일장 시상식 현장의 풍경이다. 평소 1대1 상담과 긴급 지원 활동을 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분위기와도 사뭇 달랐지만, 정성스러운 심사평이 담긴 상장과 꽃다발은 화사함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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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발언대 변희수 하사가 대전현충원으로 가던 날 지난 6월24일 고 변희수 하사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순직 결정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는데, 막상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성별정체성을 떠나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변 하사의 바람대로 대전현충원에 군인의 신분으로 영원한 안식을 할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