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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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아기 똥 기저귀와 황호희씨 “내 소명은 아기 똥 기저귀 갈아주기.” 아기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신의 손이 그녀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손은 관절염으로 아침에 잠에서 깨면 손가락이 못처럼 뻣뻣하다. 죔죔을 20~30분 정도 하고 나야 손을 조금씩 쓸 수 있다. 죔죔, 죔죔…. 6년 전,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녀는 기도했다. ‘장애를 가진 아기를 만나게 해주세요. 장애를 가진 아기가 자라는 데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기도대로 그녀는 장애를 가진 아기는 만났다. 그런데 다 큰 아기였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다 큰 아기를 돌보는 일이 그녀의 몸을 쓰러뜨릴 만큼 힘들어 그녀는 다시 기도했다. “제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들으신 거예요? 저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녀는 섬유근통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어서 독한 약을 매일 다섯 차례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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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밀양의 풀 뽑는 미스 차 “‘너는 오늘 누구를 만나라’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너는 오늘 네가 만나는 사람을 네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어라’ 그것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오늘 내가 팽나무 아래서 왜 풀을 뽑았을까? 오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풀을 뽑았던 게 아닐까? 내 집에 초대할 손님, 하룻밤 재워 보낼 생면부지의 손님을 만나려고 풀을 뽑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녀는 오늘 오후 3시경 350년 된 팽나무 밑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3년 전부터 그녀는 낙동강 하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지에서 ‘풀 뽑는 봉사’를 하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우연히 갔다가 멋진 팽나무를 만났다. 그곳 정원의 꽃에 물을 주고 계신 분께 다가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풀 뽑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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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세상에서 가장 귀한 그녀, 전주연씨 “내게는 무표정만 있어요.” 그녀는 무표정한 자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그녀는 자신이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정은 뭘까? 눈빛은 뭘까? 눈빛을 마주치며 말을 나눈다는 건 뭘까?’ 그녀는 선천성 전맹으로 빛조차 지각하지 못한다. 토요일 오후, 식탁에 혼자 고요히 앉아 있던 그녀는 문득 나직이 중얼거린다. “나는 귀한 존재야.” 파기름에 계란과 밥알을 볶을 때 풍긴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 그녀는 점심으로 계란볶음밥을 요리해 아이들과 먹었다. 고1인 딸과 중1인 아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머물다 불쑥 방문을 열고 나와 그녀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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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오늘도 함께 기도하는’ 강영희·강진규 부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해야 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영희씨(청산 스님, 1946년생)는 아침 5시면, 그리고 저녁 5시면 어김없이 부처님 앞에 앉아 기도한다. 아침에는 일본말로 불경을 외우며 기도하고, 저녁에는 한국말로 천수경과 화엄경을 외우며 기도한다. 나이 탓에 부쩍 자주 깜박하는 그가 결코 잊지 않는 건 기도. 기도란 “거기 있는 것.” 부모님이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그가 주지로 있는 보덕사(宝德寺)는 일본 나라현 이코마시에 있다. 이코마역 인근 마을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데, 제주도 출신들이 1959년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은 특별한 절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오사카와 나라에 이주해 살던 제주도민들은 이코마산 곳곳에 절을 짓고,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영혼을 모셨다. 빈집 같은 깊은 정적이 감돌지만 강영희씨가 주지로 초대되어 온 1998년까지도 보덕사는 음력 사월초파일이면 발 디딜 곳이 없을 만큼 한국인 신자들로 북적였다. 일본의 절들은 양력으로 사월초파일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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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캄보디아인 통역사 킴 렉카나, “나는 오늘도 울어요” “모르는 사람이 죽었어요. 모르는 사람…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 2020년 12월 어느 날. 그녀는 ‘모르는 여자’의 영정을 들고 안산의 어느 농장으로 향한다.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캄보디아 여자가 살았던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영정 속 여자의 이름은 속헹. 간경화를 앓던 속헹은 12월20일 혹한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식도정맥류 파열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곰팡이로 뒤덮여 있던 숙소로 들어서기 전부터 그녀는 흐느껴 운다. 눈물이 그냥 마구 쏟아진다. 그녀는 무섭다. 슬프다. 소름 끼친다. 처음 경험하는 무서움이고 슬픔이다. 밤에 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름이 바늘처럼 온몸에 꽂혀 있어서, 찌르고 찔러서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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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검은 개와 마지막 정류장 나는 멀리서 왔다. 누구나 멀리서 온다. 멀리서 와서, 잠시 잠깐 ‘착지’했다 멀리 떠난다. 아무도 서 있지 않는 텅 빈 정류장에 버스가 머무는 시간보다 잠시 잠깐이다. 그 잠시 잠깐 사이엔 무수한 ‘때’가 있다. 크게는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코헬렛 3장 2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엔 눈금자의 눈금처럼 헤아릴 수 없는 때가 있다. 울 때와 웃을 때, 노래할 때와 노래하지 않을 때, 떠날 때와 머물 때…. 심을 때와 심긴 것을 뽑을 때 사이엔 때와 함께 우리가 아는 계절과 알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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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참외와 오키나와 소년’ 우에즈 노리아키씨 “쇼와 18년(1943년) 여름방학이었을 겁니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다 참외를 먹고 있었습니다. 여자애가 먹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습니다. 가즈오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물이 풍부하고 쌀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었지만, 태평양 전쟁 때문에 다들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나는 참외를 돌로 쪼개 여자애에게 나눠줬습니다.” 1936년생인 우에즈씨의 고향은 구메지마(久米島). 오키나와 본섬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면적 63.5㎢인 섬이다. 눈빛이 정직하고 입매가 우아한 소년이 눈부신 태양빛 아래서 참외를 쪼개던 그 여름, 그 섬엔 조선인 구중회씨 가족이 살았다. 그 섬에 이주해 일용잡화 행상을 하던 구(具)씨의 이름을 그는 다니가와 노보루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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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느린 존재들 대개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구름이, 달이, 나무가, 판다가 그렇듯 느린 존재들은 자신의 주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는 존재들을 느리게 ‘스쳐지나가며’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기꺼이 무상의 선물로 남긴다. 스쳐지나감. 그것은 고난도의 예술적 기술이다. 그것은 공기의 기술이고, 바람의 기술이며, 안개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존재들 또한 ‘스쳐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무(無) 집착의 태도에 도달한 존재만이 완벽하게 펼쳐보일 수 있는 기술이다. 오늘도 고난도의 기술을 펼쳐보이며 지하철역사 안을, 계단을, 거리 한복판을 걸어가는 그녀(임하은씨, 27세)는 여지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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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살린다, 살린다…’. 흘러내리는, 무너져 내리는 흙덩이를 뭉개지 않는다, 두 손으로 끝까지 일으켜 세운다. 그릇으로, 화병으로, 찻잔으로 살려낸다. 허물어지려는 흙덩이를 소롯이 살려내는 건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물레가 아닌 손작업을 주로 하는 데다, 가볍지만 내구성 강한 도자기를 추구하고 빚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시킨 도자기가 진열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는다. ‘매일 보고, 매일 쓰는 것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도자기를 사람들이 아낌없이 보고, 아낌없이 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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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만두 빚는 중국 여인’ 왕회이제씨 온 세상에, 그녀가 있는 춘천 후평동 거리에도 눈이 내린다. 만두가게 앞으로는 꽤 여러 대의 버스가 수시로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들의 번호를 살피지 않는다. 그녀는 버스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 거리에서 만두가게를 낸 지 5년이 넘었지만 버스를 타고 그 거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찜통에서 만두가 쪄지는 사이에 아주 잠깐 담담히 거리를 내다본다. 마침 버스가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상상에 잠긴다. 멀리, 바다 앞까지 간다.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녀는 벌써 17년 전인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생전 처음 바다라는 걸 봤다. 바다의 이름을 몰라서 ‘그냥 동쪽 바다’로 기억하는 바다가 그녀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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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부황남 “같이 밥을 먹어요가 가장 좋아요” “엄마아빠가 있어서 왔어요. 같이 살려고 왔어요.” 소년은 지난 6월에 한국에 왔다. 엄마아빠가 한국에 있어서, 엄마아빠와 한국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올해 12세인 소년은 엄마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 무려 12년을 기다렸다. 소년을 우리는 중도입국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외국에서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이주한 청소년인 것이다. 소년이 태어난 곳은 베트남 남딘.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90㎞ 떨어진 곳. 소년의 아빠는 14년 전, 그가 스물한 살이던 해에 한국어시험에 합격하고 근로자 비자로 한국에 왔다. 그때 소년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소년이 태어나던 날 아빠는 한국에 있었다. 소년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아빠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자신이 믿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소년은 아빠를 여섯 살 때 처음 봤다. 아빠를 본 적도 없는데 소년은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난 아빠는 볼 수 없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난 아빠를 볼 수 없으니까, 아빠가 왔을 때 아빠를 기억해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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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현규씨 “나는 내가 본 것, 내가 계속 지켜본 것, 내가 경험한 것,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거예요. 내가 느낀 걸, 내가 깨달은 걸 이야기할 거예요.” 2005년에 경기 양평의 ‘수풀로 운심리(한강생태학습장)’에서 숲 해설가가 된 현규씨. ‘난 앵무새가 아니야, 난 녹음기가 아니야’라는 저항이 그녀의 깊은 내부에서 터져 나온 것은 3년쯤 됐을 때다. 그녀는 앵무새가, 녹음기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왜 이곳에 서 있을까?’ 그녀는 알고 싶어서 그 나무를 보러 갔다. 오늘도 보러가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그녀는 15년 동안을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풀로 운심리에 머물며, 억새와 버드나무 몇 그루뿐이던 그곳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풍성한 숲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봤다. 팔당호가 만수가 되면 물에 잠기는 그곳에서 물에 실려 온 온갖 씨앗들이 발아해 꽃으로,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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