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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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이발사 박씨 아파트 5층 높이의 미루나무가 머쓱히 서 있던 신작로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말. 다섯 살쯤 먹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사내아이와 함께였다. 버젓한 버스표지판도 없던 그곳에 그들을 내려준 버스는 알감자 같은 흙먼지를 매달고 거칠게 내달리다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과 충북 옥천 사이에 지빠귀 둥지처럼 들어앉은 마을을 두 쪽으로 가르며 관통하던 신작로. 박씨는 신작로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을 얻어 이발관을 냈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마을사람들의 아들들이 도시로,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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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선희씨 오전 10시50분. 선희씨는 교실 문을 연다. 연필 냄새, 지우개 냄새, 나무책상 냄새, 책 냄새… 그녀는 어떤 고요한 의식을 치르듯 교실 안에 고여있는 냄새를 맡는다. ‘좋다!’ 그녀는 창가의 화분들에 눈길을 준다. ‘설렘’이라는 꽃말을 가진 겹카랑코에와 여러 다육이들. 그녀는 스무 개의 빈 나무책상들과도 눈맞춤 같은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마침내 교실 안으로 들어선다. 낮고 작은 나무책상마다 전날 아이들이 쓰고 지우던 연필과 지우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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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가장 큰 기적 ‘1% 바뀜’과 양지연씨 “계속 제자리요…제자리…괜찮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내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해요, 기다려줘야 해요.” 그래서 그녀는 기다린다. 애정을 갖고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을 눈빛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A에게 심어주며 기다린다. 기타를 치며 기다린다. 어느 순간 A가 기타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스스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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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아기 똥 기저귀와 황호희씨 “내 소명은 아기 똥 기저귀 갈아주기.” 아기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신의 손이 그녀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손은 관절염으로 아침에 잠에서 깨면 손가락이 못처럼 뻣뻣하다. 죔죔을 20~30분 정도 하고 나야 손을 조금씩 쓸 수 있다. 죔죔, 죔죔…. 6년 전,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녀는 기도했다. ‘장애를 가진 아기를 만나게 해주세요. 장애를 가진 아기가 자라는 데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기도대로 그녀는 장애를 가진 아기는 만났다. 그런데 다 큰 아기였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다 큰 아기를 돌보는 일이 그녀의 몸을 쓰러뜨릴 만큼 힘들어 그녀는 다시 기도했다. “제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들으신 거예요? 저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녀는 섬유근통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어서 독한 약을 매일 다섯 차례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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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밀양의 풀 뽑는 미스 차 “‘너는 오늘 누구를 만나라’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너는 오늘 네가 만나는 사람을 네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어라’ 그것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오늘 내가 팽나무 아래서 왜 풀을 뽑았을까? 오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풀을 뽑았던 게 아닐까? 내 집에 초대할 손님, 하룻밤 재워 보낼 생면부지의 손님을 만나려고 풀을 뽑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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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세상에서 가장 귀한 그녀, 전주연씨 “내게는 무표정만 있어요.” 그녀는 무표정한 자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그녀는 자신이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정은 뭘까? 눈빛은 뭘까? 눈빛을 마주치며 말을 나눈다는 건 뭘까?’ 그녀는 선천성 전맹으로 빛조차 지각하지 못한다. 토요일 오후, 식탁에 혼자 고요히 앉아 있던 그녀는 문득 나직이 중얼거린다. “나는 귀한 존재야.” 파기름에 계란과 밥알을 볶을 때 풍긴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 그녀는 점심으로 계란볶음밥을 요리해 아이들과 먹었다. 고1인 딸과 중1인 아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머물다 불쑥 방문을 열고 나와 그녀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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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오늘도 함께 기도하는’ 강영희·강진규 부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해야 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영희씨(청산 스님, 1946년생)는 아침 5시면, 그리고 저녁 5시면 어김없이 부처님 앞에 앉아 기도한다. 아침에는 일본말로 불경을 외우며 기도하고, 저녁에는 한국말로 천수경과 화엄경을 외우며 기도한다. 나이 탓에 부쩍 자주 깜박하는 그가 결코 잊지 않는 건 기도. 기도란 “거기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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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캄보디아인 통역사 킴 렉카나, “나는 오늘도 울어요” “모르는 사람이 죽었어요. 모르는 사람…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 2020년 12월 어느 날. 그녀는 ‘모르는 여자’의 영정을 들고 안산의 어느 농장으로 향한다.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캄보디아 여자가 살았던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영정 속 여자의 이름은 속헹. 간경화를 앓던 속헹은 12월20일 혹한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식도정맥류 파열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곰팡이로 뒤덮여 있던 숙소로 들어서기 전부터 그녀는 흐느껴 운다. 눈물이 그냥 마구 쏟아진다. 그녀는 무섭다. 슬프다. 소름 끼친다. 처음 경험하는 무서움이고 슬픔이다. 밤에 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름이 바늘처럼 온몸에 꽂혀 있어서, 찌르고 찔러서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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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검은 개와 마지막 정류장 나는 멀리서 왔다. 누구나 멀리서 온다. 멀리서 와서, 잠시 잠깐 ‘착지’했다 멀리 떠난다. 아무도 서 있지 않는 텅 빈 정류장에 버스가 머무는 시간보다 잠시 잠깐이다. 그 잠시 잠깐 사이엔 무수한 ‘때’가 있다. 크게는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코헬렛 3장 2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엔 눈금자의 눈금처럼 헤아릴 수 없는 때가 있다. 울 때와 웃을 때, 노래할 때와 노래하지 않을 때, 떠날 때와 머물 때…. 심을 때와 심긴 것을 뽑을 때 사이엔 때와 함께 우리가 아는 계절과 알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
김숨의 위대한 이웃 ‘참외와 오키나와 소년’ 우에즈 노리아키씨 “쇼와 18년(1943년) 여름방학이었을 겁니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다 참외를 먹고 있었습니다. 여자애가 먹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습니다. 가즈오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물이 풍부하고 쌀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었지만, 태평양 전쟁 때문에 다들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나는 참외를 돌로 쪼개 여자애에게 나눠줬습니다.” 1936년생인 우에즈씨의 고향은 구메지마(久米島). 오키나와 본섬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면적 63.5㎢인 섬이다. 눈빛이 정직하고 입매가 우아한 소년이 눈부신 태양빛 아래서 참외를 쪼개던 그 여름, 그 섬엔 조선인 구중회씨 가족이 살았다. 그 섬에 이주해 일용잡화 행상을 하던 구(具)씨의 이름을 그는 다니가와 노보루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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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느린 존재들 대개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구름이, 달이, 나무가, 판다가 그렇듯 느린 존재들은 자신의 주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는 존재들을 느리게 ‘스쳐지나가며’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기꺼이 무상의 선물로 남긴다. 스쳐지나감. 그것은 고난도의 예술적 기술이다. 그것은 공기의 기술이고, 바람의 기술이며, 안개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존재들 또한 ‘스쳐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무(無) 집착의 태도에 도달한 존재만이 완벽하게 펼쳐보일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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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살린다, 살린다…’. 흘러내리는, 무너져 내리는 흙덩이를 뭉개지 않는다, 두 손으로 끝까지 일으켜 세운다. 그릇으로, 화병으로, 찻잔으로 살려낸다. 허물어지려는 흙덩이를 소롯이 살려내는 건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물레가 아닌 손작업을 주로 하는 데다, 가볍지만 내구성 강한 도자기를 추구하고 빚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시킨 도자기가 진열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는다. ‘매일 보고, 매일 쓰는 것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도자기를 사람들이 아낌없이 보고, 아낌없이 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