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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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만두 빚는 중국 여인’ 왕회이제씨 온 세상에, 그녀가 있는 춘천 후평동 거리에도 눈이 내린다. 만두가게 앞으로는 꽤 여러 대의 버스가 수시로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들의 번호를 살피지 않는다. 그녀는 버스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 거리에서 만두가게를 낸 지 5년이 넘었지만 버스를 타고 그 거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찜통에서 만두가 쪄지는 사이에 아주 잠깐 담담히 거리를 내다본다. 마침 버스가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상상에 잠긴다. 멀리, 바다 앞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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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부황남 “같이 밥을 먹어요가 가장 좋아요” “엄마아빠가 있어서 왔어요. 같이 살려고 왔어요.” 소년은 지난 6월에 한국에 왔다. 엄마아빠가 한국에 있어서, 엄마아빠와 한국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올해 12세인 소년은 엄마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 무려 12년을 기다렸다. 소년을 우리는 중도입국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외국에서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이주한 청소년인 것이다. 소년이 태어난 곳은 베트남 남딘.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90㎞ 떨어진 곳. 소년의 아빠는 14년 전, 그가 스물한 살이던 해에 한국어시험에 합격하고 근로자 비자로 한국에 왔다. 그때 소년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소년이 태어나던 날 아빠는 한국에 있었다. 소년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아빠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자신이 믿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소년은 아빠를 여섯 살 때 처음 봤다. 아빠를 본 적도 없는데 소년은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난 아빠는 볼 수 없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난 아빠를 볼 수 없으니까, 아빠가 왔을 때 아빠를 기억해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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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현규씨 “나는 내가 본 것, 내가 계속 지켜본 것, 내가 경험한 것,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거예요. 내가 느낀 걸, 내가 깨달은 걸 이야기할 거예요.” 2005년에 경기 양평의 ‘수풀로 운심리(한강생태학습장)’에서 숲 해설가가 된 현규씨. ‘난 앵무새가 아니야, 난 녹음기가 아니야’라는 저항이 그녀의 깊은 내부에서 터져 나온 것은 3년쯤 됐을 때다. 그녀는 앵무새가, 녹음기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왜 이곳에 서 있을까?’ 그녀는 알고 싶어서 그 나무를 보러 갔다. 오늘도 보러가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그녀는 15년 동안을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풀로 운심리에 머물며, 억새와 버드나무 몇 그루뿐이던 그곳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풍성한 숲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봤다. 팔당호가 만수가 되면 물에 잠기는 그곳에서 물에 실려 온 온갖 씨앗들이 발아해 꽃으로,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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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 소식씨 “오늘도 나를 씻기고, 나를 먹이고 … 오늘도 … 그게 중요한 일이지. 그게 의미 있는 일이지. 눈 뜨며 ‘오늘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리고.” 소식씨는 그래서 오늘도 정성껏 자신을 씻기고, 밥을 지어 먹인다. 불과 두 달 전까지 그녀는 밥을 넘기지 못했다. 작년 10월30일 아침 7시 이후로 밥알이 목구멍으로 삼켜지지 않았다. 그날, 그 시간에, 그녀는 딸 정아의 ‘모르는’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어. 참사가 일어난 그곳에 내 딸 정아가 있었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