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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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처절함 대신 친근함…지금 시위 구호는 ‘질서 있는 교체 중’ 탄핵 정국 여의도 국회 앞에서젊은 여성들이 바꾼 집회 문화선동적인 언어보다 일상어 활용‘늙은’ 말과 글은 조용히 ‘퇴진’ 게이머·야구팬 등 ‘보통사람들’다양한 깃발로 뽐내는 존재감모두가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 2024년 12월3일, 사전이나 먼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만 있을 법한 단어 하나가 뜬금없이 우리의 일상으로 뛰어들어 왔다. 뜻도 발음도 어려운 계엄,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도록 대통령이 법률에 의거하여 선포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이 단어의 목적이 ‘군사적 필요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라는데 그 목적 중 어느 하나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오히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홀연히 부활한 이 단어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니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불법적인 계엄을 무력화시키고, 이 계엄을 선포한 이를 탄핵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국회가 자리한 땅을 비롯해 방방곡곡 저마다의 거리와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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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알면 알수록 어려운 ‘띄어쓰기’…규정보다 소통이 먼저다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1988년 더 세밀하게 전면 개정‘원칙’에 ‘다만’ ‘허용’ 더해져 복잡…학생들 시험 문제로 괴롭혀적당히 띄어 써도 읽는 데 지장 없는 한글의 장점 최대한 살려야 아버지는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동시에 흥분할 지점을 지날 일도 없다. 서울에 시어머니들로만 구성된 합창단이 있을 리가 없고, 안동 사람들이 시체 육회를 먹을 거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몇십년째 우려먹고 있다. 여기에 ‘동시흥분기점, 서울시어머니합창단, 안동시체육회’가 더해진다. 모두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잘못하면 어떤 혼란이 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란다. 그러나 사례들이 모두 엉터리다. 띄어쓰기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지만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잘못 띄어 읽어서 뜻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한글이 창제되고 난 후 400여년 동안 띄어쓰기 없이 잘 읽었고 최근까지도 띄어쓰기가 안 된 문자 메시지도 잘 끊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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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노랫말·제목 ‘영어 물결’…시대흐름 맞춘 유행일까, 몰입 방해일까 멋진 외모와 화려한 춤에도 가사·가수 이름 ‘생경’…노래 집중 어려워세계무대 진출 이유 확산…맥락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붙인 말 상당수음악 프로 50곡 가사 중 절반만 우리말…마뜩잖아도 ‘유행가’란 그런 것 ‘아파트’란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라니 반가운 마음에 들어본다. 그런데 노래 제목이 ‘APT.’여서 살짝 의심이 가더니 가수의 이름을 보니 로제(ROSE)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여서 속았다는 느낌이 확 든다. 노래는 “띵동띵동”하는 초인종 소리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젊은 친구들의 술자리 게임에서 반복해서 들리던 가사, 가락, 장단으로 시작된다. 그렇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난” 그곳이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지금, 노래가 나온 지 40년이 흐른 지금에 그 노래가 다시 유행할 리가 없다. 지금은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대, 성과 이름을 합쳐 세 음절로 된 이름의 가수가 ‘순우리말’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다. 세계적인 가수마저 한국식으로 ‘아파트’를 발음하며 우리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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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가정 울타리 넘어간 ‘호칭’은 무죄, 그 대상이 합당한 행동만 한다면… 1930년대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그 속의 오빠는 남자 혈육 지칭2000년 왁스 ‘오빠’는 가족 아냐친족 넘어 연인·남편에도 쓰여 이런 호칭 사용은 선택의 문제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냐이모님·아저씨 호칭도 마찬가지 다만 불리는 이들이 호칭에 걸맞은행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관건선생·사장님답지 못한 선생·사장오빠답지 못한 오빠가 문제인 것한류 붐에 ‘오빠’는 이제 국경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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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외국어·신조어 판쳐도 한국어는 여전히 건강…자학하지 말지어다 문자는 한글·언어는 한국어로 구별, 오롯이 ‘문자의 날’로 기념바르고 고운 ‘순수의 기준’ 아닌 너와 나 우리 ‘소통의 차원’으로‘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로 적는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다지길 한글날, 한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이니 모두의 축복 속에 기쁨으로 보내야 하는 날이다. 당연히 생일에 대한 축하와 그 아버지에 대한 칭송이 넘쳐난다. 세계 최고의 문자와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성군에 대한 자부심도 넘쳐난다. 그런데 ‘문자’를 ‘언어’로 착각하는 이들 때문에 생일잔치의 풍경이 묘하게 바뀐다.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은 외래어, 외국어, 외계어, 신조어에 의해 핍박을 받는 존재가 된다.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고이 잠들어계신 세종대왕은 순수하지 않은 우리말, 바르고 곱지 않은 우리말의 현실 때문에 졸지에 ‘지하에서 통곡’하는 존재가 된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생일에 축하와 자학이 공존하며 주인공이 통곡하는 풍경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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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전국 각지 사람 모여 사는 서울, 이제 서울말은 ‘융합과 포용의 말’ 최근 관심 끄는 서울 사투리…개그 소재 ‘했그등여’는 서울 토박이의 서울말이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의 말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해…급격한 산업화 과정서 수도권 팽창하며 각 지역 말이 뒤죽박죽, 서울말 변화 촉진대대로 살아온 토박이 드문 오늘날 서울말의 정의도 바뀌어야…즉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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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노가다 용어’라며 시비 걸기보다 ‘건설 전문가의 말’ 존중했으면 근대 이후 기술·기능 유입 과정서언어 형태 변화 자연스럽게 수용이들에겐 ‘밥벌이’ 위한 소중한 말 재봉·인쇄업 분야 등도 상황 비슷빠르고 정확하게 소통하면 되는 것어떤 말 쓸지는 그들에게 맡겨야 대파 알우? 기계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는 현장에서 엉뚱하게도 대파를 아는지 묻는 듯한 말이 들린다. 이들의 표기와 발음대로 하면 ‘데파’와 ‘아루’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기름밥을 먹어 온 이들끼리는 잘 통하는 말이지만 공학을 전공해 기계와 가공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젊은이들도 모른다. 그들은 대학에서 ‘테이퍼(taper)’와 ‘래디우스(radius)’로 배웠으니. ‘데파’는 원통을 예로 들면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갈수록 원의 지름이 점점 줄어드는 것, 즉 중심선을 기준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루’는 반지름을 뜻하는 ‘radius’의 머리글자 ‘R’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일정한 반지름값으로 둥글게 가공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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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아무리 규범이 남북의 말을 갈라도…통하다 보면, 통일도 온다 북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발화전형적인 평안도 말과는 달라오히려 남한의 말씨에 가까워 ‘력사’와 ‘역사’ 오가는 발음도주민들의 적개심 빠진 표현도편견과 현실 사이 차이 보여줘 CD·USB 등에 담겨 문화 전파남북 간 ‘ㅈ’ 발음 유사성 확대이미 말과 글의 교류는 진행 중 주민, 어르신, 티브이, 병약자, 음료수, 폄훼……, 정치인의 대중 연설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법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누가 이러한 단어들을 쓰느냐가 문제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러한 말들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영상이나 음원이 없어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편에서는 심각하게, 다른 한편에서는 기쁨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다. 이 말들을 북한에서 쓰이는 일상적인 말로 바꾸자면 차례로 ‘인민, 로인, 텔레비전’이고 나머지 단어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이 남한에서 쓰는 말을 따라 한 셈이니 남한말을 단속하는 북한에서는 심각하게 여길 사안이다. 그러나 통일 후 한국어의 미래를 생각하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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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중요한 것은 소통…‘금일’을 모른다면 ‘오늘’을 쓰면 된다 어휘력 문제 드러난 사례 들어‘요즘 것들·못 배운 것들’ 공격조롱하기보다 배경 이해해야 자주 안 쓰면 모르는 게 당연글보다 영상에 친숙한 환경도 괜히 어렵게 쓰려 들지 말고독자 기준서 쉬운 말 사용을 4흘 전에 시작돼 金일 끝난 행사에 우천市를 念頭하고 中食을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체측은 심심한 사과를 해야 한다. ‘사흘’이 3일이 아닌 4일로, ‘今日’이 오늘이 아닌 ‘금욜’로, ‘중식’이 ‘점심밥’이 아닌 ‘중국 음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은 없다. ‘비가 올 때’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굳이 100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국한문 혼용문을 그대로 베껴 쓴 이유에 대한 이해나 비판도 없다. 발음이 바뀌어 ‘주최’는 ‘주체’로 들리고, ‘염두에 두다’는 ‘염두해 두다’로 들릴 수 있는데 한자에 대한 지식은 점점 얕아지는 현실에 관한 냉철한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 말과 글을 잘못 쓰고 이해하는 것을 둘러싼 풍경은 삭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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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16) 산 넘고 물 건너는 한국어 학문·언어 교류 가능성 환기시킨동아시아한국학 국제 학술대회 영화 ‘방가방가’ 출연했던 발표자인도네시아 K팝 팬들 SNS 분석Oppa·Eoni·daebak 등 구사하고BTS의 Suga는 Agus로 현지화여러 언어 혼합 ‘코드 스위칭’ 흔해 K팝 가사 속 ‘알라뷰’ ‘베이비’꼰대의 시각으로만 봐선 안 될 것 한국어가 국제어가 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한글로 쓴 글을 읽고 오로지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과거나 현재에 그런 적이 없고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한국학’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가능하다. 일찍이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 인천 소재의 한 대학으로 유학 와 학위를 받고 돌아간 이들 중 60여명이 각 나라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들 중 20명이 모교의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오로지 한국어로 읽고 쓰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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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15) 도쿄 여행 成田国際空港에 도착해 酒店接送巴士를 타고 사흘 동안 머물 酒店으로 향한다. 그런데 딸아이는 Narita International Airport, Hotel Bus에 눈길이 먼저 가고, 아내는 여행 안내서의 정보에 의지한다. 꽤나 친절하게 돼있는 각종 안내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는 중년 남성과 무조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따라 움직이는 20대 대학생, 그리고 여행 안내서를 펼쳐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을 정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여행의 모든 일정을 같이할 세 일행이 서로 다른 정보에 의지해 같은 길을 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셋은 동경, Tokyo, 도쿄에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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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사라진 “아 주라” 구호…미래 세대 향한 애정 담았던 의도는 기억되길 19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국어유독 이 지역엔 ‘ㅆ’ 하나가 없고‘으·어’ 구분도 안 돼 당황스럽다 “마, 마, 마”는 “야 임마, 안 돼, 확”거부감·편견 걷어내면 되레 친근틀린 말은 없다, 다른 말일 뿐이다 외래어·세대 간의 ‘언어 충돌’은“아 주라”의 감성으로 풀면 된다미래 말의 결정권…“마, 아 주라”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 말 익히고다음 세대는 앞 세대 말 알아듣고서로가 듣되 옳고 그름이 아니라다름의 문제라고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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