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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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노랫말·제목 ‘영어 물결’…시대흐름 맞춘 유행일까, 몰입 방해일까 ‘아파트’란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라니 반가운 마음에 들어본다. 그런데 노래 제목이 ‘APT.’여서 살짝 의심이 가더니 가수의 이름을 보니 로제(ROSE)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여서 속았다는 느낌이 확 든다. 노래는 “띵동띵동”하는 초인종 소리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젊은 친구들의 술자리 게임에서 반복해서 들리던 가사, 가락, 장단으로 시작된다. 그렇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난” 그곳이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지금, 노래가 나온 지 40년이 흐른 지금에 그 노래가 다시 유행할 리가 없다. 지금은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대, 성과 이름을 합쳐 세 음절로 된 이름의 가수가 ‘순우리말’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다. 세계적인 가수마저 한국식으로 ‘아파트’를 발음하며 우리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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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가정 울타리 넘어간 ‘호칭’은 무죄, 그 대상이 합당한 행동만 한다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고 아내를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인가? 적어도 2024년 가을 남북한의 말과 글의 풍경을 살펴보면 그 답은 ‘그렇다’이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대통령의 아내가 메시지에 쓴 ‘오빠’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남편, 즉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더라도 호칭 자체의 부적절함에 대해 논한다.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부부 사이에서 ‘오빠’와 ‘자기’를 쓰면 ‘평양문화어보호법’에 의해 ‘괴뢰말’이라 낙인이 찍혀 처벌받을 수도 있다.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와 친소(親疏)에 따라 자유롭게 호칭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으로부터 말이 시작되고 그 말은 주고받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듣고 보는 주변 사람들과 공유되니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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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외국어·신조어 판쳐도 한국어는 여전히 건강…자학하지 말지어다 한글날, 한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이니 모두의 축복 속에 기쁨으로 보내야 하는 날이다. 당연히 생일에 대한 축하와 그 아버지에 대한 칭송이 넘쳐난다. 세계 최고의 문자와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성군에 대한 자부심도 넘쳐난다. 그런데 ‘문자’를 ‘언어’로 착각하는 이들 때문에 생일잔치의 풍경이 묘하게 바뀐다.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은 외래어, 외국어, 외계어, 신조어에 의해 핍박을 받는 존재가 된다.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고이 잠들어계신 세종대왕은 순수하지 않은 우리말, 바르고 곱지 않은 우리말의 현실 때문에 졸지에 ‘지하에서 통곡’하는 존재가 된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생일에 축하와 자학이 공존하며 주인공이 통곡하는 풍경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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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전국 각지 사람 모여 사는 서울, 이제 서울말은 ‘융합과 포용의 말’ 뒤쥭박쥭, 이것은 200여년 전 서울에 살았던 40대 중년 사내의 편지 속에 담긴 말이다. 사내는 1752년에 태어나 1800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종로구 창경궁로 185번지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에서 태어나 평생을 인근에서 살았으니 이 사내는 골수 서울 토박이이다. 그의 나이 열한 살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나 할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성장해 당대 최고의 독서가이자 이 집안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개인 문집까지 냈다. 활을 쏘면 50발 중 일부러 49발만 맞힐 정도의 명사수였으니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 조선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24년간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이 사내를 우리는 정조대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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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노가다 용어’라며 시비 걸기보다 ‘건설 전문가의 말’ 존중했으면 대파 알우? 기계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는 현장에서 엉뚱하게도 대파를 아는지 묻는 듯한 말이 들린다. 이들의 표기와 발음대로 하면 ‘데파’와 ‘아루’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기름밥을 먹어 온 이들끼리는 잘 통하는 말이지만 공학을 전공해 기계와 가공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젊은이들도 모른다. 그들은 대학에서 ‘테이퍼(taper)’와 ‘래디우스(radius)’로 배웠으니. ‘데파’는 원통을 예로 들면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갈수록 원의 지름이 점점 줄어드는 것, 즉 중심선을 기준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루’는 반지름을 뜻하는 ‘radius’의 머리글자 ‘R’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일정한 반지름값으로 둥글게 가공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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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아무리 규범이 남북의 말을 갈라도…통하다 보면, 통일도 온다 주민, 어르신, 티브이, 병약자, 음료수, 폄훼……, 정치인의 대중 연설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법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누가 이러한 단어들을 쓰느냐가 문제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러한 말들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영상이나 음원이 없어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편에서는 심각하게, 다른 한편에서는 기쁨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다. 이 말들을 북한에서 쓰이는 일상적인 말로 바꾸자면 차례로 ‘인민, 로인, 텔레비전’이고 나머지 단어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이 남한에서 쓰는 말을 따라 한 셈이니 남한말을 단속하는 북한에서는 심각하게 여길 사안이다. 그러나 통일 후 한국어의 미래를 생각하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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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중요한 것은 소통…‘금일’을 모른다면 ‘오늘’을 쓰면 된다 4흘 전에 시작돼 金일 끝난 행사에 우천市를 念頭하고 中食을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체측은 심심한 사과를 해야 한다. ‘사흘’이 3일이 아닌 4일로, ‘今日’이 오늘이 아닌 ‘금욜’로, ‘중식’이 ‘점심밥’이 아닌 ‘중국 음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은 없다. ‘비가 올 때’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굳이 100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국한문 혼용문을 그대로 베껴 쓴 이유에 대한 이해나 비판도 없다. 발음이 바뀌어 ‘주최’는 ‘주체’로 들리고, ‘염두에 두다’는 ‘염두해 두다’로 들릴 수 있는데 한자에 대한 지식은 점점 얕아지는 현실에 관한 냉철한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 말과 글을 잘못 쓰고 이해하는 것을 둘러싼 풍경은 삭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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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16) 산 넘고 물 건너는 한국어 한국어가 국제어가 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한글로 쓴 글을 읽고 오로지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과거나 현재에 그런 적이 없고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한국학’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가능하다. 일찍이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 인천 소재의 한 대학으로 유학 와 학위를 받고 돌아간 이들 중 60여명이 각 나라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들 중 20명이 모교의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오로지 한국어로 읽고 쓰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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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글의 풍경 (15) 도쿄 여행 成田国際空港에 도착해 酒店接送巴士를 타고 사흘 동안 머물 酒店으로 향한다. 그런데 딸아이는 Narita International Airport, Hotel Bus에 눈길이 먼저 가고, 아내는 여행 안내서의 정보에 의지한다. 꽤나 친절하게 돼있는 각종 안내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는 중년 남성과 무조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따라 움직이는 20대 대학생, 그리고 여행 안내서를 펼쳐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을 정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여행의 모든 일정을 같이할 세 일행이 서로 다른 정보에 의지해 같은 길을 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셋은 동경, Tokyo, 도쿄에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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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사라진 “아 주라” 구호…미래 세대 향한 애정 담았던 의도는 기억되길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힘찬 함성 내뿜으며 내 마음을 울렸던 그 사직야구장은 참 조금도 안 변했구나.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떠올리며 부산에 갔다. 해운대와 광안리 바닷가, 국제시장과 범일동의 재봉틀 거리, 밀면과 돼지국밥, 그리고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대학 친구 등 부산에 갈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직야구장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봉다리 응원’과 때가 되면 울려 퍼지는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마!”와 “아 주라!” 소리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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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통일을 기다리며…최북단 섬에선 ‘한국어 융합 실험’ 진행 중 한국어는 이 땅의 모든 말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땅’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나이가 좀 든 이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팔도강산’은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새 천년의 멋진 젊은이들인 방탄소년단은 2013년의 그들 노래 ‘팔도강산’에서 “마라도에서 문산”까지라고 노래한다. 분단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땅’은 휴전선에 의해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한국어도 반 토막이 난 것인가? 휴전선 북쪽의 땅에서 쓰이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가? 남과 북의 언어 이질화에 대해 수없이 많이 떠들지만 정작 정상회담은 통역 없이 이루어졌는데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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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표준어’의 경계 확장…끝 모를 지평선 위, 사방의 말이 내려앉았다 표준어는 지독한 구심력이 있다.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서울말 부심’은 대단한데 이들은 성저십리(城底十里), 즉 도성 밖 십 리까지는 서울말을 쓰는 것으로 쳐준다. 서울 남쪽의 용인을 지나 남쪽으로 갈수록 충청도 말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데 자신들은 서울말을 쓴다고 믿는다. 아산만을 건너 내포에 들어서면 속 터지는 진짜배기 충청도 말이 펼쳐지지만 조금은 겸연쩍어하면서도 우리는 표준말을 쓰는데 ‘저 남쪽’은 전라도 말을 쓴다고 한다. 이들의 말대로 충청도 남쪽의 말은 언뜻 들으면 전라도 말인 듯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쓰는 말까지는 표준말이고 금강을 건너면 전라도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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