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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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젊은 대민 공무원들의 죽음, 이제는 막아야 한다 공무원들이 아프다. 특히 저년차 공무원들은 낮은 임금, 과도한 업무,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로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대민 업무를 맡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 교사, 경찰 등의 소진이다. 작년 말 개최된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용혜인 의원실은 공무원과 군인의 자살 순직 신청건수가 지난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직장갑질 119는 늘어나는 교사 자살 또한 추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두 주 사이에 여러 명의 경찰관이 과다한 업무가 원인으로 보이는 질병 또는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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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불안과 격변 “일하면서 늘 불안하다 보니, 불안한 것이 오히려 덜 불안한, 아이러니한 상태예요. 불안하지 않은 것이 어색해요.” 얼마 전 ‘일터에서의 불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한 출판사 편집자의 고백이 내내 떠올랐다. 젊은 세대의 만성적인 수행 불안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진료실과 직장 건강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청년들이 학업과 업무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한다. 끊임없이 줄 세우고 비교하는 환경에서 경쟁하며 자라온 그들의 마음에는 성취에 대한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 주어진 과제는 높은 완성도로 제 시간에 해내야 하고, 그 와중에 상사에게 잘 보이고 팀원들과 원만히 지내며 평판도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의 과제를 어찌어찌 해내도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작은 허점도 트집 잡을 것이고,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를 버릴 것이며, 경쟁은 영원히 끝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압박감이 지속되다 보니 불안한 상태가 익숙하고 불안하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해서 편히 쉬지 못하고 일을 자청하기도 한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기 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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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서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올해 들어 사회 전반에서 심리적 위기와 정신과적 응급 상황이 증가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심리적 위기상황이란 자해 및 자살 충동을 강하게 경험하는 상황, 자신 및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 등을 아우르며, 위기 개입이 꼭 필요하다. 지난 14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8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서 작년에 자살로 숨진 사람이 1만3770명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올 1분기 들어서도 자살 사망자 증가 추세가 심각하며, 자살 재시도도 늘어 두 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응급실 내원자의 비율이 증가하였다고 보고하였다. 10~30대 청년층의 자살시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높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자살 증가 원인을 분석한 바로는 코로나19 장기화 이후의 사회적 고립과 경제난 등이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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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럴 수 있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4월과 5월은 사람들의 감정이 요동치는 시기이다. 내담자분들과 우울감, 감정기복과 충동성, 불안감, 관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었다. 감정의 파고가 가라앉는 요즘 자주 만나는 복합적이면서 강력한 정서가 있다. - 연인과 싸웠는데 제가 성격에 문제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제 탓 같아요. - 점심시간에 부서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때 뭔가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서 긴장되고 밥도 잘 못 먹어요. - 친구가 저와의 약속을 자꾸 미루어서 섭섭하고 화가 나는데,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 두려워서 거리만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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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가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헤아릴 순 없을까 나는 10여년간 우울, 불안으로 내원한 20~30대 청년들을 주로 진료해왔다. 비교적 잘 지내다가 어떠한 사건이나 피로의 누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게 된 내담자들은 1년 전후의 내원으로 회복되어 치료를 종결하였다. 그러나 유년기에 애착 트라우마를 경험하였거나, 집단 따돌림, 부적응 등으로 오래 힘들어하다가 병원을 찾은 내담자들과는 해야 할 작업이 적지 않아 긴 치료기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마무리해가는 청년 내담자들과 한 번씩 나누게 되는 대화가 있다. “선생님, 5년 전 이 병원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면 저 정말로 많이 좋아졌어요. 죽고 싶은 마음도 거의 사라졌고, 문제가 생겨 우울감이 올 때도 전만큼 깊게 침체되지 않아요. 그 우울에서 회복되기 위해 대처하는 요령도 여러 개 생겼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도 잘해요. 이제는 저를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지도 않아요. 그런데요, 나아지고 보니 이 사회에서의 객관적인 저의 위치가 보여요. 그동안 어려움을 겪고 회복하느라 학교와 직장에서 좋은 성적과 경력을 쌓지 못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의 반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요.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해놓은 것도 없고 지지기반도 약한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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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 제주 4·3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의 깊은 내막을 사진과 전시로 접한 충격은 컸다. 일방적 매도와 학살로 제주도민들의 삶과 가족과 마을이 부서졌고, 존엄은 훼손되었다. 그 7년이 일단락된 후에도 국가권력은 이 사건을 시인하고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가해를 이어갔다. 살아남은 제주도민들은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서로 다독이며 숨죽여 앓았다. 나는 이런 문제 방치 방식을 알고 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대하는,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외면과 억압의 중요한 뿌리가 4·3 사건에 있을 수 있겠구나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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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는 아직 애도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을까? 이 안락함이 나에게 주어지는 대가로 무엇이 지불되었을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일제와 한국전쟁 때 학습한 방식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독재 정권. 나는 그중 어느 것도 겪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역경에서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들, 성찰할 시간도 없고 성찰을 허락받지도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캐시 박 홍의 책 <마이너 필링스>를 읽다가 만난 ‘성찰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느껴온 우리 사회의 병리와 고통의 얼개를 또렷이 짚어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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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도파민 중독이라니요 정신건강 분야에서 2023년도의 단어는 도파민이 아닐까요? 올해에도 도파민의 지명도는 여전해서, 여기저기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도파민이란 말을 마주치게 됩니다. 드라마의 자극적인 복수 장면에 “도파민 터진다”라고 감탄하는 댓글이 달리고, 매운맛 마라탕과 달콤한 탕후루를 ‘도파민 맛’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SNS에 심하게 집착하거나 쇼츠와 같은 짧은 영상을 과하게 오래 보는 것을 “도파민 중독”이라 부르며 걱정하는 추세도 보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개인의 성취가 중요해진 만큼 스트레스와 긴장감도 높아지고, 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 쾌락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경향성이 극대화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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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요사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웅장한 서두는 아니고요. 신체적으로 불안했던 시점을 찾으려는 문진도 아닙니다. 일조시간이 짧아 기분이 처지고 추위로 외출도 꺼려지는 요즘, 가슴이 뛸 정도의 신체활동을 얼마나 하고 계신지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자 안부인사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의 삶이 픽사 영화 <월-E>에 나온 대형우주선 엑시엄 탑승자들의 움직임 적은 삶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면 중심의 일상과 문화는 몇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며 더 빠르게 확산된 것 같습니다. 의자에 앉아, 자리까지 배송되는 음료수를 마시며, 화상으로 정보와 오락을 해결하는 생활 말입니다. 걷고 달리고 땀 흘리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거나 여럿이 모이지 않는 엑시엄 사람들은 저에겐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