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
출판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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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당면한 일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본래 “꽃이” 아니라 “꽃은”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담배 한 갑을 태우며 고민했고, 끝내 “꽃이” 되었다. 문장 하나, 아니 조사 하나에도 작가는 애달아한다. 저 첫 문장도 아름답지만, 내가 작가의 문장 중 가장 사랑하는 대목은 <남한산성>의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이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형 김상용이 보낸 서신을 통해 임금의 파천을 알게 되었고, 이내 남한산성으로 길을 잡는다. 관직에서 물러났음에도 김상용은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간다. 그리고 예조판서인 동생에게는 “스스로 몸 둘 곳”을 알 것이라 일러준다.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는 형제의 앞날에 대한 예견일 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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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작은 나’부터 깨닫기 트럼프의 이란 침공이 길어지고 있다. 그는 연일 호언장담을 늘어놓지만, 이란의 항전 의지만 돋울 뿐이다. 중동 전역으로 확대된 전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이 이란의 명징한 대답인 셈이다. 이란뿐 아니라 러시아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세계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데, 기실 ‘전쟁이구나’ 실감하는 건 기름값이다. 최고가격제 덕에 그나마 주춤하지만, 주유소에 들어서며 욕 아닌 욕을 내뱉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감생심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김수영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소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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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다시, 그리고 당장 진짜 붉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이 시작되었다. 작심삼일했다면 ‘다시’ 심기일전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다시’라는 단어에는 적잖은 희망이 담겨 있다. (물론 다시 침몰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숙고할 수 있다면, 다시 행동할 수 있다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겠지만 사람들은 ‘다시’를 남발하곤 한다. 낮고 가난한 사람들, 실의에 빠져 힘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의 환경이나 상황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다시 해보는 거야’ ‘다시 힘을 내보자’ 등등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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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남 탓일까, 내 탓일까 TV를 켜도, OTT를 열어도 ‘연애’ 관련 프로그램이 부지기수다. 솔로로는 변별력이 없는지 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맞선 형식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어떤 대화 자리에서는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이 한참 이어진단다. 연애 못지않게 최근에는 ‘이혼’ 관련 프로그램도 적잖다. 이혼한 연예인들이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이혼을 쉬쉬하던 세상은 저 멀리 사라졌고, 이혼이 그만큼 흔해진 세상이라는 방증이겠다. 연애든 이혼이든 프로그램을 찾아보지는 않지만, 대략의 내용은 짐작한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더 좋은 상대를 찾기 위해 애쓰면서, 안성맞춤인 상대를 찾았을 때는 ‘별도 달도 따줄 듯’할 것이다. 반면 이혼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백이면 백, 상대방 탓만 할 게 분명하다. 물론 상대편이 100% 잘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자기 탓이 ‘1’도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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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곁’을 내어주는 사람 성탄의 아침이 밝았다. 의사 누가는 예수의 태어남을 일러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했다. 예수의 사명은 인류 구원이었으니, 그가 이 땅에 온 사건은 말 그대로 ‘복음’(福音)이었다.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인류 구원이 사명이라면, 좀 더 드라마틱하게 세상에 현현(顯現)했으면 어땠을까. 하늘을 가르고, 온갖 광채가 쏟아지고, 구름을 타고 왔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구원자로 믿었을 일 아닌가. 그럼에도 예수는 신생아의 모습으로 작은 구유에 누워 세상에 왔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예수 곁에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한동안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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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선의 아파트 입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불이 선명한데도 한 어르신이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통행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서 쌩쌩 다니는 차들이 적잖은 길이었다. 경적을 살짝 울려 조심하시라, 신호를 보냈다.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삿대질은 없었지만, 입으로는 분명 ‘XX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걱정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 의도였겠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순간 다시 깨달았다. 선한 의도가 모두 선한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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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네 이웃을 사랑하라 저마다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 모든 사람은 ‘불안’을 안고 산다. 젊은 세대는 젊어서 겪을 수밖에 없고, 노년 세대는 곧 다가올 죽음으로 인해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에 살고 있어 겪는 불안이 있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였던 부탄 사람들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세계 곳곳의 삶을 보며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불안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람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오죽하면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약은 있다”라는 광고 카피로 대대적인 불안 마케팅을 하는 약이 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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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며칠 전 음악회에 다녀왔다. 60여명의 연주자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보였다. 대단한 애호가는 아닌지라 누구의 어떤 곡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때론 눈을 감고, 가끔 관심 있는 악기 연주자들을 응시하며 연주를 감상했다. 클래식 음악과 악기에 문외한이라 그랬겠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의 소리를 내려면, 적어도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동작은 똑같지는 않아도 엇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같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도 어떤 연주자는 미동조차 없었고, 바로 옆 연주자는 선율을 따라 앞뒤로 양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좀 더 집중해서 보니 연주자마다 현을 운지하는 손 모양도 달랐고 활의 움직임도 제각각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서로 다름 속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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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돈·권력에 영혼 판 사람들의 끝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무언가에 영혼을 판 건 아닌가 하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 무언가가 대개는 돈과 권력일 텐데, 하물며 반성의 기미조차 없으니 답답함이 찜통더위 저리 가라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과 권력이었을까. 아니면 돈과 권력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고자 했을까. 실제로 그들이 영혼을 팔았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영혼을 판 사람들의 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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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아보자 서평이나 신간 리뷰를 쓸 때면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할 때가 있다. 야구 관련 책을 소개할 때는 야구광 아들 이야기를, 불평등 관련 책을 소개하면서는 국민학교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에 ‘중산층’이라고 썼던 기억을 소환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글을 쓸 수 없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어보려는 심산이다. 시시한 내 개인사와는 달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 있다. 세상 끝날에도 누군가는 읽고 있을 <노인과 바다>는, 쿠바에 머물며 만난 한 어부의 이야기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상상력을 불어넣어 완성한 작품이다. 낚시광이었던 헤밍웨이는 그 어부와 자주 바다에 나갔다. <노인과 바다>는 타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증폭시켜 완성한, 일종의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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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여전히 ‘나’일 수 있기를 오는 토요일,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에 계시는 집안 어르신 한 분을 찾아뵙기로 했다. 평생 활달했으나 아흔을 훌쩍 넘겼으니 기력은 예전만 못하실 게 분명하다.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없다지만, 기억도 그때만 못하실 것은 불문가지. 특별히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공동의 기억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면회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벌써 머리가 하얗다. 그래도 피붙이니 두어 가지 이야깃거리는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토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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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소탐대실하지 말라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 익숙하지만 삶 속에서 그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눈앞 이익을 챙겨야만 내 한 몸 편하게, 아니 남들 위에 설 수 있(다고 믿)는 게 세상 풍경이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나만은 그렇지 않다’고 호언한다. 나의 걸어온 길이 그렇지 않았고 그에 비춰볼 때 살아갈 날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약속일 수도 있겠다. 이런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만화가 최규석의 <송곳>에 나오는 이 대사가 제격이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