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석
출판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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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하지 말 일을 ‘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보통 사람’으로 칭하며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을 달고 산 대통령이 있었다. 5년 동안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없지만, 보통 사람 입장에서 확실한 것은, 그가 ‘보통 사람’이라고 ‘믿을’ 만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은 침대 밑이나 책갈피 사이에 몇만원 정도 숨겨놓지, 그토록 큰 비자금을 만들 수 없다. 또 하나, 보통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그는 보통 사람 기준에 한참 미달이다. 욕망을 향해 달렸을 뿐 삶의 지향, 즉 기본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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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어설픈 환경주의자의 하루 환경을 생각하는 척, 하는 일이 하나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종일 물컵으로 사용하는 일이다. 여러 번 사용하면 환경 호르몬이 검출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내 몸보다 소중한 것이 나와, 내 후손이 살아갈 지구 아니던가! 문제는 커피가 하루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상은 오전부터 서너 개의 커피컵으로 비좁다. 환경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편하자고,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씻는 게 귀찮아서 그렇게 할 뿐이다. 어설픈 환경주의자는 앞으로도 어설프게 환경을 생각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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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사적 인간의 공적 역할 서울에서 일을 마치면 종종 광역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 집으로 향한다. 광화문이나 신촌이 회차 지점인 광역버스의 자리는 늘 넉넉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창가 좌석에 먼저 자리 잡고, 어떤 이들은 복도 좌석에 앉는다. 두어 정거장 지나 승차한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을 때, 복도 좌석 사람들은 창가로 들어가거나 상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일어난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방 등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여기도 내 자리인데 왜 비켜달라는 거야’라는 듯한 얼굴로 상대방을 쏘아보는 이가 없지 않다. 언젠가는 자는 척하며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공의 것을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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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아보하’를 빼앗긴 삶 출근 전,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뽑아든 그는,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을 들으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면서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그의 얼굴에선 어떤 깊이마저 느껴진다. 일을 마친 그는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자전거를 타고 간 단골식당에서 간소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헌책방에서 산 윌리엄 포크너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등의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든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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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광장에 나선 ‘토끼들’의 함성 TV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종종 본다. 프로에서 은퇴한 선수들과 프로 진출을 꿈꾸는 젊은 선수들이 ‘최강 몬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모여 아마추어 팀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을 아끼는 이유는, 모든 출연자들에게서 야구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부터 그렇다. KBO 리그 여러 팀의 감독을 지낸 그는 선수들에게 “여러분은 프로 출신이고, (…) 돈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것”이라며, 예능이 아닌 승리를 요구한다. 매사에 엄격하지만 자상함도 넘친다. 땡볕을 피하라고 파라솔을 챙겨놔도 그는 “선수들이 연습하는데 나만 쓸 수 없다”며 고사한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공을 줍고, 상대팀 선수에게도 적절한 가르침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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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수능이 뭐길래 수능날이 밝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줄여 흔히 수능이라 부르는 이날,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긴장 아닌 긴장을 한다. 얼마나 중요한 날이면, 여타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고, 비행기는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 뜨고 내리지도 못한다. 이외에도 수능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생략한다. 전 세계에 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지만, 그 비슷한 또래의 아비이다 보니,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수험생들의 얼굴이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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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한강의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 그날 저녁,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고집하는 한 배우의 삶을 그린 연극을 보고 있었다. 섬세한 연기, 묵직한 울림, 모든 게 좋았다. 오후 9시30분, 객석을 빠져나오며 스마트폰 전원을 켜자 적잖은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에는 ‘한강’ ‘노벨 문학상’이란 단어가 선명했다. <더 드레서>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새로운 전율은, 돌고 돌아가는 귀갓길마저 흥겹게 했다. 혼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축배를 들이켠 나는, 일의 특성상 대부분 ‘초판 1쇄’일 수밖에 없는 한강의 작품들을 찾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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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있고도 없는 ‘희망’ 긴 (듯 보였던) 추석 연휴가 속절없이 끝났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함께 살아온 어제와 오늘, 함께 살아갈 내일을 이야기하며 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달뜬 기분으로 어제는 추억했으되, 마음 놓고 오늘과 내일은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특정 세대는 아니다. 노년, 장년, 중년, 청년, 유소년 세대 모두, 즉 우리 시대 대다수 사람들은 무언가에 쫓기며 오늘을 살고, 하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한다. 팍팍한 경제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각각의 인생은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그 고민 속에서 희망이 영글어야 하는데,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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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나이 스포츠 중계에, 종종 전성기가 지난 선수가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일 때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이 등장한다. 스포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장의 활약 뒤에는 이 말이 붙곤 한다. 요즘 이 말은 처세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동안이 강조되는 시대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거 아냐”라는 말을 인사치레로 하는 경우도 있다. 내남없이 건강한 삶을 꿈꾸는 세상에서 이 말은 그만큼 값어치가 높은 축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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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장벽 세상 도처에 장벽이 있다. 침략자를 막기 위한 장벽이 있는가 하면,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위한 장벽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 예가 우주에서도 보인다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이다. 후자는 한때 냉전의 상징물이었으나 지금은 ‘기억’을 위해 일부 보존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장벽이 상징성만 남았다면, 휴전선은 피아를 구분하는, 분단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가 담긴 장벽도 있다. 네덜란드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처럼 명칭 끝에 담(dam)이 붙는 곳이 많은데, 바다나 강의 범람을 막으려 댐을 설치한 도시들이다. 댐은 ‘막다’ ‘차단하다’ 뜻을 담은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장벽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다. 적을 막는 일도, 피아를 구분하는 일도, 바다의 범람을 막는 일도 결국 삶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장벽은 되레 삶을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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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MBTI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 T야?”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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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눈물 지난 4월 말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최고 시청률 24.85%를 기록하며 세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제목과 달리 여주인공보다 남주인공이 눈물을 더 많이 흘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 절절한 눈물에 팬들은 더 열광했다고 한다. 사전 정의에 따르면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액체 형태의 분비물로 눈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살다 보면 눈물엔 여러 가지 정황이 있다. 때로 슬퍼서, 종종 기뻐서 눈물짓는다. 반가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 눈물의 정황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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