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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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해피엔딩은 없다 “중동이 미국 외교정책에서 장기 전략과 일상 정책을 지배하던 시대는 다행히 끝났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한 선언이다. 그랬던 미국이 중동으로 돌아가 이란과 전쟁 중이다. 사람들은 이 느닷없는 전쟁의 이유를 찾느라 헤매고 있다. 트럼프가 말한, ‘임박한 위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당연하다. 이 전쟁은 미국 안보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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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미국 시민연대는 어떻게 권력중독을 막는가 2026년 미국 미니애폴리스는 1980년 광주를 닮았다. 중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거리를 휩쓸고 다니며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주민·난민을 무차별 폭행·체포하고 무고한 시민을 살해했다. 국가폭력에 항의하는 시민은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폭력은 가자, 베네수엘라, 그린란드에서도 목격되는 지구적 현상이다. 트럼프 정책을 이해해보겠다고 국가안보전략(NSS)·국방전략(NDS)과 같은 전략 문서를 분석하는 건 시간 낭비다. 21세기 서반구에는 미국으로부터 안보 위협을 받는 국가는 있어도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NSS는 느닷없이 서반구 지배를 미국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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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모두 윤석열이다 여야는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방법으로 윤석열 유산을 청산하고 있다. 여권의 청산 작업은 검찰 해체, 특검을 통한 내란 진상 규명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검찰 해체는 막바지에 이르러 혼란스러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가 마련한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이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중수청법안은 기존 검찰청 제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검찰 해체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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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위험한 조합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금지한다. 언론과 플랫폼·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이 대상이다. 언론과 시민이 이 법으로 10억 과징금, 5배 징벌적 배상을 부과받는 일이 얼마나 자주 생길지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실제 처벌 가능성이 아니다. 처벌 가능성이 불러올 효과다. 어디까지가 공익을 위한 표현인지, 허위사실로 타인에 손해를 끼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시민이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행동은 입을 닫는 것이다. 국가 검열 이전에 자기 검열이 자유의 공기를 희박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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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라는 농담 한국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표현의 자유 제약이 가장 심한 국가에 속한다.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형사·민사로 책임을 묻고,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모욕죄를 중범죄로 처벌하고, 행정기관이 방송 내용을 심의해 제재하고, 인터넷을 검열하는 유일무이한 국가다. 특정 정부가 일탈 행위를 한 결과가 아니다. 교대로 집권한 양당 가운데 어느 한 정당이라도 통제를 포기했으면 이렇게 이중삼중 통제망을 구축하지 못한다. 양당 정부는 예외 없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권력자원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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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이재명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검찰은 해가 지지 않는 권력이었다. 정권은 부침했지만, 검찰은 정권 흥망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기득권 집단이었다. 법의 간판 뒤에서 권력과 거래하는 정치집단이었고, 정세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기회주의자였다. ‘검찰 천하’는 검찰 홀로 이룬 게 아니다. 검찰은 스스로 권력을 창출하지 못한다. 정치 엘리트들이 검찰을 정치 무대 한가운데로 초대하지 않았다면 검찰은 정치할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검찰은 집권 세력이 검찰을 정치 도구로 삼고, 양당이 상대 정치인 잡아가라고 경쟁적으로 먹잇감을 던져줘서 키운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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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이토록 무례한 양당 대표는 상대를 향해 시도 때도 없이 모욕적 발언을 하고 국정감사에서 마주 앉은 의원들은 고성, 막말, 욕설을 주고받는다. 가슴속에 담아둔 말을 거침없이 속 시원하게 마음껏 쏟아내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그들을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은 목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어도 가슴 깊이 꾹꾹 누르며 참고 산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나라의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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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민주당만 모른다 나라가 아직도 산만하고 어수선하다. 내란이 청산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특검이 진실을 하나둘 밝혀내며, 내란 가담자들을 찾아내 가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격적이어서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나라를 흔들 능력을 상실했다. 더불어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근거 없는 의혹으로 대법원장 축출을 주장하며 사법부를 흔들었다. 모처럼 여야가 합의한 특검법·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뒤집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연일 소동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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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베이징, 조지아에서 생긴 일 중국이 최근 개최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전승절 80주년 행사는 미·중 전략 경쟁의 중간 성적표를 발표하는 무대 같았다. 푸틴은 트럼프 요구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지 않은 채 시진핑과 만나 ‘무제한의 우정’을 나눴다. 4자 안보대화 쿼드의 일원으로,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라는 목표를 공유했던 인도의 모디 총리는 트럼프의 전화를 수차례 거부하고 중국으로 날아가 7년 만에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가 인도에 50% 벌칙 관세를 부과한 뒤의 일이다. 만나고 싶다는 트럼프 제의에 응답하지 않은 김정은은 베이징으로 달려가 6년 만에 시진핑의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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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과감하게, 유연하게, 완강하게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를 휘젓는 건 그의 개성 때문만이 아니다. 동맹을 압박하며 국제질서를 흔드는 그의 요란스러움에는 역사적, 구조적 배경이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미국 내에서는 세계로부터 철수해야 한다는 외교 대전략 논의가 활발했다. 이른바 역외균형론이다. 언젠가 미국 패권도 쇠퇴한다, 동맹국과 책임을 나눠 지역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개입은 지역 패권국이 부상할 때로 제한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부상하는 중국 견제다. 역외균형론에 의한 제한적 개입은 오바마 때부터 일관된 미국 외교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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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낯선 세계를 항해하는 한국 외교를 응원함 최근 국정원의 대북방송 중단에 북한은 즉각 방해 전파 발신 중단이란 상응 조치를 했다. 대화 신호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대화 신호라면, 지난해 1월 윤석열 정부 때 대북방송을 계속하는데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대남방송을 중단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대남방송은 동족 관계, 통일 지향을 전제로 한다. 방송 중단은 남측과 얽힌 인연을 끊겠다는, ‘두 적대국 관계’의 실행이다. 김여정이 마침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는 담화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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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이재명 앞 경고 신호 국민의힘은 대선 뒤 당을 재건해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이재명을 선택하지 않은 시민 절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재명 정부에 상당한 긴장감을 주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그러지 않았고, 세상은 더 이상 이 ‘길 잃은 야당’이 하는 일에 주목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발언권을 잃었다. 이재명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여당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통일체다. 외부 충격에 일정한 물리적 반응만 할 줄 아는, 내부 구조 없는 당구공이다.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확인됐듯이 민주당은 스스로를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도구로 인식한다. 도구는 하나의 의지, 하나의 방향만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