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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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11월의 난데없는 폭설로 아수라장을 겪은 곳이 많았다. 불안정해진 기후만큼이나 인간세계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나마 든든하게 기댈 토대가 있다면 이 불안을 안고도 삶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안은 바로 그 토대가 부지불식간에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토대(土臺)라는 한자어가 가리키듯 토대의 기본은 ‘토’, 바로 흙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흙이 240억여t씩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 해마다 몇t씩이나 되는 흙을 없애고 있는 셈이다. 개발과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과도한 농업과 같이 흙을 돌보지 않고 침식되게 방치하다 결국 토대를 잃은 문명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갔다. 흙 침식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학자들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등의 유구했던 문명이 하나같이 침식과 토질 고갈로 결국 붕괴되었다. 흙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당장의 개발과 소비를 위해 흙 돌보기를 외면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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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허경영과 일론 머스크 허경영씨는 선거에 여러 번 출마하며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2022년 대선에서는 자신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였다고 주장했는데 허위사실로 인정되어 향후 2034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형을 받았다. 한편 그가 2007년 대선에서 발표해 비웃음을 샀던 공약들 중 ‘1억원 결혼 수당’이나 ‘국회의원 수 100명으로 감축’하겠다는 내용은 올 4월 총선에서 다른 방식으로 부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신혼부부 1억원 대출과 셋째 출산 시 대출금 전액 감면을 소위 ‘저출생 대책’ 공약으로 내놓았고 국민의힘이 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공약으로 내놓아 이를 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허경영표 공약이 완전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시트콤 드라마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배우 오지명씨는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해준 게 없다며 허경영씨를 공개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허경영씨를 사기꾼으로 봐야 할지, 시대를 앞서 읽는 사람으로 봐야 할지 헛갈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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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국이 싫어서 얼마 전, 기후위기 시대를 맞닥뜨리며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삶터를 옮겨 생활하는 청년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기후와 수도권을 위해 다른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왕왕 목격하고 걱정과 분노를 쏟아냈다. 최근 이들은 막 자리 잡아 살기 시작한 농촌지역에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전력이 전북 부안과 고창, 전남 신안 등의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소위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송하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 250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송전탑들은 전북 무주, 진안, 장수와 충북 영동, 충남 금산, 그리고 경남 거창과 함양에 들어선다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결정된 일이었다. 한전이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데엔 1978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입법된 ‘전원개발촉진법’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사업 명목으로 지도면에 마음대로 선을 긋고 일을 추진해 생태계와 지역 주민들의 삶터가 파괴되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들이 이런저런 질병에 걸려 죽어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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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을 지나던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돼지는 비좁은 운반트럭에 작게 뚫린 사각 구멍에 가로로 쳐친 쇠막대를 필사적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어느 축산시설에서 길러지다 도축장으로 이송되던 중이었을 게다. 몸을 돌아눕기조차 어려운 감금틀에 갇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반복당하는 엄마 돼지에게서 태어나 겨우 6개월 남짓 살았을 것이다. 생애 단 한 번도 푸른 풀밭을 밟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축산시설을 떠나 실려 간 곳에서는 먼저 이송되어 와 도축 대기장에 집결해 있는 다른 돼지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곧 닥칠 일을 알기에 두려움에 차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나 둘 도축장 안으로 들어간 돼지는 전기충격을 당할 것이고 이내 어느 곳의 단두대에서 머리가 잘린 무고한 정치범처럼 머리가 댕강 잘릴 것이다. 동강난 몸들은 분리되고 천장에 붙어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걸린 쇠갈고리에 대롱대롱 걸릴 것이다. 따뜻하게 몸속을 타고 다녔던 붉은 피가 갈고리에 걸린 머리와 몸통에서 도축장 바닥으로 주륵주륵 흘러내릴 것이다. 피가 다 쏟겨 나간 몸은 이리저리 난도질당하고 잘린 채 스티로폼 포장지에 담겨 신선식품 진열장에 진열될 것이다. 남은 부위는 가공육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익명의 돼지는 이제 돼지라는 종명조차 잃은 채 삼겹살이나 족발 또는 소시지나 햄으로 불리며 인간의 밥상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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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지구 식히는 텃밭 농부가 되자 전국이 푹푹 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남은 생애 중 가장 덜 더운 여름이 될 수 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는 절대 넘어서는 안 될 티핑포인트인 1.5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경고가 울려왔음에도 이미 넘었다. 정부가 앞장서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모르쇠를 넘어 여전히 자연파괴 개발사업에나 몰두하는 사이 사람들은 각자도생으로 몰리고 있다. 며칠 전 한 계곡에 갔다가 상황의 심각함을 새삼 느꼈다. 계곡 옆 민가에 속한 작은 빈터엔 수개월 동안 통째로 장소 세를 내고 피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너무 더워 집에선 도저히 살 수 없어 피난왔다고 했다. 일종의 기후난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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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저출생 아니라 저출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저출생과 저출산도 그렇다. 이 경우 더 주목할 것은 말을 하는 이들의 진단이 달라 향하려는 방향 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출산파업’으로 산부인과부터 초중고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여파가 차례차례 현실화되니 정부도 이런저런 대책을 부랴부랴 세우려 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저출생 대책이라고 말하고 또 한편에서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경우처럼 여전히 저출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혼선과 혼란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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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밀양과 청도의 시골마을 논밭과 주변의 산꼭대기에는 76만5000볼트라는 무시무시한 고압이 흐르는 전선을 받치는 40층 아파트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이 있다. 이것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2005년부터 온몸을 던져 싸워온 여성 농민 어르신들이 계신다.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이 2차선 도로라면 이 송전탑들은 36차선급이라니 무서운 규모다. 흐르는 전압이 워낙 높아 해외에서도 사막이나 산악지대같이 민가가 없는 곳에나 세운단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기만하고 이간질시키고 그래도 안 되니 국가전력수급 안정화라는 이유를 들며 2000여명이나 되는 경찰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맨몸으로 저항하는 할머니들을 경찰이 질질 끌어내던 국가폭력의 현장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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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기후위기와 어린이들의 안부 지난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어린이들의 안부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주시해온 이들은 2030년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이미 1.7도를 넘어섰고 현재 추이대로 간다면 2030년이 되면 3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한다. 이토록 뜨거워진 지표면에서 지금의 어린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간 기성세대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봤자다. 1962년, <침묵의 봄>을 통해 레이첼 카슨은 인류가 화학독극물로 풀을 죽이고 벌레를 죽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그 죽음의 사슬로 새들도 멸종해 새의 노래소리 한마디 없는 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1972년, 많은 연구자들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란 보고서를 통해 경제성장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알렸다. 이런 흐름하에서 1970년대 초, 산업주의와 상품시장 중심의 삶의 방식을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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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는가? 봄마다 색색의 꽃잎을 터뜨려 겨우내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는 갖가지 모습의 꽃나무들도 씨앗에서 그 삶의 처음을 시작하고 밥상에 오르는 각종 봄나물들 역시 씨앗에서 시작한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니 씨앗이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걸로 끝이다. 씨를 말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예부터 농부들은 씨앗지킴이였다. 그해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사는 전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튼실한 것들을 잘 골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대량으로 짓는 농사도 마찬가지이고 소량의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콩, 깨, 상추, 파, 배추, 호박, 오이… 밥상에 올릴 음식이 다양해지려면 밭에 뿌리고 심을 씨앗도 다양해야 한다. 오랫동안 바로 이 일을 여성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해왔다. 시골에서 텃밭을 지켜온 여성들이 곧 우리 땅의 씨앗지킴이인 것이다. 도시로 이주한 할머니들이 손바닥만 한 빈 땅이라도 발견하면 여지없이 씨를 심고 무언가를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에게는 경작본능이 있는 거 아니냐며 더러 웃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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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무얼 위한 ‘농촌 재구조화’일까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공간재구조화법)이 지난해 3월28일 제정되어 오는 3월29일 시행될 예정이다. 제정 목적은 농촌의 난개발과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공간을 재구조화하고 재생해 삶터, 일터, 쉼터로서의 농촌다움을 회복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농촌 재구조화와 재생 계획을 수립하는 주체는 군수와 시장이고 계획을 승인하는 주체는 특별자치시와 도지사다. 협약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이고 경미한 사안들은 대통령령에 따라 정하게 된다. 농촌공간재구조화법 시행계획 수립 항목에는 재생활성화와 농촌특화지구 지정이란 말이 나온다. 그러니 농촌공간 재구조화란 말은 농촌특화지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고, 농촌마을보호지구, 농촌산업지구, 축산지구,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재생에너지지구, 경관농업지구, 농업유산지구 등이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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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인구 말고 사람을 말해야 바뀐다 내가 사는 면의 어린이집에 올해 새로 들어온 원생은 한 명이다. 어린이집 관계자인 이웃은 작년 내내 이 걱정을 했다. 어린이집이 폐원되면 곧 초등학교로 영향이 가고 결국 폐교가 되면 이어 거주민이 줄어들고 행정서비스와 의료서비스 기관들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일상생활이 더 불편해지고 거주민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나 삶의 질이 악화된 여러 마을의 경우를 봤다고 했다. 이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보여주면 다른 곳에서 이주를 해오지 않겠냐며 마을 홍보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큰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다는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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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새해엔 셈법 바꿔보기로 했다 물가가 자꾸 올라 걱정들이 많다. 안 오르는 건 월급밖에 없다고들 한다. 물가가 올라도 농산물은 여전히 헐값이라 살기 막막한 건 매한가지라는 얘기도 들린다. 어린 시절, 물가와 월급의 관계가 궁금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먹고살아야 돈을 벌러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물가가 오르면 밥 사먹을 월급도 올라야 한다. 그런데 월급이 오르면 생산비가 오른다. 기업은 오른 생산비를 충당하고 이윤도 챙기기 위해 다시 물건값을 올린다. 그러면 또 물가가 오른다. 꼬리를 문 문제를 생각하다가 머릿속만 복잡해진 어린 나는 그만 흥미를 잃고 질문을 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