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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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로컬을 읽는다 오랫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한 엄마는 일흔이 된 지난해 ‘프리’를 선언했다. 정년이 지나고도 계약직으로 계속 일했는데 24시간 주·야간 2교대로 운영되는 요양원 일이 힘에 부치는 시기가 왔다. 요 몇년은 한여름에도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했고, 하루에도 몇번씩 코를 찌르는 코로나19 검사도 피할 길 없는 근무 환경이었지만 그때는 동료들과 함께 버텨내는 무언의 힘이 작용한 듯하다. 엄마는 정부에서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고 맞은 일흔 번째 생일 무렵 퇴직했다.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했다. “내 한 몸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며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해볼 거라던 엄마는 찬 바람이 걷히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요양보호사로 일할 데는 많다 아니가. 일할 사람을 못 구해가 난리지.” 지역의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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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꽤 당당하게 강원 양양을 ‘내 구역’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오! 서핑?” 하는 반응이 열에 열. 그럴 만도 하다. 양양은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함께 ‘국내 서핑 성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200㎞ 남짓 떨어져 있는 양양을 좋아하고, 또 즐겨 찾는다는 이와 서핑을 연결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2017년 봄, 처음 양양 죽도해변에 간 날을 기억한다. 일에 대한 욕심, 그에 비례하는 업무 긴장도에 과부하가 걸린 시기였다. 쉬는 날만큼은 일에서 멀어져 보자고 다짐했다. 물리적으로 서울 도심,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양양행의 물꼬를 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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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모눈종이의 꿈 부동산 직거래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 집을 살 만한 형편은 아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없지는 않다. 물론 한동안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물부엌(간단한 조리와 빨래 등 물 쓰는 일이 가능한 보조적 공간)이 딸린 문간방에서 시작해 반지하, 셰어하우스, 고시원, 옥탑방을 거쳐 다가구주택의 투룸 월세살이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보금자리 여정이다. 주거빈곤가구의 고충을 표현하는 ‘지옥고’를 두루 거치면서도 나는 그때그때 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지하에서 셰어하우스로 옮길 땐 지상으로 올라온 것만으로도 기뻤고, 고시원에서 옥탑방으로 옮길 땐 방에서 세 발짝 이상 떼어 걸을 수 있는 데다 창을 열어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것에 더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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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틈 궁리 여름이 무르익으니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흘러 이 장마가 지나면 곧 휴가철이다. 자연스럽게 요사이 스몰 토크의 단골 주제는 날씨와 휴가. 휴가 계획들 세우셨는지. 나는 휴가에 꽤 진심인 편이었다. 이왕이면 이국으로 떠나려 했고, 가능한 한 휴일까지 붙여 최대한 길게 다녀오려 부단히 애썼다.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기 아까워 촘촘히 계획을 짰고, 무언가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 두어 가지 대안도 준비했다. 그러니 휴가 한 번 다녀올 때면 재충전은 무슨, 방전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얼마간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휴가란 얼마나 귀한가. 귀한 만큼 빈틈없이 보내야 옳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휴가차 떠난 여행에서 ‘한국인만 가능한 일정’이라고 설명이 따라붙는 현지 투어들을 적잖게 마주했다. 휴가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국인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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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로컬 부자 선언 최근 유튜브에서 서비스되는 맛집 탐방 콘텐츠 <또간집>을 꼬박 챙겨본다. 거침없는 캐릭터의 진행자가 쏟아내는 입담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격한 반응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온라인상에 차고 넘치는 맛집 탐방 콘텐츠 가운데 내가 유독 <또간집>에 호감을 느낀 이유가 영상 자체의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몇편을 연이어 보면서 알아챘다. 진행자는 예고 없이 한 지역으로 나선다. 길에서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한다. 맛있어서 최소 두 번 이상 가본 맛집을 추천받는다. 참인지 거짓인지는 영수증으로 가늠한다. 영상 끝에 그날 추천받아 방문한 서너 곳 가운데 ‘또 갈 집’이라 명명하여 다시 가고 싶은 한 곳을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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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시혜’가 아닌 ‘지혜’가 필요한 때 지난 4월 중순께 광주 광산구 가족센터에서 ‘장소와 환대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마련된 8회 차 강좌 가운데 하나를 맡았다.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어떻게 입을 뗄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주민 대상 인문 강좌인데 청강생의 국적, 연령대는 물론 생활환경도 제각각인 데다 한국어 습득 능력에도 차이가 있어 통역자가 함께 자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호남대학교가 2022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도시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도모하고 있다. 사업단은 지역사회에서 이주민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한 실정에 주목했다. 강의를 요청한 관계자는 한국어 교육을 넘어 보다 삶의 차원에서 이주민의 사고를 확장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그 마중물 역할로 광주의 지역성에 기반한 인문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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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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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나를 놓치지 않기로 모처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정월대보름을 보냈다. 한 친구의 생일에 맞춰 약속을 잡는데 마침 음력 정월 보름날이다. 한집에 모여 오곡밥 짓고 묵나물 볶아 한 해 기복까지 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더랬다. 절기를 제법 챙겨왔다. 시작은 2012년 무렵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갖게 마련인 서울살이를 향한 막연한 바람이 내게도 있었는데, 서울살이 6년째로 접어들던 때 콩깍지가 벗겨졌다. 다람쥐 쳇바퀴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였고, 서울살이가 본래 팍팍한 법이라고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유행하는 옷차림 정도로 가늠하고 있는 내 일상이 참 서글펐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사는 게 시시해지다니… 딴에는 충격이었다. 서울내기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거란 지레짐작에 마음이 더 뾰족해지기도 했다. 당장에 서울을 떠나는 것은 어쩐지 회피하는 것만 같아 내키지 않았다. 궁리 끝에 삭막하기만 한 이 도시에서 최소한 제철을 감각할 수 있다면 숨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싶어 절기를 챙겨보기로 했다. 무슨 무슨 데이라고 부르는 기념일을 챙기듯 입춘을 기념하고, 한로를 즐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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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올해도 설을 앞두고 민생 행보를 앞세운 정계 인사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활성화 방안을 찾겠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힘주어 말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날짜만 바꿔도 될 만큼 매년 반복되는 모양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상인과 시민들이 그 모습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제는 대목 특수도 없다고 한숨짓는 상인들은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저편의 손이 야속하고, 시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명절과 선거철에 한정된 보여주기식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정부는 전통시장을 유지·발전시키고자 2004년 약칭 ‘전통시장법(현재 기준 정확한 명칭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을 제정해 지원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책적으로 전통시장 살리기를 본격화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전통시장은 좀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여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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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셈을 해보니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이라는 내 생활권을 벗어난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러모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내 직업이다. 사람과 장소, 문화적 유산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영역이 꽤 방대한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지역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엮는 데 있다. 지역성이라는 말이 따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역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한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켜 지역성이라 한다. 나는 이 지역성에 줄곧 기대를 갖고 기대어왔다.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