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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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서리를 기다리며 여름이면 봉선화를 따다가 손톱에 꽃물을 들인다. 그 자체로 재미도 있지만 꾸미는 데 서툴러 그런지 홀로 겸연쩍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 손을 내밀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꽃단장이지” 하고 으스대기에도 그만이랄까. 손끝에 남은 꽃물이 시간을 가늠케 해 보통날에 잠시 여유를 갖게 하는 것도, 그렇게 어깨가 움츠러드는 계절에 이르러 은은히 사라지는 것도 맘에 든다. 여러모로 참 매력적인 계절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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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디에 발붙이고 사는가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겹친 지난 연휴, 모처럼 엄마와 시간을 보내려 고향 집에 내려갔다. 이튿날, 어린이날 선물을 잔뜩 기대했을 조카로부터 “고모, 우리도 이제 할머니 집으로 출발해요” 하는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외사촌 오빠였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인사라도 하려나 싶어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는 엄마는 내게 곧 큰외삼촌의 부고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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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산불 그리고 기후여행자 3월22일 의성군에서 피어오른 불씨가 산자락을 타고 바닷가 영덕군까지 번져 경북 북동부 지역에 크나큰 피해가 발생했다.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27m인 강풍을 타고 시간당 8.2㎞ 속도로 이동한 불길이 928㎞에 달하는 화선을 만들었다. 소실 면적은 4만5157㏊. 이 숫자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헤아릴 필요도 없이 ‘최악’ ‘최대’라는 수식과 함께 보도된 산불 현장은 우리의 마음까지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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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대저토마토’를 아십니까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 김해국제공항 인근의 한 토마토 농가로 명산지 취재를 다녀왔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서 재배하는 대저토마토, 일명 ‘짭짤이토마토’가 제철맞이를 하는 시기다. 농산물 소비의 폭이 좁은 1인 가구라는 것이 변명이 될는지. 들어는 봤어도 먹어본 기억은 없었던 터라 사실 좀 짐작이 안 됐다. 과일은 물론 토마토처럼 열매를 식용으로 하는 과채류도 당도가 주요 품질 기준으로 작용한다. 근래 신선식품 코너에서 ‘○○브릭스 이상’이라는 홍보 문구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데, 이 브릭스(brix)가 당도를 백분율로 나타낸 단위다. 품질을 가늠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나 브릭스 수치가 높을수록 열매가 맛있게 잘 익었다는 인식이 높다.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후식이나 간식으로 얇게 저미듯 썬 토마토에 하얀 설탕을 솔솔 뿌려 먹었던 시절도 있잖은가. 그런데 대놓고 짭짤한 토마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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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무슨 일 하세요? 수없이 물었던 말이다. 그만큼 답해야 했던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 한국 사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소속과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니 물을 때였든 답할 때였든 그리 흔쾌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어이 묻고, 들어야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추진한 현대사 구술채록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거나 이에 관계된 일을 수행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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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들킬 결심 새해를 맞고 며칠 안 지나 겨우내 눈과 서리를 견디며 더 단단하고 더 달달해진다는 해남 겨울배추 수확 현장에 다녀왔다. 수년째 월간으로 발행되는 농업 전문지에 지역명과 나란히 등호를 붙여도 될 만큼 이름난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2월호 취재였다. 월간지 발행 특성상 한 달을 앞당겨 준비하는데, 보통 때 같으면 원고를 마감하고 열흘여 여유가 생기지만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진 설 연휴가 곧이고 2월은 짧은 달이다. 그제 2월호를 마감하고는 봄맞이 3월호 취재 후보군을 살피다가 아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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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함부로 하지 못하게 현재는 필히 과거가 된다. 그리고 그 과거는 일부만이 역사로 기록되어 왔다. 지금껏 무엇이 어떻게 선별되어 역사로 기록되었는지, 왜 그것들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올해 국가유산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국가유산사랑’에 ‘근대와의 조우’라는 글을 매달 연재했다. 광주 양림동, 나주 영산포, 진주 에나길, 경주 읍성 둘레, 원주 대성로, 제주 모슬포 등 각 지역에서 반나절 찬찬히 걸어 둘러볼 수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동선을 짜 이야기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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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의 숨 지역의 내일을 밝히는 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 꽃과 단풍,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특산품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총동원되는 축제의 계절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이 황금철을 놓칠세라 지역 간은 물론 지역 내에서도 축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올가을은 내심 기대했던 축제가 열린 광주 양림동에서 맞았다. 사실 광주와 축제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1980년 5월이 중력으로 작동하는 듯한 광주는 가뿐히 걸음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주저하며 거리를 두던 내가 광주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축제 이전에 양림동 덕분이다. 양림동의 근대는 일제의 영향력 아래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이 묻어나는 그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대서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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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우리에겐 더 많은 상이 필요하다 10월 둘째 주 토요일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 한 시상식에 수상자로 초대받았다. 비밀스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수상 소식을 전해듣기 전까지 이 상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 아야진에 있는 출판사 온다프레스에서 펴낸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이하, 로컬씨)가 제8회 한국지역출판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화연대인 한국지역출판연대에서 지역과 지역출판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2017년부터 매해 한국지역도서전과 함께 한국지역출판대상을 개최하고 있다. 서울과 파주를 제외한 지역 소재 출판사에서 전년에 발간한 책을 대상으로 지역성, 지역출판 도서로서의 정체성, 출판 기획과 작품의 우수성 등을 두루 평가하여 대상과 공로상을 선정한다. 행사는 전국 순회 형식으로 열리는데, 올해는 대전 유성구와 공동 주관하여 대전 유림공원에 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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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로컬을 읽는다 오랫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한 엄마는 일흔이 된 지난해 ‘프리’를 선언했다. 정년이 지나고도 계약직으로 계속 일했는데 24시간 주·야간 2교대로 운영되는 요양원 일이 힘에 부치는 시기가 왔다. 요 몇년은 한여름에도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했고, 하루에도 몇번씩 코를 찌르는 코로나19 검사도 피할 길 없는 근무 환경이었지만 그때는 동료들과 함께 버텨내는 무언의 힘이 작용한 듯하다. 엄마는 정부에서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고 맞은 일흔 번째 생일 무렵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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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꽤 당당하게 강원 양양을 ‘내 구역’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오! 서핑?” 하는 반응이 열에 열. 그럴 만도 하다. 양양은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함께 ‘국내 서핑 성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200㎞ 남짓 떨어져 있는 양양을 좋아하고, 또 즐겨 찾는다는 이와 서핑을 연결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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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모눈종이의 꿈 부동산 직거래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 집을 살 만한 형편은 아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없지는 않다. 물론 한동안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물부엌(간단한 조리와 빨래 등 물 쓰는 일이 가능한 보조적 공간)이 딸린 문간방에서 시작해 반지하, 셰어하우스, 고시원, 옥탑방을 거쳐 다가구주택의 투룸 월세살이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보금자리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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