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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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공항은 공항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강한 플래시를 얼굴에 쏘면 특수폭행죄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변우석 과잉 경호 논란’이 화제가 되며 언론에서 나온 얘기다. 공항에서 경호원이 팬의 얼굴에 플래시를 발사하는 일은 그간 일상처럼 벌어져왔다. 한데 피해 대상이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 이용객과 일반인이 되니 전대미문의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다. 발생 단 5일 만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받았고, 현재 경비업법 위반으로 관련자 4명이 입건됐다. 해당 경호업체 대표가 “경호원이 플래시를 비추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나는 이 온도 차가 너무나 얼떨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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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 피아노 음계도 잘 못 짚는 내가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K팝 칼럼니스트’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으니 기초 작곡 과정은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직장 근처 가장 큰 지하철역으로 주소지를 설정하고 검색하니 수십곳이 나왔다. 그중 얼마나 많은 아이돌을 배출했는지 필사적으로 홍보하는 학원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돌을 많이 배출했다는 건 그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상담만 먼저 받아보려 했으나 수강생들이 ‘표정 연습’을 하는 전신거울이 비치된 작은 방, 곳곳에 붙은 기획사 내방 오디션 전단을 보고 바로 작곡 입문반에 등록했다. 작곡은 핑계이고 아이돌 지망생의 세계가 궁금했다. 입문반 월 수강료는 현직 작곡가 주 1회 수업에 50만원이었다. 가장 싼 코스였다. 댄스와 보컬을 기본으로 과목을 추가하고, 외국어 실력도 따로 쌓아야 하는 지망생들은 의대 입시에 버금가는 사교육비를 들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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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뉴진스, 하이브 그리고 시간 여행 뉴진스의 신곡 ‘How Sweet’는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기분 좋게 튀어오르는 총천연색 뉴트로 사운드, 하이파이브를 보내고 싶은 경쾌한 춤 동작을 볼 때면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짙게 태닝한 피부에 코 피어싱을 한 1990년대 ‘추구미’의 현신 같았던 채리나, “너는 옷이 그게 뭐니?”에서 ‘그게’를 담당하던 힙합바지를 떼로 입고 나와 공연하던 영턱스클럽이 떠오른다. 요즘 많은 이들이 뉴진스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가장 예쁘고 쿨한 스타일을 가져와 재창조한 뉴진스의 세계관은 당시를 살아본 이들에겐 힙합바지가 ‘그게’에서 ‘옷’으로, 댄스가요가 문화권력의 가장자리에서 핵으로 변모해온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젊은날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Y2K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겐 또 다른 감각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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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내가 K팝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K팝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나를 좋아해주는 기분이 들거든.” 영화 <조이 라이드>에 열혈 K팝 팬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드아이’의 대사다. K팝은 애정을 주고받으며 국경을 초월한 인기와 영향력을 쌓아 왔다. 이 상호작용은 K팝을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문화로 명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애정에 실망과 답답함이 스며들었다. 좋은 음악과 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져야 할 자리에 주가조작, 인수·합병 같은 자본의 언어가 침입한 후부터다. 이번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은 그동안 막연하게 감지해 온 K팝 위기론의 실체를 보여줬다. 내부 감사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사안을 일방적으로 터트리고 자극적으로 받아치는 모습에서, 무의미한 여론전에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는 비겁함에서 자본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위상에 맞는 자질은 갖추지 못한 K팝 산업의 지체와 해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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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을 사랑하는 의원 당선인께 문화산업을 흔히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부르지만 K팝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K팝 산업은 굴뚝이 너무 많습니다. 업계 1위인 하이브의 총매출액은 코스피 상장 첫해인 2020년엔 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급격하게 덩치를 불려 지난해 2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자산 5조3000억원 규모가 되며 대기업집단 지정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비약적인 성장의 핵심 축은 앨범 판매량입니다. 작년에만 1억장 넘는 K팝 앨범이 팔렸습니다. 그러나 박수 쳐서는 안 됩니다. 환경파괴, 팬이벤트 참여를 미끼로 한 다량 구매 유도, 끊임없는 사재기 논란 속에서 달성한 떳떳하지 못한 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이동한 지 오래인데 앨범 판매량에 의존한다는 건 K팝이 얼마나 후진적인 산업 기반을 가졌는지 말해줍니다. 어떻게 K팝을 미래산업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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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의 선택적 경호 나는 중학생 때 음악방송 방청석 입장을 기다리다 경호원에게 멱살을 잡힌 적 있다.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경호원을 보면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출근 준비는 10분 컷이지만 K팝 팬이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에 갈 때는 신중히 옷을 골라 다려 입고 하나밖에 없는 명품 가방을 들기도 한다. 한주먹거리로 보이지 않겠다는 속물적인 자구책이다. 이런 내게 지난해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콘서트에서 경호원이 팬들에게 박수받는 모습을 본 것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자연의 섭리에 관객의 열기까지 더해져 냉방을 해도 공연장 내부가 후덥지근했다. 그 속에서 경호원과 안전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스탠딩 구역 관객에게 물을 나눠주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부축해 휴게공간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팬을 제압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대하는 경호원의 모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슈가의 콘서트는 공연장인 케이스포돔 앞 핸드볼경기장을 대관해 대기 공간으로 제공했을 정도로 관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꼼꼼히 계획하고 투자한 행사였다. 그런 조건에서는 경호원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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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포토카드인가, 포커카드인가 카드로 지은 집. 포커카드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은 종이 탑을 말한다. 지반도 기둥도 없는 이 가짜 집은 곧 무너질 듯 위태로운 상황과 계획을 은유한다. K팝 산업도 카드로 지어졌다. 오늘날 K팝 산업의 누각을 지은 건 바로 랜덤 포토카드다. 포토카드는 이름 그대로 신용카드 크기의 작은 사진이다. 보통 K팝 아이돌 얼굴을 크게 인쇄해 앨범에 무작위로 끼워파는 것을 칭한다. 포토카드는 인증샷 문화와 어우러져 덕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K팝 산업이 급격하게 덩치를 불리며 더 많은 ‘판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부터 재미도 감동도 없게 됐다. 앨범에 들어 있는 버전별, 멤버별 포토카드에 팬사인회 등 이벤트를 미끼로 한 비공식 포토카드까지 더해 수집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짓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포토카드는 작은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넘어 K팝 산업의 사행성 경영전략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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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 냉소가 늘고 환상은 줄었다 2023년 K팝 산업을 이렇게 한 줄 평하고 싶다. “냉소가 늘고 환상은 줄었다.” 미국 대중문화 평론가 척 클로스터만의 책 <90년대>에서 1994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주와 선수단 간 이권 다툼이 파업으로 번지며 세계대전 때도 치러진 월드시리즈가 취소된 정황을 소개하며 쓴 표현이다. 팬들에게 상처를 입히며 팬들의 냉소를 자아내고, 환상은 앗아간 이 사건으로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한동안 시들했고, 미국인의 삶의 양식으로 신화화된 야구의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2023년 K팝 산업의 사정은 훨씬 안 좋았다. 소비자의 냉소는 그 어느 해보다 컸고, 환상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많은 기획사가 글로벌 데뷔 팀을 꾸리고, 영어 음원을 발표하며 K팝에서 ‘K’를 떼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제로 지워진 것은 ‘K’보다는 ‘팝(음악)’이었다. 작년 K팝 업계의 가장 큰 빅딜이었던 SM 인수전은 승기를 잡은 카카오의 시세조종 혐의로 투자총괄대표가 구속기소됐고, 피프티피프티의 전속계약 파기 사태까지 연달아 터지며 K팝 경제모델의 타락한 단면을 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