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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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에는 열광한다. 기록과 점수로 증명되는 세계는 깔끔하고 공정하니까. 참가자들이 각자의 노래를 부르며 축제처럼 즐기는 가요제도 괜찮다. 하지만 음악이나 요리처럼 주관적인 영역에서 ‘과제’를 내주고, 우열을 가려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과정은 어딘가 불편하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다정함은 우리 시대의 펑크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고, 밤의 여행자들이다.’ 하룻밤 머물 공간을 내어줄 배려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다정함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가족이 될 수 있다. 지난 17일 개봉한 <파리, 밤의 여행자들>(2022)이 건네는 메시지다. 1980년대 파리,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엘리자베트는 10대의 남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출산과 유방암 투병으로 경력단절이 된 그는 즐겨 듣던 라디오 심야 방송의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게 된다.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DJ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엘리자베트는, 낮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남편의 배신, 경제적 어려움 등등 가볍지 않은 생활이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지난 8월22일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마침내 2025년 영화 흥행 순위 정상에 올랐다. 11월19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63만명. 상반기 인기를 끌었던 웹툰 원작 <좀비딸>과 같은 관객 수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여전히 하루 1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고 있어, 곧 단독 1위가 될 예정이다. 올해 영화 흥행 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지난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은 312만명으로 6위이고, 3월 개봉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94만명이다. 그 외에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1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선하고 이타적인 영웅의 시대 지난 18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4차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탄생했다. 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는 1회초 삼진 3개를 잡아 이닝을 끝내고 1회말 톱타자로 바로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 오타니는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고,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타자로는 1·4·7회에 홈런 3개를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타니가 음악의 베토벤, 희곡의 셰익스피어,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에 필적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타니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9월1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사진>은 24일까지 7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일 1위였던 <얼굴>은 하루 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뒤졌다가 15일부터 다시 10일째 1위를 기록했다. 100만명을 넘을지 궁금하다.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가 인기를 끌며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에 참여한 <계시록>을 연출했고, <선산> <괴이> <방법> 등 각본과 제작 등을 맡은 다수의 드라마를 성공시켰고, 일본의 고전 <가스인간>을 리메이크하는 등 국내외 차기작이 줄줄이 늘어선 연상호에게 <얼굴>의 100만 관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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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제2의 ○○○은 없다 마침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2억3600만뷰로, 넷플릭스에서 가장 스트리밍이 많이 된 영화에 등극했다. 극장에서 개봉한 싱얼롱 버전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한편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일본에선 자국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고, 미국에선 외국어 영화 최대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전지적 ‘독자’ 시점 20여년 전, 할리우드는 인터랙티브 영화 개발에 나섰다. 게임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부러워하며, 사람들은 이야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이 크다고 판단했다. 영화에 게임 방식을 접목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화면이 멈추면 선택지가 나온다. 관객이 좌석에 달린 번호판에서 원하는 버튼을 누르면, 다수가 선택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DVD 플레이어에서 영화를 볼 때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선택한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K컬처의 새로운 피 지난 6월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4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등 41개국에서 1위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는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에서 1위를 기록했고, 삽입곡인 ‘골든’(Golden)과 ‘소다 팝’(Soda Pop)은 유튜브 공개 10여일 만에 1000만뷰와 600만뷰 이상이 나왔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인간에게 필요한, 사소한 것들 휴머니즘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이 너무나 추악하고 잔인한 짓을 해도, 결국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연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에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그린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휴머니즘의 위대함을 느꼈지만, 반세기가 지난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짓밟는 존재인 것일까? 인간은 사악하게 태어난 걸까? 그런 생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대사에 공감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조금 생각이 변한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지구의 해피엔드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소행성 충돌, 바이러스, 핵전쟁… 무엇이든 간에 인류는 언젠가 사라진다. 지구 역사에서 인류의 존재는 아주 잠깐의 일이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환경 파괴를 하면서 문명을 확장해 온 인간이 사라지는 결말은, 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피엔드가 아닐까? 행복과 불행을 가릴 필요도 없는, 자연의 순환 같은 것. -
김봉석의 문화유랑 투명한 승부에 끌린다 바둑은 둘 줄 모른다. 할아버지는 바둑을 즐겨 두셨고, 바둑을 두는 친구들과도 가까웠지만 딱히 배우지 않았다. 잡기를 싫어한 건 아니다. 중국과 일본 장기, 체스를 두고 화투와 포커 등도 한다. 바둑을 볼 줄은 안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바둑책을 그냥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기보도 매번 들여다봤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집에 있던 책과 잡지, 신문을 다 읽을 때라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서봉수와 조훈현의 스토리를 알게 됐고 차민수, 이창호, 이세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김봉석의 문화유랑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혐오의 시대다. 여성을, 장애인을, 중국인을, 또 누군가를 타당한 이유 없이, 나의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조롱하고, 배척하고, 탄압한다. 초유의 일이 아니고 낯설지도 않다. 희생양을 만들어 진짜 악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음모는 인류사에 항상 존재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있었고, 제국주의 일본의 조센징 혐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