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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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호러’는 금기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동네 재개봉관에서 부모님과 한국영화 <목없는 미녀>를 봤고, TV에서 방영하는 <전설의 고향>에 빠져들었다. ‘소년중앙’ ‘새소년’ 등 아동잡지에서 세계의 불가사의, 유령이 나오는 집 꼭지는 반복해서 읽었다. <엑소시스트> <오멘>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의 몇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지금도 좋아한다. <심야괴담회>를 즐겨 보고, 종종 유튜브의 괴담 영상을 틀어놓고 일한다. 흥행에 실패했으나 수작인 한국영화 <소름>과 <불신지옥>을 모르는 이에게 늘 추천한다. OTT에 올라오는 낯선 공포영화들도 찾아본다. 가끔 공포영화를 함께 보는 소모임에 나가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호러영화를 보고 담소한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본다고 한다. 끔찍한 걸 왜 봐? 이상한 걸 좋아하네? 성격이나 취향에 하자가 있다는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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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죽음을 선택해 주는 국가 언젠가 나는 아사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이가 많이 들고, 주어진 인생을 충분히 성실하게 살아냈다고 확신할 때, 천천히 곡기를 끊으며 스스로 죽어갈 것이라고.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홀로 살아가고, 홀로 죽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의 치기였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거나, 치매 등으로 나의 의식과 기억이 허물어져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나의 의식과 육체를 온전히 움직이고 책임질 수 없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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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문화유랑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2023년 극장에서 보는 마지막 영화로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선택했다.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은 <마지막 황제>,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출연도 한 <전장의 크리스마스>, 지난해 11월 개봉하여 40만명이 넘게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등 많은 걸작 영화음악을 작곡한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를 담은 영화다. 사카모토는 2023년 3월28일, 71세로 세상을 떴다. 몇년간 대장암으로 투병을 하면서 죽음을 예감한 사카모토는 마지막으로 피아노 연주 영상을 찍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피아노만이 존재하는 무채색 스튜디오에서 20곡을 연주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8일간 하루 3곡씩 2, 3번의 테이크로 찍었다. 카메라는 담백하다. 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때로 얼굴이나 손으로 다가간다. 만족스러운 연주일 때 사카모토의 얼굴은 부드러워지고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건반을 두드리는 손은 경쾌하고 섬세하다. 하지만 때로 힘에 부친 듯 숨결이 약간 거칠어진다. 얼굴에 땀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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