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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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성 메인앵커 TV 뉴스의 진행자 ‘앵커(anchor)’는 뉴스의 중심을 잡는 닻(anchor)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60년대 미국 3대 지상파 방송 중 하나인 CBS TV의 전설적인 뉴스 진행자 월터 크롱카이트를 두고 ‘앵커맨’이라는 용어와 앵커시스템이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중량급의 앵커 중심으로 뉴스 방송을 만들어 왔다. 이 같은 ‘앵커시스템’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들어왔다. 최근 들어 다변화되고는 있지만, 오랫동안 나이 지긋한 남성과 젊은 여성의 조합이 뉴스 진행의 정석처럼 여겨졌다. 여성신문이 지난여름 공중파 3사(KBS, SBS, MBC)의 뉴스 프로그램 28개의 앵커 보도를 일주일간 조사한 결과는 이 같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오여삼’(50대 남성과 30대 여성), ‘남중여경’(남성은 무게 있는 뉴스, 여성은 가벼운 뉴스), ‘남선여후’(남성 먼저, 여성 나중에 리포트)라는 민낯이다.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며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뉴스보도 관행, 보수적 풍토가 지배적인 언론의 또 다른 단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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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암마을’의 경고 전문용어로 악성신생물이라 불리는 암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3년 이래 36년째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 29만8820명 중 암 사망자가 7만9153명으로 30%에 육박한다. 사망 원인 2위부터 4위까지인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사망자를 다 더해야 암과 비슷해질 정도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민들이 기대수명(82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라고 한다. 인구의 3분의 1은 암을 예방할 수 있고 다른 3분의 1은 완치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암은 여전히 불치병의 대명사이자 공포의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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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수능이 대체 뭐라고 수능일이다. 응시생들에게 나눠주는 ‘수능샤프’가 바뀐다는 소문에 청와대에는 제품명을 알려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몇 달간은 학교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는 집도, 며칠 전부터는 실전 과목 순서대로 공부하고 아예 수능일 도시락 메뉴로 ‘실전 적응 훈련’을 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모두 오늘 하루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서다. 1994학년도부터 대학 입시에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이름대로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준비가 됐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아이들은 ‘대학’에서 ‘큰 배움’을 시작할 준비가 잘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10년 이상 이날만을 위해 달려온 아이들은 이미 ‘번아웃(소진, Burnout)’ 상태로 대학문을 연다. 대부분 아이들의 ‘배움’은 이 순간 멈춘다. 교육과 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배움의 흥분이 사라진 맥빠진 수업, 수용적 교육현실을 질타한다. 한숭희 서울대교육학과 교수는 우리 교육을, 상을 타기 위해 샌드위치를 욱여넣고 돌아서면 다 토해버리는 샌드위치 많이 먹기대회와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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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남자 57세·여자 43세 1988년 12월27일은 한국 여성노동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빨리 퇴직할 이유가 없다, 성차별적 정년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전화교환원 김영희씨가 대부분 여성인 교환직렬 정년을 일반직 55세보다 낮은 43세로 정하고 자신에게 정년퇴직을 통보한 것은 헌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한국통신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7년의 소송에서 노동계·여성계를 중심으로 일터에서의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후원회가 결성됐다. 여론이 뜨거워지며 1989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이 판결은 2008년 사법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바꾼 시대의 판결 12건’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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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납 수돗물, 붉은 수돗물 언제나 틀면 나오는 수돗물. 늘 있었던 것 같지만 한국 최초의 근대 정수시설 도입은 100년 남짓이다. 1908년 설립된 서울 성수동의 뚝도 정수장(현 뚝도아리수정수센터)이 1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물을 많이 쓰는 여름엔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는 게 다반사였다. 1980년대부터 상수도 시설을 확충해 현재 한국의 수돗물 보급률은 99%가 넘고, 1990년대부턴 수질 검사를 국제기준보다 깐깐하게 하며 품질 개선에 주력해 한국 수돗물의 질은 국제사회가 인정할 정도라고 한다. 몇 년 전엔 세계 물맛대회에서 7위까지 차지했다. 툭하면 수돗물 파동을 겪었던 한국으로선 장족의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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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협동조합 유치원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의 공업도시 로치데일에서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의 횡포로 질 낮은 생필품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던 로치데일 직물공장의 노동자 28명이 1년에 1파운드씩 출자금을 모아 점포를 내고 밀가루나 버터 등 필수 식료품을 공동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1인 1표제, 정치·종교의 중립, 이익금의 공평한 분배 등의 원칙은 이후 국제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2017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300만개 협동조합 기업, 12억명가량의 조합원이 있다. 국내엔 약 1만60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자본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협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함께 넘는 공동체 정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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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코피노에 희망을 한국인과 필리핀인의 합성어인 ‘코피노’(코리안+필리피노)는 한국인 아빠를 둔 필리핀 2세를 뜻하는 말이다. 출장 온 직장인, 기업 주재원, 유학생 등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 여성들과 연애하고 아이를 낳은 후 떠나 남겨진 이 아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4만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도 변변한 직장을 구할 길 없어 대부분 극빈층으로 살고 있다. 남들과 다른 외모로 왕따까지 당하며 필리핀의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그동안 양국 정부는 코피노 문제를 ‘꿋꿋이’ 외면해왔다. 이는 ‘자피노’(일본 아빠를 둔 필리핀 2세) 문제 해결에 애써온 일본과 종종 비교돼왔다. 많은 일본 기업과 민간단체들이 이들에게 일본어와 정규교육, 기술교육을 지원했고, 일본과 필리핀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본 정부는 자피노가 손쉽게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했고, 2008년에는 국적법 일부를 개정해 자피노의 일본 국적 취득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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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십니까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 보니 부쩍 노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머지않은 내 문제로 여겨진다. 눈이 침침해지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고, 걷지도 못하게 되면 어쩌지. 자녀들에게 부담 주긴 싫은데 부부가 모두 아프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친구들을 만나도 부모님 안부를 서로 묻다가 자연스럽게 노후 걱정으로 화제가 옮겨간다.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는 기대보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최근 노후와 관련된 몇 가지 뉴스에 유독 눈길이 갔다. 노인돌봄서비스가 내년부터는 개별 노인의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로 개편된다는 것, 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협업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주거정책’ 토론회 개최, 각 지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소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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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인천공항 콩고난민 영화 <터미널>은 여행 도중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 뉴욕 국제공항에서 9개월간 갇혀 지낸 남성이 주인공이다. 가상의 국가 크로코지아가 유령국가가 되는 바람에 고국으로도, 뉴욕으로도 갈 수 없는 이른바 ‘공항난민’을 다뤘다. 영화 모티브는 반정부 시위로 추방당한 이란인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간 지낸 실화에서 얻었다고 한다. 영화 개봉 후엔 ‘영화 터미널 현실판’ 등의 기사 제목이 이따금 외신에 오르내릴 만큼 비슷한 실제 사연들도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문이 열리며 ‘한국판 영화 터미널’로도 일컬어졌던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6명이 공항에서 나왔다. 40대 부부와 6~9세 4명의 자녀들은 이날 한국에 도착한 지 287일 만에 임시 입국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말 콩고 출신을 박해하는 앙골라로 돌아갈 수 없다며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지만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명백히 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하고,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난민인정 심사를 받게 해달라는 소송에서 1심 패소 후 항소심에서 승소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머물 수 있는 문을 가까스로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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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스웨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북·미 실무협상 개최지로 관심을 모았던 스웨덴이 최근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왕실 스스로 파격적인 ‘특권 내려놓기’를 발표하면서다.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은 지난 7일 왕실 성명을 통해 칼 필립 왕자의 두 아들과 마들렌 공주의 세 자녀에게 왕족으로서 받게 되는 직함과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섯 손주는 ‘왕족’ 관련 직함을 쓸 수 없고, 왕가 일원에 지급되던 급여도 받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스웨덴 지도층의 추상같은 도덕적 잣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46년부터 1969년까지 23년을 집권하며 스웨덴 복지국가의 틀을 완성해 ‘국부’로 추앙받는 타게 에를란데르는 총리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68살에 돌아갈 집 한 채가 없었다. 정부에서 월세를 내주던 좁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민당 동료 정치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집을 선물해준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전임자 페르 알빈 한손 총리의 최후도 믿을 수 없을 정도다. 1946년 10월, 동료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여느 때처럼’ 수행원 한 명 없이 전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새벽 2시 반 전철 플랫폼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1995년 스웨덴은 이른바 ‘토블론 스캔들’로 시끄러웠다.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발해 당시 38살의 부총리이자 강력한 총리 후보였던 모나 살린이 업무용 카드로 토블론 초콜릿을 샀던 일이 보도되면서 결국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사건이다. 초콜릿과 기저귀 같은 생필품을 4회에 걸쳐 구입한 액수는 2000크로나(약 34만원)였다. 2006년 문화부 장관 세실리아 스테고 실로는 텔레비전 수신료를 장기간 체납하고, 보모를 고용하며 합당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명 열흘 만에, 통상장관 마리아 보렐리우스는 보모와 가정부 고용세 탈루 혐의로 임명 8일 만에 장관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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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생활임금 1994년 미국 볼티모어에선 기업이 시와 대규모 계약을 맺으려면 노동자에게 시간당 6.10달러의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4.25달러였다. 이른바 세계 최초의 ‘생활임금 조례’였다. 생활임금은 물가인상률과 주거·교육·교통·문화·의료비 등 가계생활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비를 보장해 주는 사회적 임금이다.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생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자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생활임금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볼티모어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조례가 통과되며 임금이 거의 50%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 노동조건 향상과 노동조합 강화에도 힘을 실었다. 생활임금 요구운동은 최저임금 인상논쟁으로도 이어졌고, 다른 도시, 나라로도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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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학원 일요 휴무제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다. 하루 12시간에서, 10시간, 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창립총회의 1호 협약도 하루 8시간 노동제였다. 국내에서도 주 5일 근무제가 2011년 전 업종으로 확산됐으며, 대형마트 격주 휴무제, 주 52시간 노동이 도입됐다. 삶의 무게중심은 장시간 노동에서 웰빙과 건강,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열외인 집단이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다. 2017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 따르면 일요일에도 학원에 ‘출근’하는 중·고교생이 35%나 된다. 1년 내내 ‘월화수목금금금’의 학습노동에 시달린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36점으로 조사 대상 72개국 중 71위였다. 2017년 OECD ‘학생 웰빙 보고서’를 보면 공부시간이 주당 60시간을 넘는다고 답한 한국 학생이 23.2%로 OECD 평균(13.3%)의 두 배에 이른다. 서울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6시간6분(서울 청소년 건강생활변화)으로, 2016년 OECD 회원국 수면시간 조사에서 7시간41분(평균 8시간22분)으로 꼴찌인 성인들보다도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