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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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교육개혁’이라는 ‘거짓말’ ‘조국 사태’가 느닷없이 쏘아올린 불씨 중 하나는 ‘교육개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제도 재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교육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기세다. 맥 빠지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큰 기대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4개국의 입시전형을 분석한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제도 연구> 보고서를 보면 주요 대입 전형요소는 몇 가지로 모아졌다. 국가수준 대입시험과 고교 내신, 대학별 고사, 비교과 활동 등 4가지를 혼합하는 방식이다. 어떤 요소들을 택해 어떤 비율로 사용하는지, 대입시험의 성격이 선발인지, 고교 졸업 자격시험인지, 몇 번의 기회가 있는지, 내신이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 등 세부 차이만 있을 뿐 하늘 아래 뚝 떨어진 새로운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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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실제화된 드론 공격 원격조종으로 움직이는 무인비행체를 뜻하는 ‘드론(Drone)’은 비행할 때 벌의 윙윙거리는 소리(drone)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920년대 군사 분야에서 시작된 드론은 인간생활 전 영역으로 활용도를 넓혀가고 있다. 아마존의 ‘프라임 에어’ 같은 드론 택배서비스는 유통업의 지도를 바꿀 전망이고, 제조업과 농업, 일기예보는 물론 지진 현장에서 인명구조와 수색, 화재 진화나 자연생태계 보호에도 드론이 활용되고 있다. 영화 <엑시트>에서는 대규모 드론이 고립된 주인공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역할을 했다. ‘착한 드론’의 무궁무진한 활용도로, 머잖은 장래엔 개개인이 휴대전화처럼 드론을 소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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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장손 올해 5번째 1000만 관객 돌파 여부가 관심일 만큼 흥행 중인 재난영화 <엑시트>의 주인공은 청년백수 용남이다. 용남 엄마의 칠순 잔치가 배경인데, 큰누나는 장손(長孫)이 취업 못한 백수라고 집안 어른들께 얘기해야 하는 상황을 답답해한다. 결혼한 누나들이 있지만 막내아들 용남이가 장손으로 나온다. 재난상황에서 가족을 구해 내는 백수의 반전 활약상이 인기 포인트다. 2년 전 개봉한 한국 영화 <부라더>에도 장손이 나온다. “난 꿈이 고아였어”라고 말할 만큼 종갓집 장손이라는 짐이 싫어 가출했던 주인공이 아버지 장례식에 집에 오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영화 내내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종갓집 풍경이 연출된다. 장손이라고 말하면 이처럼 으레 대가족 속 남성이 떠오른다. 그런데 장손을 사전에서 찾으면 ‘한집안에서 맏이가 되는 후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성별의 의미는 특별히 담겨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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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성의 출산의무’ 2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여성의 출산 의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이 튀어나왔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큰 문제는 출산을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자처럼 정말 훌륭한 분이 그걸 갖췄으면 100점짜리 후보자라 생각한다. 정말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고 말했다. 출산을 여성의 국가적 의무로 몰아간 것이다. 이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의 자질,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자리인데, 결혼이나 출산문제는 전혀 관련이 없다. 후보자가 남자라도 이런 발언이 나왔겠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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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플랫폼 노동과 디지털 사회보장 ‘지금까지 이런 직업은 없었다. 이들은 자영업자인가, 노동자인가.’ ‘플랫폼 노동’을 생각하면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가 이렇게 치환된다. 기존 노동 문법이 해체되고 있는 전환기에 등장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야말로 말 그대로 ‘극한직업’일지 모른다. 플랫폼 노동.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나타난 앱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등장한 새로운 고용과 노동 형태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을 통한 음식배달이나 ‘타다’ ‘쿠팡 플렉스’ 등 대리운전, 배달서비스 등은 최근 들어 확산되고 있는 온·오프 유통채널이다.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는 전체 취업자의 약 2%에 해당하는 53만명가량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한다. 노동전문가들은 이는 해외와 비슷한 규모로, 국내 IT나 물류유통 산업의 규모로 볼 때 실제 국내에는 훨씬 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노동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업은 성장하는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이 개인사업자 계약을 체결하다 보니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고, 산재보험·고용보험 등 안전망에서도 비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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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고용허가제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세요.” 2년 전 이맘때 한국의 부품 제조 공장에서 하루 2교대로 1년7개월을 일하며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27세 네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이주노동자 단체가 그가 남긴 유서를 한국말로 번역해 공개하면서 죽음이 알려졌다. 게시글 제목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다”였다. 2004년 8월17일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소위 3D 국내 사업장에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해 준 제도다. 중소제조업과 건설업, 일부 서비스업, 어업, 농축산업 등 5개 업종에 한해 양해각서를 맺은 16개국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외국인력을 ‘초청’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들(대졸 이상 74.5%)로, ‘코리안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업장을 옮길 자유가 없다. 폐업이나 반복적인 임금체불 등의 경우에만 아주 예외적으로 이동이 허용되지만, 이때도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최대 이동 횟수도 3회뿐이다. 불안한 상황을 악용한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불법이 발생해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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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네거티브 유산 몇 년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에서 독일 청년 3명의 여행기가 전파를 탔다. 이들이 스스로 정한 행선지 중 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였다. 이들이 전한 생생한 느낌과 한국 역사에 대한 공감, 독일의 역사교육 이야기는 꽤 신선했고, 호평이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대문형무소는 우리에게 수난과 치욕, 부정적인 기억의 장소다. 이른바 ‘네거티브 유산’이다. 근래 들어선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9·11테러 발생지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이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이다. 우리 사회에선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며 ‘네거티브 유산 논란’이 불붙었다. 최근엔 사안에 따라 보존 여부와 방식을 신중하게 찾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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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엄마부대와 아베 엄마. 극한 슬픔이나 위기, 기쁨의 순간 부르는 이름이다. 만들어진 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에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힘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엄마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자칭 애국보수 시민단체 ‘엄마부대’는 2013년 발족 이후 여러 모습으로 활동해왔다.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굵직한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어버이연합’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 활동했다. 이 단체 주옥순 대표는 2016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했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18년에는 허위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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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기억투쟁’ 경향신문은 지난 3월 <피해 할머니 없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시대 온다>는 기획보도를 실었다. “얼마 안 가 피해자 없는 시대를 맞이할 텐데, 그때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실상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확산시킨 것은 당사자 할머니들과 이를 응원한 시민들이었다. 1990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결성으로 문제 해결 노력의 싹이 텄고,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전 세계적인 여성인권문제, 전시 성폭력 문제로 부각됐다. 이듬해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2015년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며 덜컥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합의에 따라 졸속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피해 할머니들을 돈으로 꾀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재단 해산으로 겨우 원점으로 돌렸지만, 이로 인해 한·일관계는 더욱 꼬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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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숙의 내일 사회는 남녀의 날개로 난다 라테파파.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며 육아하는 아빠를 뜻하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몇 년간 급속히 확산된 유행어로 꼽힐 만하다. 지난달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북유럽 순방 직전, 그리고 순방 일정에서 라테파파들을 만나는 장면이 보도되며 다시 한번 ‘라테파파들’이 조명받았다. 재원 다각화 등 아빠 육아휴직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니 참 반갑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4월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저출산의 스웨덴식 해법을 5회에 걸친 기획기사로 실었다. 취재는 필자가 맡았다. 우연한 기회에 스웨덴에서 1년을 생활하면서, 어디서나 마주치는 육아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공원, 카페, 도서관, 거리, 마트 등에서 아이들과 함께 출퇴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의 모습에 반했다. 당시 기사를 요약하면, 스웨덴도 한두 세대 전엔 한국과 비슷한 가부장적 사회였지만, 사회의 방향을 바꾸려 결심하고 철저한 계획과 의지로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평등 사회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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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숙의 내일 버스 문제 해결 없인 ‘민생’ 말할 자격 없다 “엄마, 내일 버스파업 정말 한대요? 마을버스는 다녀요?” 일주일 전 이 시간, 고등학생인 작은아이는 전철역에서 먼 학교 행사장소에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계속 물어봤다. 버스파업이 예고된 전국 각지의 많은 시민들이 밤늦게까지 다음날 출근 걱정을 하며 잠들었다. 버스파업의 직격탄은 교통약자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이들,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에 살거나 승용차나 택시를 탈 수 없는 학생, 노인, 저소득층 등이 교통약자들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5%가 경제적, 신체적 교통약자들이라고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의 연설로 유명해진 6411번 녹색버스의 새벽 시간 노동자들에게도 한참을 힘들게 걸어나가야 하는 지하철보다 시내 구석구석을 모세혈관처럼 연결해 주는 버스가 든든한 발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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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숙의 내일 좋은 일자리는 좋은 노조가 만든다 좋은 일자리. 사회 전체의 화두다. 국가, 가정, 개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자리는 우리 사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아침마다 전국사회부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기사보고들에도 수식어만 바뀔 뿐 며칠 걸러 거의 빠짐없이 일자리 관련 대책들이 등장한다. 일자리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광주다.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계의 ‘인기 브랜드’다. 정부가 상반기 중 2곳을 더 선정한다고 하자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뜨겁다. ‘상생형 일자리’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금을 낮추는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초유의 노사정 상생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상생의 한 축엔 노조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없다. 부재를 넘어 민주노총은 아예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 돌입까지 선언한 상태다. 며칠 전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추진했다는 이유로 광주공장 전임 지회장 2명에 대한 제명을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