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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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당신의 목소리가 문득 들렸어 국가가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통치 체제의 기본이다. 전제군주국이던 조선에서도 지식인 관료들은 ‘상소’로 공론에 참여했고, 백성들은 왕의 행차 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할 ‘격쟁(擊錚)’의 기회를 가졌다. 민주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와중에도 모든 목소리가 평등하게 퍼지지는 않는다. 이 사회의 청력을 시험하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미세한 잡음처럼 흔들리며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다. 지난 2월 마지막 주에는 우연찮게도 세 번의 의미심장한 격쟁이 한꺼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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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등대를 켜는 용기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공직자는 아마도 2000년 전 로마 속주였던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일 것이다. 예수를 참소했던 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지만,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재판을 굽게 한 빌라도의 책임은 그가 대야의 물에 손을 씻어도 씻어지지 않았다. 법원이 내란으로 규정한 12·3 비상계엄 선포 상황에서 당시 고위 공직자들의 행동이 줄줄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뜨거운 법감정이 아니라 피고인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재구성과 증거, 복잡한 법리들이 적용되는 재판에는 이런 불행한 순간에 적극 가담한 행동과 소극적으로 추종한 행동,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날지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운 여러 모호함들이 깔려 있다. 앞으로의 판결들도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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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사람이어서 현대 관리학에서는 생산성, 효율성, 수율 등을 강조한다. 비슷한 말들이다. 동일한 노동 투입에 더 나은 결과물. 회사 상황에 따른 고용의 탄력적 변화라는 의미의 유연성도 있다. 전부 관리자의 관점이다. 와중에 놀랍게도 행복이 꼽히기도 한다. 비록 결국엔 생산성을 위한 행복이지만. 이 겨울, 한국 사회는 현대 노동의 기저에 깔린 어떤 결핍을 목도하고 있다. 바로 ‘신뢰’다. 조직은 노동자를 신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추상적인 규범론이 아니라 그 대답에 따라 노동의 통제 방식,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달라지는 실천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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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작고 작은 이 세상 11월 마지막 주말의 제주는 화창했다. 전날까지 비가 오다 갠 오후의 섬은 황금빛 특유의 따뜻한 색조로 가득했다. 공항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가면 나오는 작은 포구인 종달리에 위치한 ‘해녀의 부엌’에 도착했을 때는 바다가 이미 검푸름해졌다. 둘러앉은 이들 앞에서 8세 때부터 물질을 시작해 80세까지 바다에 들어갔다는 88세의 해녀 할머니가 주름 가득한 얼굴로 꺼낸 화두는 4·3이었다. 세계사의 교차로에서 이념이 대립하는 가운데 그저 물질하며 살던 어느 작은 마을의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들이닥친 학살의 순간에 대한 미시적 기억이 덤덤하게 풀어져 나왔다. 겨울 바다에도 입고, 임신하고도 입고 들어갔다는, 천으로 된 작고 얇은 해녀복은 생존 이후 그의 삶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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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의 새벽은 분주하다. 지난 두어 주 공론장을 강타한 쿠팡 새벽배송 논쟁은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질주하는 시장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냈다. 하나의 사업 모델로 출발한 새벽배송은 한국 사회의 노동권, 노동자들의 분화, 건강과 소득, 규제와 자유, 소비의 필요와 윤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웠다. 사실 새벽은 그 이전에도 국가적으로, 산업적으로, 종교적으로 전략적인 시간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朝鮮)’의 후예들에게 새벽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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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사법부를 생각하다 사법부는 이념적으로는 자유와 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 불리지만, 역사는 권력에 굴종했던 법관과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틈바구니에서 사법부는 실제 자유와 인권의 최종 수호자였는가, 아니면 단지 국법 절차의 최종 국면에 불과했는가. 사법부는 혹 스스로 권력이 되려 하지는 않았는가.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용기 있는 공직자인가, 신분 보장의 뒤에 숨어 안주하는 공무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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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출근길의 풍경 매일 아침이면 많은 시민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길을 나선다. 이 길의 모습 속에는 한 사회의 구조와 구성원들의 신뢰, 공적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들이 녹아 있다. 줌렌즈로 풍경을 담듯 출근길을 들여다보면 이 사회의 복잡다단한 풍경이 펼쳐진다. 편향되긴 하지만 일단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통계를 보자. 2024년 서울시의 추정에 따르면 평일 하루 수도권을 오가는 인구 이동은 7135만건이고,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간은 평균 71분,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출근하는 시간도 평균 59.4분이 걸린다. 도로는 막히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짐짝이 된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이들은 최소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낙을 누릴 수는 있지만, 다른 수단에 비해 정신적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반대로 버스와 지하철로 출근하는 이들은 운전의 피로감 대신 몸들이 부대끼는 과정에서 밀려오는 불쾌감과 피로를 감내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은 모습을 바꾼 ‘오늘의 운세’다. 갑자기 접촉사고나 싱크홀이 발생하거나, 눈·비·작동 오류로 도로가 막히고 지하철이 연착된다는 방송이 들려올 때면 현실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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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도서관 예찬 최근 개관한 동네 도서관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공간의 개방성과 접근성을 중시한 건축 철학 덕에,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미래 세계의 가상공간처럼 넉넉하고, 세련되고, 조용하고, 부드럽다. 방학을 맞은 아이와 부모들에게는 휴양지나 다름없다. 오전 9시에 개관하는 동네 도서관은 미리 가 있어야 개인 좌석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선뜻 구입해서 읽기 부담스러운 전문서적들, 사진이 가득한 두꺼운 기록집들, 다양한 관점의 시사잡지들, 그리고 성인에게도 감동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사악한 괴물을 피해 들어온 숲속의 통나무집 같은 기분이 든다. 벽난로 앞에는 ‘민주주의’라는 요정과 ‘지적 자유’라는 난쟁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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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민의 슬픔과 싸우지 않는 나라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다양한 소송을 한다. 범죄, 조세, 경제규제 같은 영역에서 공공성을 침해하는 민간 행위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승률은 국가의 질서 유지 능력을 표상한다. 하지만 그 유능함은 때로는 과거의 국가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발휘된다. 가해 사실을 일단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음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입증 책임을 다투고, 기계적 항소를 거듭하면서 일그러진 소송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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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어느 시민단체의 20년 지난주 금요일, 한 자그만 시민단체가 서울 종로의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설립 2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시민단체가 20년을 버텨왔다면 아마도 거기에는 공익에 뜻을 둔 사회적 명망가가 설립자로 있고, 지금쯤이면 조직 규모나 예산도 안정적일 것이라 상상할지 모른다. 이 단체의 상근자는 20년 전에도 지금도 다섯 명이다. 창 없는 좁은 사무실 공간을, 자신들과 유사한 작은 단체들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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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여름이 오고 있다 2022년 8월11일을 돌아본다. 망설이는 마음을 뒤로하고 오후 8시경 어두운 정장 차림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을 위해 홀로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다가 폭우로 밀려들어온 빗물에 방이 순식간에 잠겨 도시 한복판에서 황망하게 사망한 가족의 장례식이었다. 세 명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던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조화와 노조 조끼를 입은 조문객들이 이 죽음의 맥락을 말해주고 있었다. 봉투에 ‘시민’이라고 적고 헌화한 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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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소소한 존재들의 헌법 지난겨울 한국 사회는 속성으로 헌법을 공부했다. 헌법의 귀퉁이 난제들에 골몰했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생중계를 강의처럼 지켜보았다. 여름마다 장마가 오듯 상처받은 헌법은 이제 개헌론에 직면하고 있다. 헌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할지, 4년 중임으로 할지를 규정한 법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누가 임명할지 규정한 법인가? 개헌론은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