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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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제도의 해커들 해커란 보통 컴퓨터 시스템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시스템에 침입, 정보를 빼내거나 시스템의 작동을 저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해킹은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프로그래밍 기술, 그리고 고의가 결합한 전문적 행위다. 법체계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조문 하나하나는 프로그램의 코드들이고, 이 코드들은 논리적으로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아우르는 포괄성, 의미의 명확성, 그리고 다른 코드(조문)들과 논리적으로 일치하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조문이 미비하거나, 모호하거나, 다른 조문과 충돌할 경우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듯이 그 법에 의존해 작동하는 국가 제도도 오류를 일으킨다. 법원이 처리하는 수많은 소송들 가운데 법리 다툼이 있는 소송은 바로 그 오류를 제거해 나가는 사회적 디버깅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은 가장 상위의 디버깅 작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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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분립, 독립, 민주주의 3개월째 이어지는 계엄과 탄핵 시국은 시민들이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권 구성 원리인 삼권 분립, 그리고 작고 강한 독립 기구의 의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삼권 분립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분업의 원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을 쪼개고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원리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해결 요구가 강해지면 권력의 비효율적 작동을 의도하는 삼권 분립은 늘 흔들렸다. 동시에 삼권 분립은 아이러니하게 대중에 대한 불신에도 기반해 있다. 국가 권력이 한 군데 집중되어 있을 경우 응집력 있는 소수 집단이 등장해 그 전체를 쉽게 장악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계엄 선포권과 해제요구권이 분리되고, 그 위법성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 삼권 분립은 권력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참으로 불편한 원리지만, 그렇기에 시민은 국가의 자의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삼권 분립은 긴장과 역동으로 가득한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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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마음으로 필사하는 사회계약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당시 서구 사회의 변화에 ‘탈신비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술과 마법의 힘에 의존하고, 인간의 이해를 넘는 신비한 영역을 인정하던 시대를 지나, 무엇이든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합리적·과학적 신념이 퍼져나가던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말이었다. 그가 언급한 관료제는 오로지 합리성과 법에 의해 권위를 확보하는, 신비함이 벗겨진 의사결정 기계다. 베버는 어디까지 옳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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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강의 기적, 한강의 위로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막바지, 12월3일 갑작스레 시작된 정치적 재난은 이 땅 모든 이들의 삶을 삼켜버렸다. 겨눠진 총구는 다양한 사람들의 용기 덕분에 몇 시간 만에 내려졌지만, 법으로 무장한 이들의 법구(法口)에서는 여전히 상식을 초월한 논리들이 난사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박히고 있다. 시민들은 광장의 응원봉, 2030 여성의 부상, ‘남태령 대첩’ 등을 말하며 희망을 더듬고 있지만, 광장에 모인 각자의 얼굴과 눈동자에는 지금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한강의 기적’이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대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비쳐 있다. 우리는 일상을 잃었고, 민주주의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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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어느 무연고 시민 장례식 지난 11월14~16일에는 어느 무연고 시민의 장례가 치러졌다. 장애가 있었던 고인이 법적 무연고자인 이유는 그가 유아일 때 유기된 상태로 발견되어 아동시립병원을 거쳐 시설에 들어가 36년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시설에서 나온 후 어느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나, 이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연고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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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말하지 않는다 해서 지난 10월23일 대법원에서는 소매점에 이동식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확보할 의무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시행령을 느슨하게 규정하여 20년 넘게 접근권이 침해되었음을 다투는 소송의 공개변론이 열렸다.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온라인 구매 등 대체수단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한 대법관에게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냐”고 지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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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는 과거 ‘선감도’라 불렸던 지역이 있다. 그곳에는 1942년부터 1982년까지 5000여명의 강제수용된 어린이들에게 강제노동, 학대, 암매장 등이 행해졌던 선감학원이 있었다. 수백명의 아이들은 과거 섬이었던 그곳을 탈출하다가 익사했다. 선감학원의 학대생존자들은 2020년 12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하자마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2022년부터 아이들이 암매장된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시굴이 행해졌으며, 경기도는 지난 8월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희생자들의 작아도 너무 작은 분묘는 185기여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홉 번째 선감학원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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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직 인사와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 중 하나는 정치가 정책을 통해 사회문제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기술관료제가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선출된 권력에 기반한 대의기구와 전문성에 기반한 기술관료제는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국가권력을 분점한다. 기술관료제의 구성요소인 공공조직의 수장인 장관, 위원장, 공공기관장 등의 임명은 대의제와 기술관료제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만큼이나 중요한 민주적 행사다. 수장을 관료제 내부 출신으로 임명하면 ‘관피아’라는 말에서 보듯이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물론 그 내부자가 외부의 정치세력과 긴밀한 인적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적 통제의 약화가 아니라 과잉을 염려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수장을 정치인으로 임명하면 논리상으로는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전문성이 객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데도 정치인을 임명하는 이유는 논공행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민주적 통제를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임명은 현재 한국의 제도와 관행의 기본이면서, 과거부터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같은 비판에 시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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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민동의청원과 민주주의 지난 6월 국회에 올라온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청원과 7월 올라온 그 반대 청원이 언론을 장식한 이후, 대다수 시민들이 존재조차 몰랐을 국회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는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7월의 마지막 날 접속해 본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는 팝업창으로 먼저 방문자를 반겼다.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및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 요청에 관한 청원이 (…) 50,000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다소 무심하게 팝업창을 닫았더니 뒤에 팝업창 하나가 더 숨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심판청구 촉구 결의안에 관한 청원이 2024년 7월22일 10시25분 기준으로 50,000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어 이러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팝업창을 닫았다. 아니나 다를까. 팝업창들을 모두 닫고 난 웹사이트 대문에 ‘동의 진행 중’으로 떠 있는 청원 중 하나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청구 촉구 결의안에 관한 청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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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안전’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용어가 뒤트는 진실은 그것이 ‘사회’인 한 여전히 사람이 가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비자로서만이 아니라 생산자로서의 존엄함도 원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화성시 리튬전지 생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돌아보며 자본주의 사회의 고도화라는 시스템 중심적 사고에 묻힌 생산자로서의 시민을 위한 자리는 어디 있는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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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진정 협치를 원하는가 대한민국 제21대 국회(2020~2024)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겹친 지난 2년간, 대통령에 의한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14번 있었다. 21대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개정되었어야 할 30여건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위헌 상황을 방치한 셈이다. 지난 5일 개원한 제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여당과 야당 간 합의 불발로 인해 야당 단독으로 개최되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미 여당에서 8표만 이탈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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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그 하나의 이름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끝날 때 흐르는 ‘카나타 하루카’(저편 아득히)라는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몇천년 후의 인류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따위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웃는 네가 보고 싶어.” 경세가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가사는 어쩌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대의냐 한 인간이냐라는 프레임은 많은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진다.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은 기계의 침공 앞에서 한 줌 남은 인류를 구할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구할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병사 한 명을 구하다가 해병대 분대원이 전부 전사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무려 5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