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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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다시 만난 세계-‘헬!조선’에서 ‘광장의 파토스’로 지난가을 ‘읽고 쓰기’ 주제 강연중학생들의 살아있는 질문에 감동계엄 후 거리로 쏟아진 1020세대젊은 ‘길벗’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순간 멘붕에 빠졌다. 고등학교라 생각했는데, 강의 며칠 전 중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고딩’이나 ‘중딩’이나 그게 그거 아냐?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쫌! 아는 이들은 즉각 이렇게 반응한다. ‘아휴!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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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양자역학과 마음의 혁명 시공간 지평의 확장 보여주는 ‘줌’이 마법의 바탕에 있는 양자역학동양고전의 오래된 지혜와도 연결마음의 배치·방향을 바꿔야 할 때 직업이 고전평론가다 보니 하는 일이 주로 강의와 세미나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줌이 일상화하면서 시공간의 지평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과도 연결되었다. 시간의 폭도 넓어져서 이른 새벽, 늦은 저녁에도 부담 없이 세미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긴 스마트폰이 등장할 때 이미 예견된 세상이기도 하다. 손바닥 안에 세계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고, 세상 모든 곳과 동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히 원더풀 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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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빚’에 중독된 시대 금융자본의 ‘흑마술’에 걸린 듯계속 불어나는 나랏빚·가계빚 ‘영끌’은 존재 포기 선언일 수도참된 경제는 인간의 영혼 품어야 나랏빚과 가계빚이 3000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조’라는 단위도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거기에 또 3000이 붙으니 흡사 ‘신화적 상징기호’처럼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빚은 도처에 퍼져 있다. 부자는 부자라서 서민은 서민이라서, 청년은 청년대로 중년은 또 중년대로. 결국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물적 토대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뜻인데, 생각만으로도 왠지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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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공자 ‘지천명’·힌두교 ‘아슈라마’BC 5세기 전후에 나온 영적 비전 100세 시대 맞아 담론 넘쳐나지만‘노동과 화폐’ 기준에서 못 벗어나청년과 노년, 서로 비추며 교감을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자립하고(而立), 마흔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不惑). 오십에는 천명을 알고(知天命), 육십에는 귀가 순해지며(耳順), 칠십이 되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欲不踰矩). 주지하듯, 공자가 구현한 생애주기다. 그런가 하면, 이런 생애주기도 있다. 학습기(스승을 찾아 베다의 진리를 배우는 시기), 가주기(결혼과 직업을 통해 사회적 다르마(의무)를 실행하는 시기), 임서기(숲으로 가서 명상과 성찰에 들어가는 시기), 유랑기(천하를 유행하며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 이것은 아슈라마, 곧 인도의 힌두교가 제시하는 생애주기다. 공자와 힌두교 모두 BC 5세기 전후에 등장한 영적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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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백수는 미래다! 내가 40년 전 꿈꾸었던 세 가지경제자립·지적성장·사회적 연결모두 다 원하는 건 배부른 소리? 여전히 ‘뼈빠지게’ 일하는 우리묻자, 노동해방은 어디에 있는지 #1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이 어려웠다. 대기업, 언론사같이 ‘잘나가는’ 직종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책도 읽고 저자들도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출판계를 지망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꽤 규모 있는 출판사에 들어갔다. 경제적 자립은 가능했으나 업무가 너무 지루하고 따분했다. 결국 8개월 만에 ‘때려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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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거짓말’의 정치경제학 우리 시대 가족의 거짓말은 일상특히 ‘돈’ ‘성’에는 솔직하지 않아관계의 일상 복원만이 해결책 정치도 ‘진실 공방의 늪’에 빠져이런 역겨움 국민 건강에 치명적 가족들은 왜 그렇게 비밀이 많을까? 드라마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은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지극히 애틋해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속이고 속인다는 것, 이것이 가족드라마의 기본설정이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잘 갖추고 있으면 ‘주말’드라마, 다소 거칠게 진행되면 ‘일일’드라마다. 진행패턴은 대체로 비슷하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스위트 홈’에 어둠의 그림자가 들이닥치고 각종 비밀들이 폭로되면서 그동안의 행복이 다 가짜였음이 판명된다. 충격과 배신감, 분노와 갈등으로 파국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일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급마무리! 배우들의 비주얼과 탁월한 연출효과 등에 압도되다 보면 이 비극의 배후에 ‘운명의 장난’ 혹은 ‘신의 저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사건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관통하는 건 결국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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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출산율과 독서율의 ‘기묘한’ 평행이론 우리나라의 성인 10명 중 6명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안 읽어독서는 ‘에로스’의 강력한 동기 지금은 먹방·노래, 감각의 시대청년들에게는 가혹한 시절이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가 ‘출산율 저하와 인문학의 위기’였는데, 처음엔 좀 뜨악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건 알겠는데 그게 인문학의 위기랑 어떻게 연결되지? 한데, 토론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묻는 질문에 서방국가 대부분은 ‘가족’을 꼽은 데 반해, 한국은 첫째가 ‘물질적 풍요’였다. ‘인생에서 친구나 공동체적 유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겨우 3%만 응답했고, 세계 최하였다. 직업의 가치를 묻는 항목 역시 마찬가지. 이 자료들을 하나로 엮어보면, 관계나 활동은 됐고, 오직 ‘한방’으로 큰돈을 챙겨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로 정리될 수 있겠다. 대략 감은 잡았지만 막상 수치로 확인을 하니 좀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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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바보야, 문제는 ‘인복’이라니까! ‘청년들의 무기력’ 두드러진 시대가장 큰 원인은 친구가 없다는 것자본은 광고로 ‘홀로이즘’을 전시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생명 없어 고전평론가로 오랫동안 전국 곳곳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시대의 변화상을 다방면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예컨대, 20세기엔 노동자들이 야학을 했지만, 요즘은 CEO들이 새벽에 인문학을 한다. 또 이전엔 남성들이 지식을 독점했지만 요즘 모든 인문학 강연장의 90%는 여성이다. 여성의 뇌는 감성편향이라 이성적 사유는 좀 어렵다고 했던 담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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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가속노화’ 시대의 기묘한 ‘세대공감’ 6080은 관절염에 임플란트2030은 아토피에 대상포진 등같이 늙어가는 이야기에 공감 몸과 마음, 공부 나누는 길벗들같은 듯 다르지만 삶은 똑같아 나는 고전평론가다. ‘고전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 주는 전령사라는 뜻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냥 백수다. 또 사회적인 범주로는 60대 독거노인이다. 좀 처량해 보이지만 나름 ‘명랑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고, 그것도 전 연령에 걸쳐 있다고 한다. 그럼 이렇게 분화된 1인들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까? 이것은 정치경제학을 넘어 인류학적 과제에 속한다. 이런 차원에서 일단 내 주변의 상황부터 추적, 관찰을 시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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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영화 ‘파묘’-전지적 ‘귀신’ 시점 파묘에서 일본 ‘오니’ 퇴치까지영화를 관통하는 건 음양오행론갈망·집착·원한이 ‘귀신’ 만들어 운동·순환, 생성·변화가 자연 이치머무름 없이 모든 것 흐르게 하라 실로 ‘오만년’ 만에 영화관에 갔다. 코로나 이후엔 영화관에 가는 게 영 낯설어진 탓이다. 해서 이번엔 600만명을 통과할 즈음 직관을 감행했다. 눈치챘듯이, <파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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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명심탐구 푸바오에 대한 명랑하고 심오한 탐구 푸바오의 앞 발가락이 여섯 개라숲의 구도자 같은 생존방식을 보며인류가 갈 진화 방향이라 생각했다 물론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이지만그래도, 고맙다~ 푸바오! 다시 봄이다. 하나 마음은 영 심란하기만 하다. 도처가 전쟁에 기후재앙이고, 영끌과 우울증, 몰락과 퇴행의 언어들이 범람하고 있다. 정녕 몰랐다. 포스트 코로나가 이럴 줄은. 그 정도의 전 지구적 재난을 겪었으면 문명의 방향이 바뀔 줄 알았다. 욕망에서 교감으로! 소유에서 자유로! 완전 망상이었다. 그렇다고 새삼 허무에 빠지자니 자존심이 영 허락하질 않는다. 하여,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명랑하게’ 잘 살아보기로. 그것이 대단한 저항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나와 나의 벗들의 울적함을 덜어주는 효과는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