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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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초고령사회 진입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늙음을 화두 삼아 새삼 분주해졌다. 다양한 주제의 행사장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각종 대책과 담론이 쏟아진다. 그런데 정작 늙음, 노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 심지어는 ‘장수의 재앙’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쓰인다. 빈곤, 질병, 고독, 무위(할 일 없음)로 요약되는 노년의 4대 고통. 그래서 흔히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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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지키자, 국민연금 “고객님은 수급권 확인 대상자이오니, 아래 담당자에게 꼭 연락주시어 수급권 확인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국민연금공단에서 온 우편물을 열어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급권 확인 대상자? 왠지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님이 어머님 맞으세요?” “네.” “같이 사는 거 맞으시죠?” “(당연하지) 네.” 담당자는 어머니와 직접 통화하는 걸 원했고, 어머니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또렷이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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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나이 묻지 마세요 “왜들 그리 남의 나이를 궁금해하나 모르겠어.” 어머니께서 잔뜩 기분이 상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제 90대 중반을 지나 100세를 향해 가는 어머니는 어디를 가도 최고령자이고, 가는 곳마다 당신의 나이가 화제가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조금만 친해지면 형님, 동생이고 처음 보는 이에게도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지만 정작 나이 확인은 복잡하다. 음력, 양력 생일이 다르다. 누구는 ‘빠른 ○○년’이라 하고 또 누구는 호적이 잘못됐다고 한다.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입학 시기를 정하고 만 나이 기준을 법으로 도입했지만,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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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느 날 갑자기 여기저기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 블랙핑크 로제가 한국의 술자리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아파트’(APT.)가 국내외 음악 차트를 강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K팝 열풍을 타고 전 세계인들이 “아~파트 아파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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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떡을 돌리다 찹쌀이 생겼다. 지난해 농촌청년공유주택 덕산휴가의 건축비 모금 소셜펀딩에 참여했던 시민건축주 단톡방에서 청년들이 농사지은 쌀 공동구매가 있었다. 벼농사 농기계대금 마련을 위한 공동구매다. 나도 가치소비에 참여해 찹쌀 10㎏을 샀다. 이 쌀로 무얼 할지 아내와 상의한 끝에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기로 했다. 나는 공동체주택에 살고 있다. 10가구가 모여 함께 집을 짓고 이사 오면서 동네 분들 모시고 음식도 대접하고 떡을 돌렸다. 이사 오는 날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우리의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을 걸어주었고 우리는 선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설도 다가오고 그날 생각도 나고 해서 고마운 이웃들께 떡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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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외로운 노인의 위험한 연대 내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은 ‘명랑한 동네 할아버지’다.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호기심과 감수성을 잃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유대 안에서 독립된 개인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대다수 할아버지의 공통점은 웃음은커녕 얼굴에 표정이 없고 말이 없고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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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보통 이 정도 합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이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음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 없이 당장 상(장례)을 치러야 한다. 이때부터 모든 주도권은 전문가(장례지도사)에게 넘어간다. 장례 절차와 의례, 장례식장 및 장사시설 이용, 빈소 설치와 조문 예절에 이르기까지 장례지도사는 일사천리로 안내한다. 상당 부분 이미 패키지화되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뭐가 뭔지 잘 몰라 하는 질문에 장례지도사는 친절함에 전문가의 권위를 담아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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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다문화’라는 그 말 요즘 성남에 자주 간다. 성남. 흔히들 알고 있는 판교, 분당이 아니다. 남한산성 아래, 청계천 철거민의 이주로 시작된 도시. 광주대단지 사건의 아픈 역사,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로 기억되는 그곳이다. 지난 9월부터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중장년 일자리 지원 차원에서 마련된 단기 일자리다. 내가 맡은 일은 은퇴전문인력 멘토와 청소년·청년 멘티 간 멘토링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멘토링 코디네이터다. 그 일로 성남에 간다. 성남의 한 다문화지원기관에서 멘토링을 신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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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아파트공화국, 카페천국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강남의 모 아파트 단지에 마치 학교 교가 같은 느낌의 아파트 찬양 시를 새긴 비석이 알려진 것이다. 우리의 궁궐, 천 년의 보금자리, 이상향, 영원한 파라다이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과거 절대권력에 부역했던 문인들이 떠오른다. 낯뜨거운 표현에 처음엔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그들은 아파트공화국인 이 나라의 시민이기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짓고 살아서 천국을 누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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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빈집은 없다 지인 중에 충북 제천에서 청년들과 함께 사회적농업을 일구고 있는 활동가가 있다. 대안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다가 소멸해가는 지역의 현실을 보고 청년을 맞이하기 위한 활동으로 사회적농업을 시작한 것이다. 많은 청년이 지역에서 도시로 향해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농촌에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농촌은 해외보다 더 멀고 낯선 곳이다. 혼자서 부딪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들이 안전한 공간과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청년이 다녀갔고 적지 않은 청년들은 지역에 자리잡아 살고 있다. 더 이상 떠날 수 없는 자들만 남아 활기를 잃은 지역에 청년들이 들어오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청년들은 지역 사회와 연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지역에 필요한 일’을 찾게 된다. 고령농가 집수리, 건강도우미, 병원 동행, 지역아동센터 봉사, 반찬 배달, 환경 지킴이 등의 지역민 대상 서비스 및 돌봄을 제공한다. 사람 살 만한 곳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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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마지막 집은 어디에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세상에서 과연 나의 ‘마지막 집’은 어디일까? 이 시대 적지 않은 노인들이 ‘집’이 아닌 요양시설에 머물고 계시며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자주거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마지막 집 또한 요양시설이거나 시설 입소조차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그 미래가 원치 않는 모습이라면 아파트만 끝없이 지어 올리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 집에 신경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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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잘 죽을 권리 의료, 요양, 돌봄, 상조.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시대 ‘죽음’은 점점 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도 쉽지 않다. 잘 죽기는 더욱 어렵다. 무병장수 끝에 고통 없는 죽음, 9988234를 꿈꾸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현대의학의 눈에 노화란 없다. 살아 있는 한 치료하고 극복되어야 할 다양한 이름의 질병만이 있을 뿐. 우리의 노년에는 병명과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더해진다. 누구에게나 임종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인식하는 고약하고 오만한 의료시스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리려 든다. 의사에게 환자를 살려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면 환자에게도 잘 죽을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임종 단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렵게 얻어낸 ‘잘 죽을 권리’의 시작이다. 내가 주 1회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대형병원 부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 모습을 통해 다음 3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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