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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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어디서 죽을 것인가 노후 주거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어디서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임종. ‘사망하기 직전’ 혹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의미하며,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녀가 곁에서 지켜보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오늘날 의료와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임종 과정은 상상하기 힘들다. 의료 기술의 발전, 병원과 시설 중심의 돌봄체계, 공동체 약화, 시장 논리, 죽음 회피라는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결과다. 특히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죽음조차 관리·치료·연명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임종 과정이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가 아닌 ‘의료적 사건’이 된 것이다. 이제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분리되어 병원·요양시설 등 전문 공간에서 상품과 서비스로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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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지팡이 짚고 가는 동네 사랑방 1929년생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짧은 거리는 걸을 수 있고 인지능력도 좋지만,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힘들다. 활기찬 노년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과 달리, 집 근처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지루함과 무력감을 느끼신다. 차선책으로 데이케어센터의 문을 두드렸지만 ‘장기요양등급’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어머니처럼 공적 돌봄 서비스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온전히 혼자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위 노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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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이 들어 살고 싶은 ‘집’ 노년의 삶은 주거·건강·경제력·사회적 관계와 활동 등 다양한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모든 조건을 넘어 중요한 것이 익숙한 공간과 사회관계망 안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욕망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다. 말하자면, 노년의 존엄한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간과 관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최근 노후 주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실버타운과 요양원이라는 양극화에서 벗어나 중산층도 이용할 수 있는 노인주거 유형의 다양화와 공급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의 노인주택과 요양시설은 아프고, 외롭고, 더는 일상생활을 감당하기 힘든 노인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곳이니 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거주하며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계속 거주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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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다. 2025년 한국의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과 1기 신도시인 고양시 일산 이야기다. 두 도시 모두 초고령사회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 풍경은 자못 대조적이다. 우연한 기회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돌아보았다. 유튜브에서 “우리 아파트에 살면 실버타운 갈 필요 없다”고 자랑하던 어느 재건축 조합장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직접 가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여느 실버타운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홍보문이 여러 장 붙어 있다. 20% 남짓 낮은 건폐율로 널찍하게 확보한 지상부는 근사한 조경으로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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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텃밭에서 배우는 공동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공동체의 허상을 좇는 사람도 많다.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 ‘나눔과 배려’ 같은 그럴듯한 말의 뒤에 개인적 욕망을 감춘 이들. 말은 ‘우리’를 향하지만, 속내는 ‘나’를 향한 것이다. 사실은 자신이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공동체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가끔은 그럴듯한 자기 말에 스스로 취해 있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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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초고령사회 진입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늙음을 화두 삼아 새삼 분주해졌다. 다양한 주제의 행사장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각종 대책과 담론이 쏟아진다. 그런데 정작 늙음, 노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 심지어는 ‘장수의 재앙’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쓰인다. 빈곤, 질병, 고독, 무위(할 일 없음)로 요약되는 노년의 4대 고통. 그래서 흔히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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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지키자, 국민연금 “고객님은 수급권 확인 대상자이오니, 아래 담당자에게 꼭 연락주시어 수급권 확인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국민연금공단에서 온 우편물을 열어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급권 확인 대상자? 왠지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님이 어머님 맞으세요?” “네.” “같이 사는 거 맞으시죠?” “(당연하지) 네.” 담당자는 어머니와 직접 통화하는 걸 원했고, 어머니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또렷이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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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나이 묻지 마세요 “왜들 그리 남의 나이를 궁금해하나 모르겠어.” 어머니께서 잔뜩 기분이 상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제 90대 중반을 지나 100세를 향해 가는 어머니는 어디를 가도 최고령자이고, 가는 곳마다 당신의 나이가 화제가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조금만 친해지면 형님, 동생이고 처음 보는 이에게도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지만 정작 나이 확인은 복잡하다. 음력, 양력 생일이 다르다. 누구는 ‘빠른 ○○년’이라 하고 또 누구는 호적이 잘못됐다고 한다.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입학 시기를 정하고 만 나이 기준을 법으로 도입했지만,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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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느 날 갑자기 여기저기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 블랙핑크 로제가 한국의 술자리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아파트’(APT.)가 국내외 음악 차트를 강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K팝 열풍을 타고 전 세계인들이 “아~파트 아파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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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떡을 돌리다 찹쌀이 생겼다. 지난해 농촌청년공유주택 덕산휴가의 건축비 모금 소셜펀딩에 참여했던 시민건축주 단톡방에서 청년들이 농사지은 쌀 공동구매가 있었다. 벼농사 농기계대금 마련을 위한 공동구매다. 나도 가치소비에 참여해 찹쌀 10㎏을 샀다. 이 쌀로 무얼 할지 아내와 상의한 끝에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기로 했다. 나는 공동체주택에 살고 있다. 10가구가 모여 함께 집을 짓고 이사 오면서 동네 분들 모시고 음식도 대접하고 떡을 돌렸다. 이사 오는 날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우리의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을 걸어주었고 우리는 선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설도 다가오고 그날 생각도 나고 해서 고마운 이웃들께 떡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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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외로운 노인의 위험한 연대 내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은 ‘명랑한 동네 할아버지’다.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호기심과 감수성을 잃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유대 안에서 독립된 개인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대다수 할아버지의 공통점은 웃음은커녕 얼굴에 표정이 없고 말이 없고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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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보통 이 정도 합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이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음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 없이 당장 상(장례)을 치러야 한다. 이때부터 모든 주도권은 전문가(장례지도사)에게 넘어간다. 장례 절차와 의례, 장례식장 및 장사시설 이용, 빈소 설치와 조문 예절에 이르기까지 장례지도사는 일사천리로 안내한다. 상당 부분 이미 패키지화되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뭐가 뭔지 잘 몰라 하는 질문에 장례지도사는 친절함에 전문가의 권위를 담아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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