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솔
작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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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김치밥을 지으며 시니어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데이케어센터에 도착하니 책상만 있고 의자가 없었다. “다들 어디 앉으시죠?” 하고 물으려던 찰나 손님들이 도착했다.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의자에 앉은 채로 그들이 왔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니라 바퀴가 온 것이다. 휠체어 열넷이 책상을 빙 두르니 강의실이 꽉 찼다. 보호사까지 합치면 스물이 훌쩍 넘었다. 그들은 시니어 중에서도 데이케어센터로 직접 걸어올 수 없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떨거나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 온 것인지 모르는 듯했다. 나는 요양보호사 한 분을 붙잡고 물었다. “다들 한글을 쓸 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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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로봇을 일으킨 사람들 광화문광장 한가운데서 로봇이 춤을 추고 있다.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이 프로모션을 위해 이곳에서 춤춘 것이다. 키 130㎝에 이족보행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40여개의 관절을 이용해 능숙한 춤꾼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의 얼굴에 감탄과 두려움이 서린다. 너무 사람처럼 움직여서다. 광장에는 연일 무더위가 이어졌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신명 나게 춤을 추던 로봇이 별안간 멈추고 쓰러진 것도 그때다. 놀라움에 관중이 웅성이던 그때 로봇에 다가간 것은 다름 아닌 홈플러스 노조원들이다. 마찬가지로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그들은 가지고 있던 얼음물과 쿨패치를 한 아름 안고 달려왔다. 광장에서 춤을 추다 가지런히 쓰러진 로봇의 머리와 가슴, 팔과 다리에 쿨패치를 붙였다. 놀랍게도 얼마 후 로봇은 기운을 차렸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홈플러스 노조의 4차 무기한 단식농성 49일 차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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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침에 일어나는 일 느닷없이 아침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기지개 모임. 아침에 눈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줌으로 모여서 기지개를 켜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임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거의 내용 없음에 가깝다. 이 공기 같은 모임을 누가 연다는 사실과 누군가 참여한다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 있다. 아침이 내 전매특허도 아니고 누구든 마음먹으면 일어나 할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백하지만 이 모임은 누구보다 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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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무 이유 없이 바티칸(Holy see) 파빌리온은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관람한 전시 중 단연 가장 인상적이었다. 교황청의 권한으로 아주 특별한 곳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바로 베네치아에 있는 여성 교도소였다. 이를 기념하듯 교황이 직접 베네치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관람객은 까다로운 사전 예약과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야 입장할 수 있었고, 전시를 안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감인이었다. 교도소 안에는 일과를 보내는 수감인들이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고, 관람객은 그들 사이를 지나며 그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과 주인공으로 출연한 독립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이었다. 이후 일행들과 어떤 이를 작품으로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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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너무 현실적인 사람들 얼마 전 한 비영리단체의 상근자 채용에 지원했다. 평일 오전에만 근무하는 조건이어서 작가 일을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급여는 최저시급이고 오전만 근무하긴 하지만 사실상 하루 종일 해야 할 핵심 업무들을 오전에 집중적으로 끝내는 데 가깝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에 관해 묻자, 면접관은 방대한 업무 설명(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거죠)과 함께 지원자가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업무 영역을 넓혀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나는 면접에서 나오자마자 월 급여를 계산해보았다. 80만원이 안 됐다. 이곳이 비영리단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선 내 삶에 비영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급여로 어떻게 업무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인지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지원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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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희망의 봄 엄마는 독일 숙소의 창문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훌륭하군!” 지은 지 100년도 더 된 건물의 창문이 얼마나 그 만듦새가 좋은지 열고 닫기도 쉽고 아귀가 딱 맞아서 닫으면 바깥에서 절대 열 수 없어 그 원리가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엄마는 주먹으로 벽을 콩콩 두드렸다. “벽도 아주 두꺼운 게, 폭탄이라도 터뜨리지 않으면 부수기도 어렵겠어!” 그리고 외쳤다. “독일, 이 똑똑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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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폐허를 상상하며 내가 베를린에서 두 달 살이를 하게 된 계기는 짐짓 터무니없는데, 일도 아니요 사랑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거기 사는 친구가 집을 바꾸자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소식을 가장 반긴 것은 내가 사는 충북 산골 마을의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뻐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덩달아 비행기표를 끊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내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산골 여자들을 만류한 일이다. “당장 비행기표 취소해.” 전에 없이 치솟고 있는 환율과 없던 우울도 생길 듯한 날씨, 오후 세 시면 떨어지는 해 이후로 어둠에 삼켜진 거리는 유럽인지 시골인지 분간도 어려웠다. 그나마 한국보다 덜 추운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연일 ‘16년 만에 최고 한파’라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농한기를 틈타 다년간 모아온 저금을 깨고 비행기표를 끊은 그들 중에는 난생처음 유럽 땅을 밟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말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강경했는데, 저가 항공권 때문이었다. “취소 수수료가 더 비싸.” 그 순간부터 분주히 대안을 모색했다. 그저 이 겨울의 독일보다 나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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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주 멀리 있는 집 엄마에게 만 명이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이제 이건 엄마와 나만의 일이 아닌 거야.” 환갑 넘은 엄마가 난생처음 유럽행 비행기에 혼자 오른다는 글이 이렇게나 관심받을 줄은 몰랐다. 지난해 11월 기고한 ‘엄마 유럽 여행 안내서’(경향신문 11월27일자 27면)는 100만명이 읽고 1만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손에 땀이 난다’, ‘왠지 눈물이 난다’ 등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혼자 떠난 엄마가 우리 엄마뿐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먼저 여정을 떠난 수많은 어머니들 사연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귀한 정보는 65세 이상 어르신이 항공사를 이용할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항공사가 65세 이상 탑승자와 이동이 불편한 이용자를 우선 배려하며 사전에 신청하면 공항 내 이동부터 탑승, 착륙까지 모두 도와주는 탑승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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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열쇠를 잃어버린다면 유럽에 오면 열쇠는 순식간에 중요한 것이 된다. “절대 잃어버려선 안 돼.” 손에 묵직한 쇳덩이가 떨어진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촉이다. 한 친구는 진지하게 조언했다. 미리 복사해 두는 게 나을 거야. 잃어버리면 끝장이니까. 너무 걱정됐던 나머지 한국에서 거대한 인형 키링을 가져왔다. 키 꾸러미에 달아두니 어디 놔두어도 존재감이 있었다. 한국은 열쇠가 없어진 지 오래다. 어릴 적에 키를 두고 나와서 엄마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린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대부분 번호 키를 사용하며, 그마저도 지문이나 얼굴 인식으로 대체되어 가는 추세다. 모든 것은 간소화되어 집 밖에 나갈 땐 휴대폰만 챙기면 된다. 이곳에서 그랬다간 돌아올 집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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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엄마 유럽 여행안내서 내가 독일에 있는 친구와 몇달간 집을 바꾼다고 했을 때 가장 눈을 빛낸 것은 엄마다. “유럽…” 엄마는 맛있는 거라도 상상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로 엄마는 육십이 넘도록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태국도 가고 대만도 가고 일본도 다녀왔지만 외국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외국은 ‘유럽’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어.” 엄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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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글방이 쏘아올린 작은 공 올 한 해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14명의 책을 준비한 일이다. 나는 금방 알았다. 내 책을 준비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남의 책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직업은 글방지기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글방이라는 곳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떤 마을의 작고 신비로운 우물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것으로 밥을 사 먹고 월세를 내고 있으니 직업도 맞다. 대부분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직군일 텐데, 그저 그게 내 천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내 직업을 작가라고 알고 있겠지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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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임 인 노웨어 엄마가 사는 시골에 무심코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 사세요?” 그때마다 시골에 살고 있다고 답하면 도시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에 없었다고요?” 시골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 산다고요?” 도시 사람들은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시골 사람들에게는 섭섭함을 느낀다. 벌써 이 동네에 산 지가 3년째인데 마주칠 때마다 “언제 내려왔냐?”고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