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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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엄마 유럽 여행안내서 내가 독일에 있는 친구와 몇달간 집을 바꾼다고 했을 때 가장 눈을 빛낸 것은 엄마다. “유럽…” 엄마는 맛있는 거라도 상상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로 엄마는 육십이 넘도록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태국도 가고 대만도 가고 일본도 다녀왔지만 외국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외국은 ‘유럽’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어.” 엄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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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글방이 쏘아올린 작은 공 올 한 해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14명의 책을 준비한 일이다. 나는 금방 알았다. 내 책을 준비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남의 책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직업은 글방지기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글방이라는 곳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떤 마을의 작고 신비로운 우물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것으로 밥을 사 먹고 월세를 내고 있으니 직업도 맞다. 대부분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직군일 텐데, 그저 그게 내 천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내 직업을 작가라고 알고 있겠지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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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임 인 노웨어 엄마가 사는 시골에 무심코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 사세요?” 그때마다 시골에 살고 있다고 답하면 도시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에 없었다고요?” 시골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 산다고요?” 도시 사람들은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시골 사람들에게는 섭섭함을 느낀다. 벌써 이 동네에 산 지가 3년째인데 마주칠 때마다 “언제 내려왔냐?”고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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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오늘의 날씨 내가 처음 자취를 했던 곳은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매일 지상철 소리가 들렸다. 그 집에 살 때 처음으로 휴학계를 냈다. 아빠가 집을 떠나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직서를 내듯 교수님께 휴학을 선언했고 면담실을 나왔다. 학비를 벌어서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일본 생활용품 매장에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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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혼자 힘으로 쓰는 것 충북의 산골 마을에서 여섯 명의 고등학생과 글방을 하고 있다. 보름마다 한 번 글을 써서 둘러앉아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는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감상을 나누고 있는데, 은결의 합평이 들을수록 웃겼다. 평소엔 한없이 까불거리는 친구가 난데없이 중년 문학평론가가 할 법한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글은 신랄한 풍자와 통찰을 함유하고 있으며…” 은결이가 말할수록 옆에 있던 애들이 하나둘 킥킥대기 시작했다. 불현듯 뭔가가 떠올랐다.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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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이트 워커스 자정에 가까운 시각, 텅 빈 밤거리로 나섰습니다. 무더웠던 낮에 비해 기온이 뚝 떨어진 밤공기는 안개가 낀 듯 촉촉했습니다. 여름밤은 나긋했습니다. 기분이 적당히 차분해지는 종류의 서늘함이었습니다. 그때 사거리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거리기에 달릴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혼잣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가 많은데요. “지금이야. 달려. 달려!” 하면서 달리기 시작하려는데 곧바로 빨간불이 됐습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달리려다가 우뚝 멈춰 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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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사마귀식 인사 한창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거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엄지손가락만 한 거미가 눈앞에서 대롱거리고 있었죠. “깜짝이야!” 소리쳤습니다. 그때 거미도 움찔, 하고 몸을 움츠렸어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은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습니다. 목소리를 낸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죠. 어디 무인도에 있냐고요? 농담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산골짜기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요… 아무튼 당장이라도 막대기를 찾아 거미줄을 걷어내 거미를 밖으로 내쫓을 뻔했습니다만,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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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엄마의 자전거 요즘 엄마의 근무시간은 3시간이다. 어린이집에 일자리를 얻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점심때면 일을 마친다. 일은 가뿐하지만 급여도 적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 몇달을 들여서 찾은 유일한 일자리였다. 대신 엄마는 걷는다. 아가들을 맞이하고 간식을 먹이고 한바탕 놀아주고 난 후, 시골 읍내의 천변을 따라 닦인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백로와 오리들이 줄지어 날아가고 푸른 나뭇잎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마을 한 바퀴를 천천히 돈다. 볕이 드는 시간에 산책하는 일은 엄마가 평생 처음 누리는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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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오직 오늘의 딸기 나는 밥 먹을 준비를 할 때만 집을 나선다. 상추며 깻잎이며 대파며 양파며 당근이며 오이며 하는 것들을 서리해 오기 위해서다. 마을을 설렁설렁 한 바퀴 돌면 어느새 양손이 가득하다. 씨를 뿌리지도, 물을 주지도, 잡초 한 번을 매지도 않은 수확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텃밭을 돌보고 있던 이웃이 나를 보고 말한다. “채소를 직접 가져다 먹는 거야? 기특해라.” 그렇다. 나는 이 마을의 유명한 서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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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둘도 없는 것 서울 관악구에 있는 작은 영화관 앞에 도착했다. 영화관 앞 카페에서 감독과 제작진을 만났다. 춥고 청명한 주말 오후, 카페 안은 만원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한 영화의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 막 지방에서 올라온 차였다. 몇주간 기다리던 시간을 앞두고 조금 들떠 있었다. 이런저런 무대 경험이 있었지만, 감독과의 대화는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거듭하여 보고, 질문을 적어둔 메모가 깜지를 이뤘다. 내가 말했다. “제가 좀 서툴더라도 잘 부탁드려요.” 그때 감독과 제작진 사이에 알 수 없는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모두가 나를 향해 수상할 만큼 환하게 웃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내가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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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손끝부터 발끝까지 돌발 사고는 여행 첫날부터 일어났다. 엄마와 나는 동시에 실직한 기념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돈은 없었지만 시간은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새해 첫날이었고 우리는 목욕재계하기 위해 타이베이 외곽의 온천마을에 묵었다. 막 온천에서 나와 느긋하게 몸을 뉘려던 찰나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 아파. 다리가 아파.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왼쪽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했다. 넘어진 것도 부딪힌 것도 무언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무언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 달려가서 문제 부위를 주물러댔다. 문지르고, 비비고, 비틀어도 보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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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드림시커 얼마 전 생일에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엄마가 재고용 되는 거.”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생활 지원사였고, 그와 같은 국가 일자리는 1년에 한 번씩 고용을 갱신한다. 그의 운명은 곧 그에게 통보될 예정이었다. 그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낮게 웃었다. “야, 말도 꺼내지 마. 나 덜덜 떨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재고용이 아니라 추워서 떨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시골의 추위는 매섭고, 기름보일러를 한 번 채우는 값은 60만원이다. 그것만은 절대 변함없는 한 가지 진실이었다. 우리는 자주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기름값의 신이시여. 저희에게 낼 돈을 주소서. 기도는 전해지지 않았고, 엄마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너무 많은가 봐.” 꿈에서 깬 사람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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