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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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집으로 가출한 아이들 4월 초 검정고시가 있었고, 진료실은 결과를 ‘보고’하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내가 진료하는 10대 중 3분의 1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어서다. 예전에 학교 안 다닌 아이는 대개 가출을 반복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혹은 심한 폭력의 피해자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에는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거나 학폭위가 열릴 수준의 충돌을 빚기보다는 학교 다니는 게 최고의 스트레스인 아이들이 많다. 부모는 선량하고 아이를 무척 염려한다. 경제적으로 중산층이며 부모 모두 양육에 적극적이다. 아이 성향은 내성적인 편이고, 초등학교까지 공부 잘하고 학원도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 학교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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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록하지 않은 기억 달리기를 한 지 몇년 됐다. 신던 운동화로 뛰다가 러닝화를 샀고, 앱을 설치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를 몇분에 뛰는지 평균 속도를 관리하면서 동기부여가 되고 뛰는 거리가 늘고 속도가 빨라졌다. 1년이 지난 후 스마트워치를 사서 차고 나간 다음에는 몸이 더 가벼워지고, 심박수까지 관리가 되면서 더 많은 기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 기록이 기억이 되기 시작했다. 앱을 켜지 않고 뛰다가 한참 후 알게 되면 망연자실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기록은 남지 않은 것이니 사실상 뛰지 않은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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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고통은 필수인가 최근 주요 관심사가 근육량을 늘리는 것이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노후에 잘 지내기 위해서는 근육량을 최대한 늘려놓는 것이 필수다. 나이 들어 근육량이 1㎏ 더 있으면 노쇠를 막아주고, 그 가치가 무려 1300만원이라는 연구도 있다. 바람과 달리 열심히 하는데도 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무게를 더 늘리고 횟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근육이 찢어지면서 근육량이 느는 데 효과적이라고 트레이너는 말한다. 조언을 따라 운동량을 늘리니 온몸이 아프지만 운동 효과가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그러나 고통이 사라지면 이제 무게를 늘려야 할 때다. 이건 끝이 나지 않을 시시포스의 언덕 같아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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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습관에서 깨어나기 “깨끗해졌는데요?” 치과에서 들은 말이다. 매번 치아 사이 음식 찌꺼기가 남아서 잇몸 상태가 좋지 않아 혼이 났었다. 반년 전부터 고기나 질긴 채소를 먹고 나면 이 사이에 이물감을 확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치실을 꼬박꼬박 사용하게 됐고, 드디어 칭찬을 들은 것이다. 치아 사이 간격이 넓어지면서 생긴 불편감이 통각의 기준점을 넘어서버렸고 그 끝이 잇몸 상태의 호전이라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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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꼭 다 털어놔야 하는 건 아니에요 힘든 일을 겪고 보호자와 찾아온 분이 있다.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보호자가 툭 치며 말한다. “빨리 속에 있는 걸 다 털어놔야 해. 그래야 좋아지지.…” 첫 진료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말을 잘하지 않는다. 부모나 배우자가 내게 물어본다. “선생님이 말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안에 있는 걸 다 뱉어내서 비워야 좋아지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