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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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권력자는 의존하는 자다 고대 로마 제국의 쇠망사를 쓴 한 역사학자가 로마 황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우리는 황제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자를 떠올리지만, 실상 그의 권력에는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다. 황제는 이론의 여지 없는 제국의 중심이었으나 현실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력은 중심부 언저리에서만 행사됐을 뿐 먼 지방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이는 제국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제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중요했다. 물론 황제의 법적·이데올로기적 권력은 대단해서 무엇이든 황제의 손길이 닿는 것은 적법한 것으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사정이 그러하자 지방민들은 다투어 자진해서 황제의 권위를 요청했다. 그들은 사적 행동의 정당성과 사업의 합법성을 인가받기 위해, 또 다양한 특권과 혜택을 확보하기 위해 황제의 권위가 필요했다. 로마 제국에서 중앙과 지방은 그런 식으로 유착했다. 즉 황제와 중앙정부의 권력은 지방민들의 권위에 대한 요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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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파시즘과 거짓말 정치 사람은 창밖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햇빛이 비친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다. 곧 인간은 거짓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거짓말을 꾸며낼 뿐만 아니라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능력, 바꿔 말해 사실을 부정할뿐더러 사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인간의 중요한 특성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능력이 폭력 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활용되면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뉴욕 뉴스쿨의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에서 거짓말을 새롭고도 체계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강력한 정치적 전통이 있다고 주장한다. 파시즘이 그것이다. 파시즘은 거짓말을 전례 없는 규모와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쟁과 내전, 학살 등 끔찍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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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파시즘의 두 얼굴 요즘 부쩍 ‘파시즘’이란 말이 유럽과 미국에서, 또 부분적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들린다. 사실 파시즘은 역사학의 난제 중 하나인데 이 문제를 푼다고 노벨상이나 필즈상이 주어질 리 없건만, 그간 수많은 연구자가 파시즘 연구에 매달리며 그 정체를 밝히려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여전히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해법도 오리무중이지만,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된 공식들은 있다. 가령 파시즘은 폭력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이념이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파시즘의 원조라 할 이탈리아 파시즘의 경우 파시스트들은 각종 소형 화기와 곤봉, 그리고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화’의 수단으로 간주된 피마자기름 등으로 무장하고 트럭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정적과 비판자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