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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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발라드 얼마 전 SBS의 새 음악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0~20대가 부르는 1990년대 발라드라는 참신한 기획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덕분이다. 경연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명곡의 향연과 추억 여행의 성격이 강했던 이 프로그램은 젊은 K팝 세대에게는 보석 같은 우리 가요를 재발견할 기회를,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완벽한 기억 소환의 장을 제공했다. 무려 30~40년에 걸친 세월을 아우르는 이런 세대 통합은 지상파 TV가 아니었다면 가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뛰어난 기획도 한몫했지만, 결국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음악의 힘이었다. 1990년대 발라드는 음악 전문가들이 그 시기를 ‘황금기’로 부르는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고, 젊은 신인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매력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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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 김명곤으로부터 처음 들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주의 깊게’ 들었던 음반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바로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담긴 그 음반. 초등학교 5학년의 마음에 불을 지른 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LP 뒷면을 뒤적였던 그때, 노래마다 반복되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영훈 작사·작곡, 김명곤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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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진심 어린 멜로디의 귀환 신승훈이 10년 만에 내놓은 12집 앨범 이름은 <신시얼리 멜로디스(Sincerely Melodies)>다. 진심 어린 선율이라 번역하면 좋을까? 폭발적인 리듬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가요계를 지배하고 나아가 그것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K팝’의 시대에 신승훈이 내놓은 카드가 어쩌면 지극히도 뻔한 정공법이라는 사실이 퍽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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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케데헌’과 매기 강 넷플릭스 최다 시청 영화, 빌보드 싱글과 앨범 차트 석권.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글로벌 센세이션’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어떤 현상이 됐다. 필자는 얼마 전 이 작품을 연출한 매기 강 감독, 걸그룹 트와이스, 프로듀서 알티,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함께한 특별 토크쇼에 게스트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짧은 대화이긴 했지만 현장에서 만나본 매기 강 감독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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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팝 음악의 중심축이 이동하다 팝의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대중음악의 모든 기준은 미국과 영국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영미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팝의 첨단 트렌드를 이끌던 쪽은 늘 본고장인 미국이었고, 때로는 미국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던 영국이었다. 이는 흔히 ‘아이돌’로 불리는 틴팝 시장, 특히 보이밴드와 걸그룹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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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 오랜 시간 기획된 ‘글로벌’ 아이돌만이 설 수 있었던 무대, 바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데몬 헌터스) OST에 수록된 7곡이 모두 진입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지금 K팝의 최고 아이돌은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다. 물론 기존 K팝 아이돌과는 달리 이들은 미국의 자본과 일본의 기술력이 결합된 프로젝트였고,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따른 부수적 결과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한국을 전면에 내세운, K팝 특유의 미학과 사운드를 입은 음악이 미국 ‘주류’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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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30년 전 이승환 미국행의 결실 ‘내게’와 ‘덩크슛’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1995년, 이승환은 별안간 미국행을 결정한다.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특별한 동경이나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도 아니었다. 그냥 그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로 한 것이다. 그건 음악적인 포부이자 인간적인 증명욕의 발로였다. 물론 천문학적인 돈을 써야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도전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위험부담이 큰 미국행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몇달 후, 그는 가요사의 게임 체인저가 될 작업을 들고 돌아왔다. 그건 바로 그의 네 번째 앨범이자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거둔 가장 위대한 사운드의 혁신인 <Huma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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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로컬 청춘의 글로벌 고민들 K팝은 글로벌 지향과 확장을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 온 산업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SNS 등장, 미국 주류 시장 정체와 비영어권 문화에 대한 폭발적 관심 등 K팝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고, K팝은 유튜브와 틱톡 등 새로운 미디어를 등에 업고 세계를 사로잡았다. 내수 시장의 한계로부터 출발한 K팝의 불가피했던 글로벌 지향 전략은 결과적으로 기회가 됐고, 이제 K팝은 K를 지우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템플릿’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다다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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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보이그룹의 시대는 돌아올까? 원래 아이돌의 본령은 보이그룹이다. 서구에서 보이밴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자 아이돌은 사실 현대 팝 산업의 초창기부터 존재해왔다. 비틀스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격적인 무대 매너와 귀여운 머리 모양 덕에 수많은 ‘오빠부대’를 거느리고 다닌 아이돌의 전형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흑인 비틀스라고까지 불렸던 잭슨 파이브를 통해 마이클 잭슨이라는 20세기 최고의 팝스타가 탄생했고, 왬·뉴키즈온더블록·엔싱크·조너스 브러더스·원디렉션 그리고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팝 아이콘의 계보는 보이그룹의 계보와도 사실상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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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한국형 R&B 보컬의 혁명 ‘휘성’ 휘성을 처음 본 건 2000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PC통신 ‘나우누리’에는 SNP라는 전설적인 흑인음악 동호회가 있었고, 그는 지금은 음악 및 연예계에서 유명인이 된 데프콘, 정인, 버벌진트 등과 함께 온·오프 모임에 종종 모습을 보이며 가수의 꿈을 꾸던, 아직은 재능보다는 열정이 더 빛나던 청년이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RealSlow’라는 아이디로 불렸던 휘성이 가요계의 트렌드를 바꾸는 엄청난 가수로 성장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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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K팝 세계화 ‘남은 과제’ 몇주 전 세계 대중음악계 최대 축제 중 하나인 제67회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주인공은 무려 여섯 번째 도전 만에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거머쥔 비욘세와 그래미 역사상 최초로 ‘디스(diss) 트랙’으로 주요 부문 두 개를 휩쓴 켄드릭 라마였다. 엄밀히 따지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로컬 음악상에 불과한 그래미를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1940년대 이래 대중음악 트렌드의 본거지이자 산업의 중심으로서 여전히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그래미 어워드에 쏟아진 다양한 불만, 시상식의 주체인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보수성과 경직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매년 전문가와 대중들이 이 결과를 기다리고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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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가요에서 K팝으로 1985년 6월, 미국으로 떠났던 이수만이 수년간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갖고 돌아온 것은 학위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산업에 대한 비전이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불과 1년 전인 1980년, 미국은 MTV의 등장과 함께 대중음악의 혁명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음악을 ‘보기’ 시작했고,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와 같은 퍼포머형 가수들이 새로운 팝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듀란듀란과 조지 마이클로 대표되는 영국 팝음악의 뉴웨이브가 뒤따랐고, 흑인들의 강렬한 비트와 춤사위로 상징되는 솔과 힙합이 포크와 컨트리를 밀어냈다. 그리고 보이밴드 열풍의 주역인 뉴키즈온더블록이 데뷔했다. 이수만은 이 새로운 흐름을 현지에서 관찰하고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에 미칠 변화에 대해서도 정확히 포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