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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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믿는 것과 아는 것 평소 뜻이 잘 통하는 가까운 지인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더니, 극우 성향에 깊이 빠져 가정의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짜뉴스를 믿고 태극기 집회에 나가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걱정이 많은 딸은 어머니와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선거 부정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한마디도 수긍하지 않았다. 딸은 어머니가 평생 구독해 온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도 읽어 보고 판단하라고 권했지만, 어머니는 그 신문들조차 이미 ‘종북 좌파’가 됐다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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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집단 망상의 광기서 깨어나라 신라의 원효 스님이 <금강삼매경론>을 해석할 때 이런 비유를 들었다. 어느 날 환술사가 뛰어난 환술로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환술로 만든 호랑이가 너무나도 생생해 그는 환술 호랑이를 실물이라고 믿게 되었고, 마침내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인간의 망상을 경계하는 이 비유는 지금 우리 시대의 교묘한 거짓 선동과 그에 사로잡힌 극단적 확증편향을 떠올리게 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사람들의 상심한 마음이 선연하게 보인다. 경계를 뛰어넘어 차별 없는 연민과 사랑을 화두로 품고 있는 수행자의 눈에 멍들고 찢겨 상처 난 마음이 내지르는 절규가 아프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슬프다. 그러나 이런 상실의 시대를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리석은 망상에 사로잡힌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이 후퇴시킨 민주주의 회복이 시급하다. 비 온 뒤에는 땅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하고, 소를 잃고 나서는 외양간을 다시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땅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터이고 소는 후대까지 계속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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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수신의 정치는 난망한가 한겨울 산중에 눈이 내리면 산길보다 들길을 걷는다. 흰 눈을 맞으며 사람 사는 마을과 푸른 산을 바라보면 온몸이 청신하게 시린다. 눈 덮인 들길을 걸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숙고했던 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과 ‘뒷사람의 이정표’를 되새긴다. 이 세상은 나와 이웃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물코라고 표현한다. 상호의존하는 생명의 이치로 우리 모두를 살펴보면 나는 곧 너의 나이고, 너는 곧 나의 너이다. 이런 생명의 연결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의 생각과 행위가 그대로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를,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다듬는 ‘수신(修身)’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