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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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파일명 ‘추미애’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 첫 구절이다. ‘파일명 서정시’는 구동독 정보국이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의 모든 것을 수집한 자료집 이름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서정시인은 불온한 존재이다. 취임과 동시에 ‘불온한’ 정치 환경과 맞닥뜨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금 한국 정치가 <파일명 서정시>를 다시 쓴다면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그들은 <추미애>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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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박원순과 ‘나의 시대’를 보낸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7월10일 이후 그가 남긴 길 위에서 무던히도 헤맸다. 인권 서울시장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추락한 기막힌 모순. 박원순의 상징적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박원순의 역설’. 슬프고 아팠지만, 내 슬픔과 아픔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정치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진보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회찬 전 의원과 달리 마음을 다해 애도할 수가 없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이렇게도 먼 거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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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안부’ 운동 내전, 우리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흔들리고 있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님의 증언 이후 국가(군대)가 위안소를 운영한 역사상 유례없는 중대 범죄에 저항해온 세월만큼이나 강고할 줄 알았는데. 민족주의, 젠더 이슈라는 운동의 개념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대표성이라는 운동의 관계까지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특히 전시일본군성노예제(역사적 사실에 대한 국제적 합의내용을 준수하는 표현) 피해 생존자는 활동가와 함께 가해자 응징을 촉구하며 여성인권·평화운동가로 성장했다. 연구가들도 힘을 보탰다. 때로 거리 두기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운동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멈춰 선 느낌이다. 가해자는 분명한데 이용수님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윤미향 의원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등 돌리고 있다. 이 믿기 어려운 관계는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역사의 퇴적층 어디까지 몰아가고 있나. 정의연과 윤 의원 의혹은 별개 문제로 밀어둔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범죄’로 드러날 일이 있다면 책임질 일이지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공과와는 다른 문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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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산 당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쓰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건배사를 소환했다. 2000년 8월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하자 여론은 “3김 시대를 청산한다면서 왜 DJ(김대중 전 대통령) 임명장을 받았나”라고 비판했다. 고심하던 노 전 대통령은 한 지인의 말에 무릎을 쳤다. “노무현이 DJ 차세대로 성장하는 자체가 청산 아닙니까. ‘청산하는 중입니다’라고 하면 되지요.” 노 전 대통령은 밝아진 얼굴로 건배사를 외쳤다. ‘청산하는 중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는 27년, 경북은 23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의원을 처음 배출했다. 박정희 신화의 자장 지역인 구미에서도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다. 당시 ‘(지역주의를) 청산하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뒤 나는 소망했다. 2020년 총선을 평가할 땐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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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 심상정의 ‘1분’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은 한국 정치의 개혁 원년이었다. 10석의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했고, 국회 곳곳에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약자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16년이 지났다. 4·15 총선 후보자 등록 결과 정의당은 비례대표 정당기호 6번을 받았다. 법을 바꿔서 세상을 바꾼다면 단 하나의 방법이 선거법 개정이라고, 그래서 원내교섭단체를 꾸리겠다고 장담했던 정의당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어찌 정의당의 비극이기만 하랴. 진보정당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6’이라는 숫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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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광주가 대구에 건네는 위로 대구에 있는 고교 선생님의 안부가 걱정됐다. “기침 때문에 걱정했지만 감기라네. 괜찮아. 난 고립에 익숙한 편이라….” 선생님은 포항에서 교육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뒤 33년 전 고향 대구에 정착했다. 삶의 고통을 잊으려 다시 찾은 고향, 살아내기 위해 겪었던 모든 경험이 고립이었으리라. 선생님은 그때마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를 출발해 황톳길 긴 방죽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잊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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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여성 장관들의 ‘다른’ 눈물을 보고 싶다 골목마다 현수막이 나부끼는 걸 보니 선거의 계절이 온 것 같다. 그러나 여성 공천 문제는 매번 4년을 주기로 ‘불행 회로’ 속에 갇힌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20년 전 도입된 여성 할당제 얘기가 나온다. 레퍼토리도 한결같다. 역차별, 특혜…. 선거제 개정 이후 여성 할당제 반대론자들의 무기인 당선 가능성마저 강조된다. 다당제 출현으로 후보자 경쟁력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전직 미국 대통령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성들이 2년만 통치해도 엄청난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 시대에 227년 전 여성 참정권을 외치다 처형된 올랭프 드 구주를 떠올릴 줄이야. 왕정은 프랑스 혁명 정신이 여성을 소외시켰다며 “여성은 교수대에 오를 권리도,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구주를 단두대 위에 세웠다. 차별과 반동의 단두대에서 내려오지 못한 여성 정치, 그 시작은 또다시 공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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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만의 겨울’을 건너온 후배에게 정치하겠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땐 무척 놀랐어. 뭐하러 그 고생을 하나 싶었거든. 그러나 정치에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잘 안된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다짐까지 듣고나니 가슴 밑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더라. “정치라는 게 짐승이 하는 거라고 쉽게 말하고 나와 관련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잖아요. 또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나마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치를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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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1대 국회, 초선 ‘김지영들’ “저 아세요(?)” 소설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학원 남학생이 버스 정류장에서 치근댈 때 이 말을 확 내뱉고 싶었지만 그냥 삼켰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은 달랐다. 커피숍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쏟아 안절부절못할 때 맘충이라고 비아냥대는 남성들을 돌아보며 이 말을 쏘아붙였다. 여성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조차 힘겹다. 심각한 일을 수백 번 당하거나, 아주 사소한 수백 가지 사건을 한두 번 겪거나. 여성들은 이렇게 성장한다. 이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자신의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도 어렵다. 일부는 김지영 일대기가 중산층 여성의 삶이라며 계급성을 따지고, 맘충이라 비하한 적 없다며 냉소적으로 대한다. 나는 이런 반응이 여성 서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 여성의 삶? 중산층이든 아니든 여성 서사가 이렇게 보편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나. 그만큼 여성들은 개별성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김지영도 ‘빙의’에 기대 겨우 자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맘충이라 비하한 적 없다는 남성들은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으로 환원된다. 김지영이 “애를 낳으면 오빠는 뭘 잃어?”라고 묻자 정대현은 “친구들도 못 만날 거고, 회식도 편하게 못할 거고”라고 답한다. 직장과 미래를 다 잃을지 몰라 두려워하는 부인에게 겨우 친구, 회식이라니. 82년생 김지영이 누른 버튼은 자기 아내의, 동료의 고통을 방관해온 남성들에 대한 경고음이다. 그러니 더 고단한 여성, 더 가부장적인 남성도 있다는 말은 시대를 거꾸로 돌리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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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온 사회가, 아니 온 시민의 일상 속에서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 간 다툼이 마치 ‘신들의 전쟁’(막스 베버)처럼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하다. 좋고 싫은 것이 그리 강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된 나이인지라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나 볼까 했지만 DMZ 국제다큐영화제로 발길을 돌렸다. 정치색 짙은 작품 두 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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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조국이 당긴 방아쇠 세상이 오직 ‘조국’ 한 단어다. 공직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 1만개 넘는 기사와 실시간 포스팅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휴전 제안까지 나왔다. 존재하는 모든 전선이 힘 대 힘으로 충돌한다. 사퇴냐 버티기냐 차원을 넘어선 것 같다. 조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물러나더라도 사회 전체가 감당할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걱정이 앞선다. ‘조국이 당긴 방아쇠’가 무엇을, 어디를 정조준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심리적 참전을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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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에 지지…“여성들이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지난해 3월1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만났다.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어머니의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일지 모른다”고 했다. 당시는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던 무렵이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였다. ‘김대중의 부인’이 아닌 여성·평화운동가였던 ‘이희호’의 온전한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 이사장 타계를 접한 지금 뒤늦게 깨달았다. ‘이희호’는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였음을. 1년3개월 전 나눈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는 것으로 한 시대가 저문 안타까움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