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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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만의 겨울’을 건너온 후배에게 정치하겠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땐 무척 놀랐어. 뭐하러 그 고생을 하나 싶었거든. 그러나 정치에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잘 안된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다짐까지 듣고나니 가슴 밑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더라. “정치라는 게 짐승이 하는 거라고 쉽게 말하고 나와 관련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잖아요. 또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나마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치를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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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1대 국회, 초선 ‘김지영들’ “저 아세요(?)” 소설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학원 남학생이 버스 정류장에서 치근댈 때 이 말을 확 내뱉고 싶었지만 그냥 삼켰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은 달랐다. 커피숍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쏟아 안절부절못할 때 맘충이라고 비아냥대는 남성들을 돌아보며 이 말을 쏘아붙였다. 여성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조차 힘겹다. 심각한 일을 수백 번 당하거나, 아주 사소한 수백 가지 사건을 한두 번 겪거나. 여성들은 이렇게 성장한다. 이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자신의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도 어렵다. 일부는 김지영 일대기가 중산층 여성의 삶이라며 계급성을 따지고, 맘충이라 비하한 적 없다며 냉소적으로 대한다. 나는 이런 반응이 여성 서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 여성의 삶? 중산층이든 아니든 여성 서사가 이렇게 보편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나. 그만큼 여성들은 개별성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김지영도 ‘빙의’에 기대 겨우 자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맘충이라 비하한 적 없다는 남성들은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으로 환원된다. 김지영이 “애를 낳으면 오빠는 뭘 잃어?”라고 묻자 정대현은 “친구들도 못 만날 거고, 회식도 편하게 못할 거고”라고 답한다. 직장과 미래를 다 잃을지 몰라 두려워하는 부인에게 겨우 친구, 회식이라니. 82년생 김지영이 누른 버튼은 자기 아내의, 동료의 고통을 방관해온 남성들에 대한 경고음이다. 그러니 더 고단한 여성, 더 가부장적인 남성도 있다는 말은 시대를 거꾸로 돌리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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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온 사회가, 아니 온 시민의 일상 속에서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 간 다툼이 마치 ‘신들의 전쟁’(막스 베버)처럼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하다. 좋고 싫은 것이 그리 강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된 나이인지라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나 볼까 했지만 DMZ 국제다큐영화제로 발길을 돌렸다. 정치색 짙은 작품 두 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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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조국이 당긴 방아쇠 세상이 오직 ‘조국’ 한 단어다. 공직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 1만개 넘는 기사와 실시간 포스팅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휴전 제안까지 나왔다. 존재하는 모든 전선이 힘 대 힘으로 충돌한다. 사퇴냐 버티기냐 차원을 넘어선 것 같다. 조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물러나더라도 사회 전체가 감당할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걱정이 앞선다. ‘조국이 당긴 방아쇠’가 무엇을, 어디를 정조준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심리적 참전을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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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에 지지…“여성들이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지난해 3월1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만났다.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어머니의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일지 모른다”고 했다. 당시는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던 무렵이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였다. ‘김대중의 부인’이 아닌 여성·평화운동가였던 ‘이희호’의 온전한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 이사장 타계를 접한 지금 뒤늦게 깨달았다. ‘이희호’는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였음을. 1년3개월 전 나눈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는 것으로 한 시대가 저문 안타까움을 대신한다. -
구혜영의 이면 황교안의 두번째 자개 명패 큰 저택에 널따란 정원을 가진 한 거인이 있었다. 거인이 집을 비울 때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정원에서 뛰어놀았다. 일곱 해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거인은 ‘불법침입한’ 아이들을 정원에서 내쫓았다. 아이들이 사라진 정원엔 매서운 북풍만 몰아쳤다. 어느 날, 거인의 정원에 다시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었다. 담벽 사이 구멍 안으로 아이들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거인은 그제야 알았다. 그의 정원에 봄이 오지 않은 이유를. 망치로 담장을 부수고 다시 아이들을 맞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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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거꾸로 읽는 ‘유시민’ 지난해 2월, 사석에서 만난 유시민 작가는 “행복하다”고 했다. 뭐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싫은 사람 안 만나도 되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농경사회는 인적 네트워크가 70~80명 정도다. 이 정도까진 못 줄이겠지만 더 좁아져야 된다”고 했다. 정계 복귀 답변을 끌어내려 애썼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불러도 절대 안 갈 것”이라고 하며 말려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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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2018 정치’의 북쪽에서 한 시절 스스로 몰아치는 강물이 있다. 한국 정치는 험한 물줄기와 함께 몇번을 굽이쳤을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로 한 해 ‘정치의 이면’을 되새겨 본다. ‘참모정치’가 도드라졌다. 행정관 인사 문제와 대통령 보좌진의 발언이 주요 기사로 등장했다. 참모의 비전이 리더를 통해 투영되는 정치가 참모정치다. 비전이 버겁다면 직언이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당나라 현종의 참모 한휴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현종은 “한휴 덕분에 나는 야위었다. 그러나 천하는 살찌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참모정치는 선글라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첫눈이 대신했다. ‘참모’만 있고 ‘정치’는 없는 참모정치. 지난 2월 칼럼은 ‘말과 글의 참모, 양정철’을 썼다. 그는 언어 민주주의라는 비전을 꺼냈다. 이후 안부 인사에 “광장에 나오는 이명훈 심정” “허망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답했다. 요즘 ‘양비’ 역할론이 자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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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 기자가 만난 政치&情치 “얼굴 없는 비서 반대…출근 사흘째부터 이 총리에 잔소리 쏟아냈죠” 흙 묻은 발로 귀인 침실 습격한 기분…40년 피운 담배도 끊어그분이 ‘길동무’라고 한 건 친근감의 표현일 것책임 총리 맞아…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차기 대권 1위 좋은 거 아니라 하니 본인도 당혹스럽다고 해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59)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딸깍발이’라고 부른다. 도끼를 옆에 놓고 광화문 앞에 꿇어 엎드려 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면암 최익현 같은 사람. 말이 좋아 꼬장꼬장한 선비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판에 박힌 공직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새 일을 즐거워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언론재단에서 쫓겨난 지 만 10년을 백수로 지내며 새벽녘까지 글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진 생활을 하고 있다. -
구혜영의 이면 박용진, 과감한 전환 요즘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대체로 비슷한 평가였다. 10월5일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이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12일),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종합대책 발표(25일).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 이후 정부가 20여일 만에 제도로 응답한 보기 드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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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 기자가 만난 政치&情치 유시춘 “내 동생 유시민, 정치 안 하면 좋겠다” 1985년 서울 장훈고에서 해직된 이후 ‘유시춘’ 이름 앞엔 온갖 ‘민’자 돌림 단체의 직함이 붙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결성식 사회를 보고 왔더니 경찰들이 교장 멱살을 잡고 “빨갱이 선생을 데리고 있다”고 소란을 피웠다. 곧바로 해직됐다. 15년 교사, 작가 ‘유시춘’(67)은 그 뒤 민가협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민화협 공동의장을 거쳤다. 2001년 말부터 2004년 초반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맡았다. 어떤 자리든 ‘의분’이 끌고 왔다. 지난 9월 17일 이후 또 하나의 이력이 더해졌다. EBS 신임 이사장. 유 이사장은 “작가, 인권운동가, 교사, 엄마의 이름은 미래세대를 위해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신이었다. 다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
구혜영의 이면 이해찬에 반(反)하다 확실히 달라졌다. 이해찬 대표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 말이다. 이 대표는 종부세, 공공기관 이전 등 ‘표’ 계산을 해야 할 사안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부동산, 전교조 합법화, 최저임금 등 청와대와 정부가 엇박자를 내거나 주저하는 정책에도 거침이 없다. 집권여당도 안정궤도를 순항 중이다.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때만 해도 민주당은 내분이 불가피해 보였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조기 등판했고, 지지층 내부는 상대 당 후보를 찍자고 할 정도로 대립했다. 이 대표는 강한 여당과 20년 집권론을 앞세워 군기반장을 자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