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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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이 만난 정치 이희호 여사 인터뷰 “남과 북, 더 자주 만나야…미투운동, 놀라워” 이희호 여사(96)가 휠체어에 앉아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로 들어왔다. 봄날의 보라색 블라우스가 단아했다. 고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은 이 여사의 평생과 함께했다. 1976년 3·1구국운동 사건 때도 그랬고, 크고 작은 역사의 현장에 설 때마다 그는 보라색 옷을 자주 입었다.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셨잖아요. 보라색 스카프도 자주 매셨고요.” 10년 전 그의 자서전(<동행>)을 쓴 유시춘 작가도 동석해 먼저 안부를 물었다. 이 여사는 “네네. 정월 초하룻날에도 입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
구혜영이 만난 정치 이희호 여사 인터뷰 “DJ 특별히 보고 싶진 않아요, 하하하…생일날 가장 많이 생각나” 지난 1일 찾은 서울 동교동 178-1번지 자택 대문에는 ‘김대중·이희호’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붙어 있었다. 1963년 이사한 뒤 ‘동교동 감옥’으로 불릴 때나, ‘대통령의 사저’였을 때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9년이 지난 지금도 문패는 그대로였다. 이 여사 인터뷰에 동석한 유시춘 작가는 “김 전 대통령이 동교동으로 이사한 다음 날, 부부 이름이 나란히 있는 문패를 갖고 왔다. 당시 사회 분위기론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처음엔 당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았지만 달고 나니 동지 의식이 커졌다’며 직접 문패를 달았다”고 전했다. 3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굳이 저 문패를 뗄 이유가 있겠나”라며 문패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
카드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밥상정치 -
구혜영의 이면 양정철, ‘말과 글’의 참모 19대 대선 직후 홀연히 떠났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잠시 귀국했다. ‘양비’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양 전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 당 대표를 거치며 짧은 시간 상층 단위에서 정치를 학습했다. 때마침 금권, 패권 정치가 저물 무렵이었다. ‘양비’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무게를 만들었다. 2008년 3월 ‘시민 문재인’은 경남 양산 매곡마을로 내려와 “밥벌이가 아니라면 더 깊숙한 골짜기를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랬던 ‘시민 문재인’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낸 것은 정권교체를 도원결의한 친노 그룹의 집단적 결의였다. 그다음 기승전결은 ‘양비’가 엮었다. 한 손엔 ‘노무현의 유산’을 또 한 손엔 <문재인의 운명>을 건네며. 2012년 대선 시작부터 2017년 대선 마무리까지 ‘양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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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이 만난 정치 “대통령과 브리핑 내용 상의 안 해…난 행복한 대변인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솟아올랐던 지난해 5월, 서울 삼청동 청와대에도 봄날이 스며들었다.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입’으로 임명된 박수현 대변인(54)이 춘추관 단상에 섰다. 일성은 “따뜻한 소통”이었다. 8개월이 흘렀다. 박 대변인은 ‘친절한 수현씨’로 통한다. 청와대 2진 출입기자들 전화도 잘 받는다. 당 대변인 때도 출입처를 떠난 기자들에게 밥 한끼라도 챙겼다. 90도 각도로 몸을 숙여 인사하는 습관도 여전하다. -
여야 대표 신년 인터뷰 (3)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과 통합, 최종 결심 아직”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60)는 경향신문과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아직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최종 결심이 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당의 정체성 확립을 통합의 전제로 제시한 것이다. 유 대표는 특히 국민의당·바른정당의 노선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북 정책에 대해 “타협하거나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 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과 관련해선 “제 입으로 꺼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랐다. 한국당이 표방하는 ‘신보수주의’에 대해선 “실체가 모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자신의 지방선거 역할론에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며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여야 대표 신년 인터뷰 (2) 국민의당 안철수 “비례대표 출당, 당에 권리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55)는 4일 “비례대표 의원을 출당시킬 권리가 당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싱크탱크 미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하면서 “국민의당을 보고 투표해 준 민심을 생각하면 비례대표 의원직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합의 이혼’을 위한 ‘신사 협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통합에 반대하며 개혁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의원들은 출당 조치가 없어도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적을 유지한 채 의정활동을 함께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기자칼럼 <1988>, <2018> 영화 <1987>. 몇 번을 망설였다. 끝까지 볼 배짱도, 울지 않을 자신도 도무지 없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유시춘 선생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유 선생은 시사회를 봤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숨소리까지 고문당하던 그때와 두 번이나 마주하게 해 미안했다. “괜찮아, 뜨거웠던 한 계절이 내 인생의 정수였어. 살아서 이런 시절 봤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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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형산강은 잘 있나요 2017년 11월15일 포항 북구 흥해에서 진도 5.4 지진이 발생했다. 세상사 ‘절대’라는 건 없다지만 설마설마했다. 낯익은 고향 도로, 밤낮으로 내달렸던 골목길이 산산이 부서졌다. 고향집은 진앙 반대쪽이라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늙은 부모는 “야야, 내 평생 여서(여기서) 이런 난리는 처음 본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떻게든 고향 안부라도 듣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았다. 두툼한 외투 한 벌만 급히 챙겨 포항행 KTX를 탄 선배나 속만 타들어가는 나나 얼마를 더 뒤척여야 낯선 공포에서 헤어날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좀 수습됐나요, 이재민들은 괜찮나요. 미안한 질문과 지친 답변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재민 대피, 수능 연기, 자원봉사자 배정, 특별재난구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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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보수, 그 치명적인 향기와 독 보수는 지난 60여년간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 산업화에서 선진화로 끊임없이 탈바꿈했다. 흔히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이지만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라는 말처럼 혁신과 변화 앞에선 보수가 진보보다 유능했다. ‘천막당사’ ‘뉴밀레니엄, 뉴○○○’ ‘○○○○ 연대’ 등 변화라 할 만한 행보는 대부분 보수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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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MB의 시간 정치부 기자의 숙명이겠지만 늘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산다. 명절은 이 팍팍한 늪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일상의 소박한 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예외였다. 이명박(MB) 정부의 ‘적폐’라는 거대담론에 단단히 포위된 채 보내야 했다. 군까지 동원된 정치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 비하 청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도 모자라 국가기관이 보수단체와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다는 정황마저 불거졌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이 본질이라지만, 그래서 적과도 거래하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지만 정치적 부관참시까지 하다니. <징비록>과 <난중일기>가 시사하듯 왕조·식민지 지배세력들도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우리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지 않았고 독재의 실체적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테러방지법 등을 동원해 체제를 바꾸려 했던 신념 보수이기라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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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철학 있는 인사가 시스템 인사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