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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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가장 정치적인 애도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동 119-7번지 골목에서 두 번째 세월호가 침몰했다. ‘두 번째 세월호’란 말을 수차례 쓰고 지웠다. 한 번 비극을 겪었다고 다음 비극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웃다가도 심란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깼던 지난 한 달이었다. ‘두 번째 세월호’는 참사 규모만 해당하지 않는다.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라 하더니 이번엔 ‘감성팔이’라 비난하고,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8년 전과 유사하다. 애도와 추모를 탈정치로 몰고 가려는 시도 또한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총체적 무능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정치적 내전을 불사했던 상황을 집약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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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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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허대만과 허대만들의 동행 한 시절 깊게 연대한 누군가의 죽음은 내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때 누군가의 죽음은 소설가 박상륭이 통찰했던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허대만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포항에서 1995년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이후 7번 선거에서 7번 모두 낙선했다. 포항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30년 가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넣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가했던 심적 질타는 얼마나 매서웠을까. 결국 그는 쓰러졌다. 두 번의 시한부 선고에도 여러 해를 넘겼지만 지난 8월22일 생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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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부의 최전선, 김순호 최전선은 적과 가장 가까운 전장이다. 전투에서 최전선이 없으면 전진할 수 없고, 최전선이 버텨야 뒤로 밀리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전선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의미의 최전선은 과거가 침범 못하게 막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 최전선이었다. 뒤로 밀리진 않았지만 대전환 시기를 헤쳐나가진 못했다. ‘다음’에 대한 기대가 윤석열 정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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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이런 세대교체는 없다 68혁명은 젊은 세대의 분투가 세상을 바꾼 역사다. 이들은 전쟁의 상흔을 잊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다. 낮엔 시위로, 밤엔 대항문화로 혁명의 중력을 키웠다. 계급 투쟁만 혁명으로 치부했던 기성세대는 이들을 철부지 취급했다. 세대 갈등은 68혁명의 화두였다. 68세대는 해나 아렌트 같은 당대 거인들과 겨뤘고, 반전과 권위주의 타파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했고, 전 세계 청년들과 일체감을 이뤘다. 68혁명은 환경, 페미니즘, 소수자 운동 등 전환기 시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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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임미애의 이의제기 지방선거는 정치의 본질이다. ‘이 골목 주민이 한 말을, 저 골목 주민도 했다면 그게 민심’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골목의 욕망이 마을의 서사로 나아가는 화두가 나의 일상임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지방선거는 공중전에 묻어가기도 하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직접 온몸을 불사르는 지상전이다. 그 지상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3·9 대선 대비 약 650만표(최소 42.6%)가 이탈했고, 호남은 37.7%만 투표했고,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는 40%대 초반 투표율에 그쳤다. 심판, 응징도 과하다며 용도 폐기라는 평가도 있다. 쏟아지는 반성문은 오십보백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남측 빨갱이를 지칭한 ‘수박’이 등장하고, 대선 득표가 순정한 지지인 줄 착각하는 ‘졌잘싸’가 회자된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김대중·노무현 정신이다. 하지만 유산도 탕진했다. 호남 투표율은 전국 최저, 김해시장 선거는 15%포인트 차로 졌다. 그 와중에 국민의힘은 5·18과 봉하를 찾고,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후보로 세우고, 지난 대선 땐 대구·경북(TK)에서 탄핵까지 용인했다. 내부 협치는 물론, 상대의 정통성을 수용하는 외부 협치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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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집무실 이전’이라는 권력의 좁은 총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현재 열흘 가까이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보수 언론까지 초과권력 행사, 불통, 안보 공백, 졸속 절차라고 비판한다. 그래도 거둬들일 기미가 없자 이전 배경을 놓고 온갖 해석이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턴 합리적 추론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초보라고 하지만 권력에 1㎝ 붙고, 1㎝ 멀어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아는 특수통 검사 출신 아닌가. 두 달 만에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귀를 닫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슈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집무실 이전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에 주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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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나의 ‘20대 대선’ 버킷리스트 20대 대선 전 마지막 칼럼에 꼭 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1987년 3월 <한라산>을 발표했던 시인 이산하. 제주 4·3 항쟁은 <한라산>을 통해 비로소 역사가 됐다. 오랜 절필 후 이산하는 지난해 새 시집 <악의 평범성>을 출간했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심경을 밝힌 한나 아렌트처럼 “이 시집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 몸까지 아프다. 많은 지인들은 그가 버텨서 견뎌냈던 그 시절의 빚을 ‘선불 조의금’으로 갚고 있다. 나는 이번 대선을 ‘선불 조의금’으로 건네고 싶었다. 뻔하지 않은 내일을 안기고 싶었다. 낡은 정치와 또 다른 이산하인, 나의 대결. 20대 대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비호감 대선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었다. ‘누가 잡아도 나라 안 망한다’는 말이 16년 만에 배회한다. ‘이(저)쪽이 되면 다 죽는다’는 공포감도 짙다. 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지지자들의 성숙한 지지는 대선 후보가 시대정신을 읽게 하는 힘이다.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자는 노무현 후보의 대선 구호가 먹힐 수 있었던 건 노사모가 낙선운동이 아니라 당선운동을 전개했고, 정치를 움직여온 기존 방식(돈, 조직)을 바꿨고, 이해관계가 아닌 신뢰와 존중을 정치적 언어로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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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이라는 ‘텅 빈 기표’ ‘텅 빈 기표’를 대선 정국에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어떤 자리에 놓아도 아무 의미 없이 해석되는 바로 그 ‘텅 빈 기표’. 이번 대선은 정치라는 ‘텅 빈 기표’를 드러냈다. 한 시대는 성공과 실패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정치는 이 명제가 적나라한 분야이다. 선거가 특히 그렇다. ‘져도 이긴 선거’라는 평가가 있듯 반드시 성공의 기억만 각인되지 않는다. 실제 패자가 더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를 들 수 있다. 비록 낙선했지만 각각 1995년 부산시장·2000년 총선(부산 북강서을)을 ‘지역주의 균열’,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을 ‘민주적 사회주의’로 뒤흔들었다. 거대한 저류가 어디를 향하는지 정치가 포착했던 시대였다. 2022년은 어떤 성공과 어떤 실패가 빚어낸 시대로 기억될까. 성공은 고사하고 ‘이런 대선은 없었다’는 말만 떠다닌다. 거대 정당 후보들이 뭘 “하겠다”고 약속할수록 불신만 커지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시대정신마저 고작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이라니. -
에디터의 창 나중은 없다 일상을 이기는 혁명은 없다. 고정관념을 깨기란 어렵다는 의미다. 젠더 문제가 유독 그렇다. 한 페미니스트는 “시작과 종말이 동시에 진행됐던 게 페미니즘 역사”라고 말했다. 젠더 평등이 달성됐다며 페미니즘 임무 완성을 말하거나, 젠더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남성이 차별의 희생자가 됐다고 선언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죽지도 않았는데 장사부터 지내려 드는, ‘페미니즘 사망 증후군’이라 할 만하다. 이 증후군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대가를 이번 대선에서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제1 야당 대표는 안티페미니즘에 올라타 있고, 집권 여당은 등가일 수 없는 남혐과 여혐을 동시에 배격하자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 나오고 군대 안 가는 여성에게 권리 4분의 3만 주자고 한 인사가 4년 만에 재등장했다. ‘이대남·이대녀’ 갈등은 빈부 양극화만큼이나 심각하다. 여성에게 참으로 가혹한 대선이다. 조동연 교수 논란은 특히 가혹했다. 가부장제라는 고정관념에 여성 개인을 겨냥한 ‘폭력’까지 가해진 사건이었다.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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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치한다’는 착각 격변의 역사는 저마다의 죄의식을 뿌리내리게 한다. 혁명과 반동이 수시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거인의 어깨가 꺾이고, 나약했던 소시민들이 전면에 나선 경우가 드물지 않다. 민주화운동 서사만 해도 누군가는 액자로 걸어두고 사는가 하면 누군가는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현대사의 질곡은 이념 대립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부채의식)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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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정세균 이낙연, 이별에 대한 예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시하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청춘 시절에야 앞날이 불투명하고, 세월의 풍상을 쌓지 못했으니 용기와 열정만으로도 자신만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용감했음에도, 뜨거웠음에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길을 잃고 헤매는 때가 잦아진다. 꿈보다 일상이 더 간절해지면 모든 순간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러니 시시해질 수밖에. ‘어른’이 되는, 성찰의 과정이다. 정치의 세계는 다르다. 선수가 쌓일수록 욕심이 커진다. 대선 승리 이후 혹시 나를 내각에 중용하지 않을까 싶어 몇 날 며칠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선출직에 나선 후보들은 저마다 당선을 확신한다. 3선만 넘어도 대통령 꿈을 마음에 담아둔다. 정치인의 인생은 시시해지기가 이토록 힘들다. 내려놓고 길을 터주는, 정치 ‘어른’의 부재가 지속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