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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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정당의 변형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승리한 후보는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에 입사해 25년을 일하다 정치에 입문한 3선 의원이다. 그가 꺾은 경쟁자는 같은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운동권 출신 4선 의원이다. 선출 과정에서 논쟁은 없었다. 두 후보 모두 대통령을 위해 일을 잘해내겠다고 했다. 경쟁이 아니라 간택해달라는 요청에 가까웠다. 대통령의 국회 정무수석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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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정치의 미덕 이번 선거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다른 정당들이 외면하는 의제를 던졌고, 중하층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했다. 자극과 흥분을 목적으로 말하지 않아서도 좋았다. 표는 적었지만, 포기는 없다는 듯 진보 정당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했다. 주류 정당들의 경쟁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의 싸움이 다였다면 괜찮았을까. 지난 대선처럼 ‘비호감 선거’라 욕만 했을까. 투표할 의욕을 내내 유지할 수 있었을까. 종류가 다른 정당이 있고 없고는 선거 과정의 정당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권 후보는 자칫 냉소로 끝날 선거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고, 민주정체의 역량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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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당파성 과잉 민주주의 정치가 권력투쟁 이상이 아니게 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여러 영역도 그에 상응해 변형됐다. 비당파적이어야 할 행정 관료의 수장이 느닷없이 대선에 출마하고 후보 단일화를 강박하질 않나, 사법부가 당파적 입장에 따라 재판을 하지 않나, 입법부가 공안 검찰처럼 특정 세력 척결을 말하며 공포감을 조성하지를 않나, 가히 비정상의 시대다. 삼권분립 없는 민주주의, 혹은 삼권이 모두 당파 싸움을 하는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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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가 위기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성기다. 세계사적으로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번성한 적 없다. 굳이 위기를 말한다면, 정치가 위기이지 민주주의는 아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은 소수가 다수를 혈통과 계급, 종교와 돈의 힘으로 지배한 과두정 체제였다.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 같은 ‘자유의 시간’은 짧았고, 그때에도 피의 정변은 잦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27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한 뒤 들어선 ‘30인 참주’ 시대에만 1500명이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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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정치의 정신 민주당은 중도 보수정당이다. 가치나 신념을 중시해 선거 패배를 감수할 수 있는 이념 정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다른 종류의 정당이다. 정당 이론가 앤서니 다운스식으로 표현하면, 정책 실현을 목적으로 선거에 승리하려는 정당이 아니라 선거 승리를 위해 정책을 선택하는 정당이다. 가난한 시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일을 다른 무엇보다 중시하는 진보정당과 달리 중산층 감세와 기업 활력,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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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진보 없는 민주주의 거대 양당의 독과점 정치는 견디기 힘들다. 한쪽은 반국가로부터 국가를, 다른 쪽은 반민주로부터 민주를 지키자 한다. 사실 윤석열을 지키고, 이재명을 지키자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양당제라고 하는데, 진보도 보수도 아닌 것 같다. 그들을 위해 세상이 있는 듯 행동하는데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에 의미가 실릴 리 없다. 지금처럼 제3당의 독립적 기반이 약해진 때가 또 있었나 싶다. 4000여명의 지방의원 가운데 양당 소속이 98%나 되는데 자치나 분권, 다원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당이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 나라 안에 두 국가가 대립하는 것처럼 혐오와 적대로 양분된 사회를 만들었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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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 병든 민주주의 도종환 전 의원의 추천으로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을 읽으며 병든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를 꿈꿨던 시인은 ‘해방 정국’이 기대와 달라지는 것에 화가 났다.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만 살판이 난 것처럼 보였다. 당과 본부들이 상대를 잡아먹을 듯하더니 결국 인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적대로 분단시켰다. 한국전쟁 이듬해, 시인은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씰개를 잡어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며 개탄하듯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못지않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도 병들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일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