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미술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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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스타벅스 로고의 의미 스타벅스를 처음 알게 된 뒤 나는 그 로고가 마음에 들어 자주 매장을 찾았다. 커피 맛 때문이라기보다 매혹적인 로고가 새겨진 사물들을 보러 간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다양한 곳에 박힌 로고를 바라보는 일을 즐겼고 그것들을 수집했다. 견고한 흰색 도자기 컵 위에 초록색 로고가 그려진 모습도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작은 초콜릿 통이다. 짙은 초록색 바탕 위에 흰색과 검은색이 들어간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둥근 금속성 통인데, 빛을 받으면 펄이 들어간 것처럼 표면이 반짝인다. 통 안에는 금색 포장지에 싸인 커다란 초콜릿 세 개가 들어 있다. 도넛처럼 둥글고 얇은 초콜릿도 맛이 좋지만, 이 금속성 통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한다는 생각이다. 둥근 통의 표면에는 스타벅스 로고만이 가득한데 나는 그 인어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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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이순신 동상 중학교 시절, 이순신의 탄생일이 되면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임진왜란’이나 ‘성웅 이순신’ 같은 제목의 영화를 단체관람했다. 1960~1970년대는 이순신 우상화 작업이 유난했다. 박정희는 유년 시절 이광수가 쓴 <이순신>을 탐독하며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춘원의 이순신 전기는 식민사관이 내재돼 그 사관이 무의식적으로 박정희의 사고를 지배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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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전통문화 없는 전통문화거리 종로2가와 송현동, 안국동 사이를 잇는 인사동길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전시를 접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다. 갑오개혁 당시 행정개편으로 ‘인사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관가이자 중인들의 주거지였다. 나는 그곳의 작은 표지석을 지날 때마다 조선시대 화원들의 자취를 떠올린다. 어디선가 김홍도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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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인상주의 전시 유감 방학 기간에 맞춰 대형 전시공간에서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가 선을 보인다. 신문사나 방송사, 혹은 전시 전문업체가 외국의 미술관 등에서 소장품을 빌려와 치른다. 다른 곳들은 그만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는 대부분 서양미술,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전시(후기인상주의 포함)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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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정신분열증에 걸린 벽 북적이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 무감각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게 된다. 돈을 쓸어 담는 병원 안에 조악한 이발소 그림 몇개가 창백하게 걸려 있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흉내 낸 짝퉁도 있다. 병든 몸을 치유하는 것도 좋지만 이 공간에 온 이들의 눈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빼어난 이미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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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읽히지 않는 미술책 노트북 자판 하나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사용할 수가 없어서 별도의 키보드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불편함은 없지만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사방 1㎝ 크기의 작은 조각 하나 때문에 노트북을 새로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여간 불구가 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언제부터 이 노트북을 사용했는지 기억이 없다. 흡사 나는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같다. 기억이 없는 자는 현재만을 사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하여간 이전에 비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쇠약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몸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차가운, 낯선 기계와도 같다. 그러나 그 몸의 변화에 순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몸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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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가짜 체험, 가짜 미술 길가 벽면 쪽으로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어떤 것들은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아스팔트 위에, 보도블록 위에 흩어지고 쌓이는 낙엽은 안쓰럽다. 산속이나 대지에 떨어졌다면 자연스레 흙으로 스며들고 곤죽이 되어 그 무엇으로 환생할 텐데 도시의 낙엽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낙엽을 밟는 것은 나름 운치가 있어 쌓인 낙엽 더미를 일부러 밟으며 걸어간다. 그 많은 마른 낙엽 중에 제법 잘생긴 놈들을 애써 찾는다. 바닷가나 강가에서도 멋진 돌들을 찾곤 했다. 그렇게 골라온 돌들은 일상의 공간에 고완품이거나 미술작품처럼 품위 있게 자리한다. 길에서 주운 저 마른 낙엽 하나만으로도 어딘가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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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화상’의 올바른 역할 오래전부터 나는 한국 고미술품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조형미를 두르며 빛나는 그것들에 매료되어 힘껏 수집했다. 이른바 고완품들이다. 이태준은 <무서록>(1941)에서 될 수 있는 대로 ‘골동’ 대신 ‘고완품’이라 쓰고 싶다고 고백했다. 어둡고 죽음의 흔적이 깃든 골동이란 이름보다는 운치 있고 멋이 깃든 고완품이 훨씬 부르기도 듣기도 좋다는 것이다. 내 수준에 맞는 고완품의 수집이란 신라와 가야의 작은 손잡이 잔과 목기, 주로 일상에서 사용되던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무명의 장인이 남긴 오래 사용해서 닳고 낡아 버려지려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매혹적인 색감이나 질감, 헤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것들이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과도 같은 깊고 무수한 사연을 은닉하고 있다. 하여간 나는 아득한 사연을 지닌 고완품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것들을 찾아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서재에는 고완품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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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사라져야 할 현수막들 1970년대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그 시절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국민학교’여야 한다.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양성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의지는 국민 개개인을 국가에 종속된 존재로 인식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문, 국민교육헌장의 암기 등으로 훈육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해 꽤나 노력한 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국가 이데올로기의 강압적인 주입 교육에 시달렸던 시기인데 그 어두운 시절이 남긴 후유증은 깊게 침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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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미술의 정치성 ‘대한민보’ 1910년 4월10일자에 ‘배우창곡도’라는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가 실렸다. 국권이 위태로웠던 당시 이도영이 그린 이 시사만화는 국권 회복에 대한 간절한 기원을 보여준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소리꾼이 합죽선을 들고 고수와 장단을 맞추면서 판소리 한 소절을 내지르는 것을 창밖에 서 있는 이들이 듣고 있는 그림이다. 판소리 ‘사랑가’의 대사에 나오는 뻐꾸기 소리의 ‘뻐꾹, 뻐꾹…’을 ‘복국(復國·나라를 되찾자), 복국…’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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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전통의 사물화 혹은 키치화 전통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주술적인 도상들이고 신화나 종교, 지배계급의 이념이라는 특정 텍스트에 기생하는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미지는 특정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그 이야기를 구전하고 기록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일구었고 삶을 지탱했다. 한국의 근대 이전 그림, 다시 말해 조선시대까지의 그림이란 특정 시대의 세계관, 신화와 종교, 정치적 이념들이 겹을 이루며 포개진 것의 표상화인데 무속화·불화·산수화·사군자·민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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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산업이 되려는 예술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했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그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자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던지며 화를 내셨다. 굶어 죽을 환쟁이가 되려고 한다면서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노와 폭력 앞에서 나는 기가 죽었다. 당시 어른들은 미술을 전공하면 실업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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