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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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읽히지 않는 미술책 노트북 자판 하나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사용할 수가 없어서 별도의 키보드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불편함은 없지만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사방 1㎝ 크기의 작은 조각 하나 때문에 노트북을 새로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여간 불구가 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언제부터 이 노트북을 사용했는지 기억이 없다. 흡사 나는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같다. 기억이 없는 자는 현재만을 사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하여간 이전에 비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쇠약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몸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차가운, 낯선 기계와도 같다. 그러나 그 몸의 변화에 순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몸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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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가짜 체험, 가짜 미술 길가 벽면 쪽으로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어떤 것들은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아스팔트 위에, 보도블록 위에 흩어지고 쌓이는 낙엽은 안쓰럽다. 산속이나 대지에 떨어졌다면 자연스레 흙으로 스며들고 곤죽이 되어 그 무엇으로 환생할 텐데 도시의 낙엽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낙엽을 밟는 것은 나름 운치가 있어 쌓인 낙엽 더미를 일부러 밟으며 걸어간다. 그 많은 마른 낙엽 중에 제법 잘생긴 놈들을 애써 찾는다. 바닷가나 강가에서도 멋진 돌들을 찾곤 했다. 그렇게 골라온 돌들은 일상의 공간에 고완품이거나 미술작품처럼 품위 있게 자리한다. 길에서 주운 저 마른 낙엽 하나만으로도 어딘가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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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화상’의 올바른 역할 오래전부터 나는 한국 고미술품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조형미를 두르며 빛나는 그것들에 매료되어 힘껏 수집했다. 이른바 고완품들이다. 이태준은 <무서록>(1941)에서 될 수 있는 대로 ‘골동’ 대신 ‘고완품’이라 쓰고 싶다고 고백했다. 어둡고 죽음의 흔적이 깃든 골동이란 이름보다는 운치 있고 멋이 깃든 고완품이 훨씬 부르기도 듣기도 좋다는 것이다. 내 수준에 맞는 고완품의 수집이란 신라와 가야의 작은 손잡이 잔과 목기, 주로 일상에서 사용되던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무명의 장인이 남긴 오래 사용해서 닳고 낡아 버려지려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매혹적인 색감이나 질감, 헤아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것들이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과도 같은 깊고 무수한 사연을 은닉하고 있다. 하여간 나는 아득한 사연을 지닌 고완품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것들을 찾아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서재에는 고완품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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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사라져야 할 현수막들 1970년대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그 시절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국민학교’여야 한다.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양성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의지는 국민 개개인을 국가에 종속된 존재로 인식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문, 국민교육헌장의 암기 등으로 훈육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해 꽤나 노력한 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국가 이데올로기의 강압적인 주입 교육에 시달렸던 시기인데 그 어두운 시절이 남긴 후유증은 깊게 침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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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미술의 정치성 ‘대한민보’ 1910년 4월10일자에 ‘배우창곡도’라는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가 실렸다. 국권이 위태로웠던 당시 이도영이 그린 이 시사만화는 국권 회복에 대한 간절한 기원을 보여준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소리꾼이 합죽선을 들고 고수와 장단을 맞추면서 판소리 한 소절을 내지르는 것을 창밖에 서 있는 이들이 듣고 있는 그림이다. 판소리 ‘사랑가’의 대사에 나오는 뻐꾸기 소리의 ‘뻐꾹, 뻐꾹…’을 ‘복국(復國·나라를 되찾자), 복국…’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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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전통의 사물화 혹은 키치화 전통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주술적인 도상들이고 신화나 종교, 지배계급의 이념이라는 특정 텍스트에 기생하는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미지는 특정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그 이야기를 구전하고 기록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일구었고 삶을 지탱했다. 한국의 근대 이전 그림, 다시 말해 조선시대까지의 그림이란 특정 시대의 세계관, 신화와 종교, 정치적 이념들이 겹을 이루며 포개진 것의 표상화인데 무속화·불화·산수화·사군자·민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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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산업이 되려는 예술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했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그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자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던지며 화를 내셨다. 굶어 죽을 환쟁이가 되려고 한다면서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노와 폭력 앞에서 나는 기가 죽었다. 당시 어른들은 미술을 전공하면 실업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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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죽음을 기억하기 나이 들면서 지난 일들이 앞날을 대신해 거칠게 들어선다. 과거가 떠오르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특히나 죽은 이들이 지속해서 출몰한다. 그 존재를 결코 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다. 죽음에 대한 경험은 작가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미술 속에서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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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감각과 정치 나의 첫 대통령 선거는 노태우와 김대중, 김영삼 등이 붙었던 1987년이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이 연장된 것이다. 두 김씨가 힘을 합쳐 단일 후보를 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 낙심과 아쉬움이 꽤 오래갔다. 그래도 선거는 나의 유일한 정치적 관점 표명이자 민주적인 사회에 대한 발언 기회라고 여겼다. 그동안 세 명의 대통령은 내가 선택한 이가 됐고 나머지 셋은 내 의지와는 무관한, 다른 이들의 선택으로 뽑혔다. 기쁨과 절망이 그렇게 정확하게 반반을 이뤘다. 그간의 여러 대통령과 정부는 민주적이자 반동적이었고 진보적이자 퇴행적이었다. 이것이 번갈아 가며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새로운 이념과 정책이 들어서고 그것은 내 삶까지 파장을 일으킨다. 정치는 나와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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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귀신과 간판 중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의 별명은 귀신이었다. 뒤돌아 칠판에 판서하면서도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을 정확히 호명하는 능력이 있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선생님들의 별명은 좀 살벌했다. 교련 선생님은 살모사, 체육 선생님은 미친개였다. 엄한 한문 선생님 덕분에 신문에 실린 한자 정도는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미술 시간을 통해 형식적이나마 서예라는 것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그것마저도 다 사라졌다. 나는 중학교 시절의 그 짧은 한문 시간과 미술 시간의 소중함을 평생 간직하고 있다. 그런 공부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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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소멸하는 우리 문화의 거리 얼마 전 대구에 다녀왔다. 기차 좌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근 출간된 김영복 선생의 <옛것에 혹하다>라는 책이다. 선생은 고서적과 서화에 대한 감식안이 빼어난 분이다. 오랫동안 인사동 현장에서 실물을 접하면서 감정과 상인의 일을 병행해온 경험의 시간 또한 유장하다. 별명이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은 좋은 고미술품 가게나 전시장이 많이 사라지고 뛰어난 안목의 상인들도, 대단한 소장가들도 소멸해 가는지라 더없이 삭막하고 쓸쓸해졌다. 골목에 숨은 듯이 자리한 몇개의 고미술 가게들은 적요한 풍경을 배경으로 주저앉아 있다. 그 허망해진 거리에 음식점, 화장품과 옷 가게, 조악한 중국제 물건이 판을 친다. 인사동은 더 이상 한국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본향이 되지 못하고 쇠퇴했다. 오래전 이 거리에서 천상병 시인과 중광 스님, 유양옥 선생과 사진작가 김영수, 화가 이대원·권옥연·송수남 등 많은 이들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이제 그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그런 세월이 무상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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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 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학생들과의 수업은 힘들다. 그들은 두꺼운 종이책 자체를 꺼린다.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요약·정리하는 PPT로 진행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생들의 발표도 PPT로 이루어진다. 대개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정보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복사해서 짜깁기로 이룬 것들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책의 갈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를 톺아보는 게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들을 그대로 옮겨와 읽어대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는 일은 곤혹스럽다. 힘겨운 독서와 고단한 사유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의 과제는 마냥 건조하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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