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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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존재를 비추는 장소 마을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이층 목조 주택이 눈에 띈다. 전 일본 총리 호소카와 가문이 일제강점기에 춘포의 농지를 매입하며 지은 농가다. 시골집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그 집의 이국적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춘포의 또 다른 이름, 대장촌이 떠오른다.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본인 지주들이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지우려 했지만,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의 입에 붙은 건 춘포가 아니라 대장촌인 듯하다. 한 장소에 새겨진 역사는 언어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내게도 그런 언어가 있다. 다라이, 땡깡, 요지, 단도리 같은 일본어. 할머니에게서 배운 말이다. 의식적으로 지웠으나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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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저무는 시간에 춘포, 한글로 풀이하면 봄개, 봄 나루라는 뜻이다. ‘봉개’라고도 불린다. 시간에 돌의 모서리가 닳는 것처럼 사람의 말도 부드럽게 닳아져 ‘봄’이 ‘봉’이 되었다. 봄이 지나는 길, 혹은 얼었던 강물이 녹아 봄이 되어야 물길이 열리기에 봄개라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나루터, 춘포에는 평야와 만경강, 뱃길이 있다. 풍요의 흔적이자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수탈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보낼 쌀을 실어 나르던 간이역이 그 증인이다. 지금은 폐역이 됐다. 뱃길은 닫혔고, 봉개는 잊힌 이름이 됐다. 나는 춘포에 산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를 ‘마을 끝에서 프랑스 남자와 살면서 개를 끌고 다니는 여자’라고 부르신다. 인디언식 이름을 연상시키는 이 표현이 다소 투박하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 내가 살아가는 장소만큼 중요한 게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