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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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비에 지지 않는 것 장마다. 올해도 폭우가 예상된다는 예보에 겁부터 난다. 작년 이맘때쯤, 반려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비가 샜다. 천장에서 주룩주룩. 할머니 소유였던 가게에 카페를 차린 지 3년이 되어간다. 엄마가 평생 장사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람으로 치면 일흔 살 노인쯤 될 것이다. 한때는 번화가의 중심이었고, 이제는 구도심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늙어가는 곳. 사람도 공간도 노화는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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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초록의 이름을 부를 때 밤새 비가 요란하게 내렸다. 마당에 심은 상추, 오이, 가지가 걱정돼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짙은 풀 냄새가 달려들었다. 지난밤에 쏟아진 게 비가 아니라 초록이었을까. 텃밭의 풀도 나무도 색이 깊어졌다. 초록은 밝기가 아니라 깊이로 말해야 하는 색이다. 광합성의 농도가 아니라 잎의 생애가 반영된 색. 빗물에 떠내려온 것들을 치우러 대문 밖으로 나갔다가 이웃집 할머니 밭으로 들어가는 동네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얼마 전까지 할머니 손에 들려 있던 호미를 들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아흔 노인이 평생 손에 쥐고 있던 호미를 내려놓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아는 듯하다. 할머니 텃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기 밭처럼 돌본다. 한마을에서 같은 계절과 풍경을 오래 나눈 사이란 그런 것일까. 자주 이사를 했던 내게 ‘이웃’이라는 말은 여전히 속뜻을 알 수 없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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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봄에 알게 되는 것 지난주에는 퇴근길에 차가 막혔다. 일 년에 한 번, 벚꽃이 만개할 때 겪는 일이다. 만경강의 벚꽃을 보려고 몰려든 이들이 차창을 열고 천천히 달렸다. 차를 세우고 내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벚나무 아래 해사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들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나. 그 길에서 조급한 건 꽃잎뿐이었다. 왜 그리 빨리 떨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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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강의 울음 겨울 끝에는 무리 지어 나는 새들과 함께 걸었다. V자를 그리며 비행하던 새들은 만경강 주위를 몇번씩 돌았다. 떠나기 전 비행 연습이자 집단 결속의 몸짓이라지만 사람의 눈에는 영락없는 작별 인사로 보였다. 며칠 전에는 무리에서 낙오된 세 마리의 새를 봤다. 그게 마지막이었을까. 이제 철새가 보이지 않는다. 만경강은 철새들의 겨울 집이다. 겨울에는 사람보다 새가 많고, 사람보다 새가 더 크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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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존재를 비추는 장소 마을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이층 목조 주택이 눈에 띈다. 전 일본 총리 호소카와 가문이 일제강점기에 춘포의 농지를 매입하며 지은 농가다. 시골집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그 집의 이국적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춘포의 또 다른 이름, 대장촌이 떠오른다.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본인 지주들이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지우려 했지만,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의 입에 붙은 건 춘포가 아니라 대장촌인 듯하다. 한 장소에 새겨진 역사는 언어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내게도 그런 언어가 있다. 다라이, 땡깡, 요지, 단도리 같은 일본어. 할머니에게서 배운 말이다. 의식적으로 지웠으나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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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저무는 시간에 춘포, 한글로 풀이하면 봄개, 봄 나루라는 뜻이다. ‘봉개’라고도 불린다. 시간에 돌의 모서리가 닳는 것처럼 사람의 말도 부드럽게 닳아져 ‘봄’이 ‘봉’이 되었다. 봄이 지나는 길, 혹은 얼었던 강물이 녹아 봄이 되어야 물길이 열리기에 봄개라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나루터, 춘포에는 평야와 만경강, 뱃길이 있다. 풍요의 흔적이자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수탈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보낼 쌀을 실어 나르던 간이역이 그 증인이다. 지금은 폐역이 됐다. 뱃길은 닫혔고, 봉개는 잊힌 이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