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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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 “이곳에는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얼마 전 견학 갔던 한 요양원 건물 입구 옆에 작은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요양원 면회객들이 이용하는 정류장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버스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곳은 치매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이른바 ‘가짜 버스정류장’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는 치매 돌봄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치매가 진행되면 많은 환자들이 목적 없이 배회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때 직원들은 환자를 나무라는 대신 “저기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잠시 기다려 보시겠어요?”라며 정류장으로 안내한다. 벤치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조금 가라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가 조금 늦어지는 것 같으니 안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하면 많은 환자가 자연스럽게 시설 안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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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생의 사계절 “당신 덕에 나 인생 만날 봄이었습니다.” 울며 웃으며 몰아봤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주인공 오애순의 시 구절이다.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이 드라마는 각자의 속도로 삶의 계절을 건너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꽃이 만개하며 설렘을 주는 봄,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 결실을 맺으며 붉게 물드는 가을, 그리고 찬 바람 속에서 대지가 숨을 고르는 겨울까지. 그렇게 드라마 속 인물들이 나이 들어가며 건너는 각자의 계절은 우리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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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새해, 다시 미생의 마음으로 “내 삶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래서 미생이다.”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 제작돼 큰 사랑을 받았던 <미생>의 명대사이다. 바둑에서 미생(未生)은 아직 완전히 살아 있지 않은 돌을 뜻한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다. 주인공 장그래는 완생을 꿈꾸지만, 현실 앞에서 자주 흔들리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그래에게 마음을 내주며 공감한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실패와 불안, 망설임이 우리 일상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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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라떼는 말이야’ 들여다보기 “라떼는 말이야, 토요일에도 학교 갔지.” “내가 왕년에는 이 동네에서 제일 잘나갔지.” 회식 자리에서, 친지 모임에서, 혹은 TV 드라마에서 우리는 이 ‘라떼 혹은 왕년 서사’를 자주 듣는다. 듣는 이에게는 꼰대의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말하는 이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 같은 말이 되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세대의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 풍자는 유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대 간 긴장을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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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시길 바랍니다.” 83세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자신의 부고장에 적은 문구다. 그는 지난 5월 강릉의 한 해변에서 연둣빛 원피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영화 속 장례식 장면 촬영을 겸해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치렀다. 이른바 ‘생전 장례식’이었다. 살아 있을 때 스스로의 삶을 배웅하는 장례식이라니 낯설지만 의미 있는 아름다운 발상이다. 작은 상여를 들고 해변을 걸으며 뒤따르는 지인들은 북과 꽹과리를 치며 축제처럼 그를 보냈다고 한다. “내 삶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어 행복했다”며, “웃으며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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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불안과 기대 사이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주인공 슈미트. 그는 조용히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40여년간 다닌 보험회사에서 마지막 퇴근이다. 동료들의 환송회도 마치고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도 끝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짓누른다. 익숙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한편으로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나의 시간을 가진다는 기대감. ‘불안과 기대 사이’, 은퇴자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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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마음 할아버지는 아내의 생일에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다. 새벽에 찾은 꽃집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결제하지 못한 채 꽃을 들고나왔다. 할아버지는 영업시간이 되어 다시 찾아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현금을 지불했다. 신문 기사에서 읽은 이야기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무인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커피 한 잔만…”이라며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한 노부부의 사연이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은 노부부는 만족해했지만, 나는 편리한 기술 뒤에 숨겨진 고령자의 불편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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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상현실로 떠나는 시니어들의 설레는 여행 “다리가 떨릴 때 말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 가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설렘이나 열정이 있을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면 이미 늦었다는 뜻일 것이다. 혹은 망설임과 두려움에 다리를 떨지 말고, 가슴이 뛸 때 과감히 도전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행동의 타이밍과 동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나는 여행이 주는 설렘을 좋아한다. 어릴 적 소풍 갈 때면 너무도 설레어 잠 못 이루곤 했다. 나는 여행 갈 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 또한 즐긴다. 여행 책자, TV 속 여행 프로그램이나 여행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며 마치 그곳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의 마음은 어릴 적 소풍 때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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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다양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취미가 별로 없다. 다양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속에서만 살았다.” 신구 원로배우가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꺼낸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실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취미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인생 후반기에 취미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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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침에 우리를 일어나게 만드는 것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일본 노인들이 지은 센류(일본의 정형시)가 실린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속 한 문장이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살짝 짠하고 저릿해진다. 나이 들어 은퇴 후 직장도 가족도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문득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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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노년에 쓰는 ‘손주에게 손편지’ 아흔 살의 모모요 할머니는 홀로 도쿄 여행을 떠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할머니의 버킷리스트에는 ‘호텔에서 혼자 자기’ ‘동물원에 가서 판다 보기’ ‘도쿄돔 견학하기’ ‘디즈니랜드에서 놀기’ 같은 소망들이 적혀 있었다. 고령에도 하나하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책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에 소개됐고, 독자들은 ‘저 연세에 대단하다’ ‘나도 해봐야겠다’는 감탄과 함께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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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몇살부터 노인인가요? “우리 엄마가 환갑이 넘으셨는데 이제 노인이셔…” TV 드라마 속 딸의 말을 듣고 문득 궁금해진다. ‘예순이면 노인일까?’ ‘그럼, 환갑이 넘었으면 노인이지.’ ‘아니야, 요즘은 70대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다면 도대체 몇살부터 노인일까? 몇해 전 방영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여든을 앞둔 주인공들이 웃고, 싸우고, 여행하고, 사랑한다. 배우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열정적인 연기를 펼쳐 74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했다. 밀라논나, 박막례, 김칠두 같은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만의 감성과 철학으로 삶을 멋지게 즐기며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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