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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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핵잠수함,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05년 3월16일, 녹색연합은 진해 소모도 해군기지에서 미군의 핵추진잠수함 로스앤젤레스호(SSN-688-LA)를 촬영했다. 이 사진을 근거로 녹색연합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위반을 고발했다. 지금은 역사적 사실로만 기록되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 공동선언’(1992년 체결)은 당시만 해도 엄연한 약속이었다. 더불어 핵확산금지조약과 핵 군축 결의, 국제원자력기구 감시 등 국제적 이행체계를 미군 주도로 거슬렀다는 점은 심각한 일이었다. 당시 녹색연합의 문제 제기에 한미연합사와 국방부는 “잠수함이 정박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비핵화 선언 위반, 국제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고만 밝혔다. 이 사안은 그해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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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이런 실용이라면 불용해야 실용만 있는 정치라면 ‘그 정치’는 불용해야 마땅하다. 행정은 기술적 효율성과 절차에 집중하고, 정치는 공동체의 방향과 가치를 설정하는 일이라고 막스 베버는 규정한다. 해나 아렌트가 강조한 공적 영역과 행위 개념에서도 정치가는 공론장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가는 불확실한 가치의 영역을 개척하며 공공성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고, 행정가는 정해진 틀과 절차 안에서 효율을 추구하는 역할에 머문다. 결국 여론과 효율, 절차적 규정만을 고집하는 ‘실용주의자’라면 그는 정치가가 아닌 행정가다. 지독한 실용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대통령이라면 안타깝게도 우린 걸맞은 자리에 걸맞은 사람을 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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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명’과 ‘마리’에 관한 논쟁 사람을 셀 때는 ‘명’, 동물을 셀 때는 ‘마리’라고 쓰는 것이 우리말의 통례다. 언어습관이지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위계의 시작이기도 하다. 동물권 운동가들은 이런 일상 언어에 내재한 종 차별적 요소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물론 여기서부터 논쟁은 뜨거워진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위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 즉 인간과 동물에 대한 차별적 언어습관은 처음부터 자연스럽다는 논리에 다수는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논쟁의 본질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어떤 가치에 관한 대화이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하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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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사육곰 문제, 정부가 나서라 2021년 겨울, 경기 용인의 한 농가에서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했다. 철창 밖 세상으로 뛰쳐나간 새끼 곰들은 대부분 포획되거나 사살됐다. 평생 갇혀 지내다 만난 철창 밖 공기는 곰들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안겼다. 1981년 정부는 웅담 채취용 곰 사육 산업을 법제화했다. 그렇게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 주도 사육곰 산업이 이어져 왔다. 현재 곰을 웅담 채취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이 합법인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그나마 지난해 말 국회는 2026년부터 사육곰의 소유·사육·증식·도축을 전면 금지하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육곰 산업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 시행 전인 올해 말까지 상당수 곰이 위험하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등에서 사육곰을 농가의 ‘사유재산’으로 규정해 국가 예산을 들여 매입하거나 보호하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마지막 남은 곰들을 살려낼 비용과 책임을 녹색연합 같은 민간단체에 떠넘기는 형국이다. 민간에서 모금 등 방법으로 매입해 오면 보호시설은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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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농성장의 태연한 일상 7월, 40도를 기록한 반도는 안녕하지 못하다. 최대 전력 수요는 기록을 경신 중이고, 열기를 정면으로 대면한 노동은 끝내 생명을 앗아갔다. 가장 약하고 낮은 자리는 어김없이 위태로운 시절이다. 악화가 악화를 강화하는 일상이 계속된다. 그런데 이 위기의 폭염에도 길바닥과 강변에서 태연한 이들이 있다. 세종보의 금강변에서, 전북환경청과 용산 대통령실 앞 길바닥에서 농성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일상을 버린 일탈이 어느새 일상이 된 그야말로 농성장의 태연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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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에너지부? 문제는 환경부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재선을 노리던 조지 H W 부시에게 면박 주던 빌 클린턴의 이 말은 널리 퍼진 유행어 중 하나가 됐다. 아주 성공적이었던 당시의 선거 표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인용된다. 그런데 여전히 올바른 해법일까? 경제 우선의 당위가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2025년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성장’도 아니고 ‘개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생존’이다. 생존을 위한 해법을 풀어내야 한다. 그 해법에 성장과 개발은 후순위 중 후순위다. 하지만 여전한 타성, 토건 개발을 발전과 등치시키는 관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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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정치가 미래를 버릴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정치가 미래를 버릴지도 모르겠다. 기후를 말하며 기후를 배신하고, 전가의 보도쯤 되는 녹색성장은 성장의 독에 갇혔다는 자기 고백이다. 극한 가뭄과 홍수, 사스와 코로나 등 인수공통전염병, 그리고 산불까지 차고 넘치는 증거와 징후에도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인류의 파국을 예측하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아주 가뿐히 무시하면서 ‘지금은’이라고 외치고 ‘압도적인’ 지지를 호소한다. 다음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이재명 후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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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극우 정치와 지구위기 “민주주의가 나의 무지나 너의 지식이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되는 풍토가 퍼질 때,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장 큰 목소리일 뿐이다.” 20세기를 살다 간 미국 과학자이자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이다. 이 말은 2025년 현재를 뚜렷하게 관통한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난제 앞에 지성과 이성은 아무렇지 않게 조롱당하고 공격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은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고, 현실의 위기를 부정하거나 과학적 경고를 쉼 없이 깎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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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산천어 축제 윤리’ 다시 묻는다 “윤리를 말할 조건이 비판받는 이들의 희생에 기대 있다면 지역을 비판하고 재단할 권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끝맺음한 글을 봤다. ‘산천어 축제의 윤리를 묻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으로 화천 산천어 축제를 지방의 관점에서 풀어낸 글이다. 문화와 지식까지 수도권이 독점한 이 공화국에서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의 즐길거리가 아니라면 이 겨울의 보릿고개를 지방은 어떻게 넘어야 하느냐는 필자의 호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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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찬핵, 반란의 시대 불법 계엄으로 시작된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파는 이념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고, 실체적 진실은 가짜뉴스에 포위돼 있다. 대통령에게 ‘애국’과 ‘태극기’로 호명되는 극우는 법치의 근간을 휩쓸어 부수자고 거리낌이 없다. 공당의 정치인들이 부추기는 혐오도 광장의 끄트머리에서 중심으로 진격해 시민의 일상을 위협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란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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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위기 그 자체인 트럼프 “몸을 낮추어 온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멈추겠다.” 제갈량의 출사표다. 충의를 상징하는 고사로 종종 인용된다. 그리고 부디 잊혀야 할 출사표가 여기 있다. “취임 첫날은 독재자가 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출사표다. 어찌 감히 공공연하게 독재자를 자임할 수 있을까. ‘첫날’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을 넌지시 고백하는 것이리라. 여하간 트럼프의 공언은 현실이 되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행정명령 중 절반에 가까운 78개를 철회하는 내용을 포함해 4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면면을 살펴보면 환경, 인권, 다양성 등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의 가치를 깡그리 내팽개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