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음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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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누적 K팝이 특별한 이유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이 ‘21세기 최고의 곡 250’을 뽑았다. 뉴진스의 ‘Hype Boy’, 소녀시대의 ‘Gee’,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등이 포함됐다. BTS(사진)가 빠질 수 없다. 그들의 곡 ‘봄날’은 K팝 중 최고 순위인 30위에 올랐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도 진부할 만큼 K팝은 대세다. 그러나 K팝을 장르로 인식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아니다. K팝은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검증된 모델을 따르지 않고, 그것을 전복한 형태로 거대한 성과를 일궈냈다. -
반복과 누적 절대는 절대로 없다 연말이면 하나둘 등장하는 게 있다. 결산 리스트다. 미디어가 많아진 만큼 리스트는 1년 내내 여러 주제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그중 갑론을박이 특히 격렬한 리스트가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밴드는?”이다. 이 리스트에서 최소 5위 안에 들 자격이 있는 밴드를 떠올려본다. 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이라면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존재였던 만큼 레드 제플린은 대중문화에서 단골 소재로 쓰였다. 1973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대표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음악평론가 지망생이다. 그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에 발탁되어 어떤 밴드의 투어에 참여한다.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온다고 하자 한 멤버가 고함친다. “‘롤링 스톤’이야! 에릭 클랩턴을 무시하고, 레드 제플린을 깐 놈들이라고!” 실제로도 그랬다. ‘롤링 스톤’의 1969년 리뷰를 보면 레드 제플린에 대해 “너무 지루하고, 과하게 반복적이다. 들을 가치가 없다”고 쓰여 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음반이 별 5개 만점이다. -
반복과 누적 그가 팝의 왕일 수밖에 없는 이유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 예고편(사진)이 공개됐다. 예고편으로 단언하긴 어렵지만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느낌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조카인 자파 잭슨이 주연을 맡았다. 예고편에 따르면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잭슨 파이브 리드 보컬이던 어린 시절부터 1982년 앨범 <스릴러>로 팝의 왕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유명한 ‘스릴러’ 뮤직비디오도 잠깐 나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보는 음악이라는 개념을 완성한 걸작으로 인정받는다. -
반복과 누적 가끔은 로그아웃을 하자 ‘어떻게 새 음악을 찾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매일 최소 10만곡이 업로드되는 세상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저 인간은 어떻게 보석을 발견할까 궁금할 수 있다. 내 대답은, 음악 관련 콘텐츠를 부지런히 직접 찾아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스트리밍 큐레이션을 사용하지 않는다. ‘취향이라는 감옥’에 갇히길 원치 않아서다. 물론 과거에도 큐레이션 비슷한 게 있었다. 나는 잡지 리뷰를 보고 앨범을 구입하거나 친구 추천을 믿고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주체는 ‘나’였다.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바탕을 곱씹는다. 실패할 경우까지 내가 책임져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
반복과 누적 무한히 뻗어나가면서 해체되는 ‘슈게이즈’라는 장르가 있다. 영어로 Shoegaze. 신발을 보면서 연주한다는 뜻이다. 음악을 좀 듣는 편이어도 “뭐지?” 싶을 것이다. 슈게이즈는 근 몇년간 한국 인디에서 가장 주목받은 장르다. 최신은 아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영국에서 짧은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소수 장르로 살아남았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 보컬은 꿈결을 거니는 듯 흐릿하고, 최면적이다. 기타는 소음 다발을 들려주는데 바다처럼 ‘쏴아아’하고 퍼져나가는 동시에 사라진다. 달리 말하면 단단한 중심이 부재한 연주다. 하나의 소실점에 수렴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시점이 계속 출현하는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반복과 누적 모든 분류는 억압적이다 자주 강의를 나간다. 많으면 한 달에 서너 번,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다. 어느 날 불현듯, 내가 강의하기를 즐기는 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 일이 있다. 질문을 꼭 받는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도 질문 하나를 받았다. 기실,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장르 구분이 잘 안 돼요.” 장르는 도구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설명하기 위해 발명해낸 결과물이다. 물론 나도 장르에 목매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차이에 대해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학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장르를 명확하게 포착하고 싶어 로이 셔커의 <대중음악사전>, 딕 헵디지의 <하위문화>, 사이먼 프리스의 <사운드의 힘>, 한국 음악 평론가들이 공저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등의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
반복과 누적 기어코 설득하는 수밖에 33장인 동시에 1장이다. 만약 테일러 스위프트 없이는 못 사는 팬이라면 신보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사진)은 상당한 지출을 요구할 것이다. 1장의 음반을 33가지 버전으로 발매했기 때문이다. 지난 음반도 만만치 않았다. 25개였다. 불법은 아니지만,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앨범은 음악적 논쟁도 불러왔다. 과거로 회귀한 음악을 추구했지만, 평가는 일관된 찬사를 받았던 2020년쯤과 거리가 멀다. 차트 성적은 그와 별개로 신기록을 경신할 예정이다. K팝에서 배운 다종화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
반복과 누적 가을의 사운드트랙 가을이다. 음악 듣기에 안 좋은 계절은 없지만,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을 대표하는 곡은 무진장이다. 그중에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가 빠질 수 없다. 원래는 프랑스 음악이다. 이브 몽탕의 1949년 버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미국 작사가 조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붙여 발표했다.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 오리지널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조니 머서는 이를 아예 빼버렸다. 그래야 히트할 수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영어로 불리면서 이 곡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
반복과 누적 쓸쓸해서 더 잊히지 않는 서정 애정 깊은 뮤지션의 신보를 듣기 전, 주문을 외운다. 야발라바히기야는 아니다. 어차피 덩크슛 못한다. 그저 “음반이 좋기를” 하면서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써져야만 한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땔감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훌륭한 음악은 지금도 창조되고 있다. 매일 업로드되는 10만 곡 안에 멋진 음악이 없을 수 없다. 즉,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개인이 다 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주는 다행이다. 권나무가 신보 <삶의 향기·사진>를 냈다. 그가 쓴 앨범 설명을 요약해서 듣는다. “많은 게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감각합니다.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사이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반복과 누적 오늘만 사는 로큰롤 스타 1990년대 브릿팝 시대가 있었다. 블러와 오아시스에 스웨이드와 펄프를 합쳐 브릿팝 ‘빅4’라고 한다. 넷 중 앨범 판매량에 기반한 인지도 1위는 오아시스다. 국내 인기 역시 나머지 셋을 압도한다. 2006년 첫 내한 전, 노엘 갤러거와 일대일로 인터뷰했다. 오래전이라 희미하지만 하나만은 기억한다. “새 앨범 빼고 최고작은 무엇이냐?” 그는 이렇게 말했다. “1집.”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다시 한번 확인했다. “2집 아니고?” 그의 주장은 확고했다. “1집.” -
반복과 누적 카테고리화를 거부하다 한 남자가 거리를 걷다 인터뷰한다. “내 이름은 존 배티스트. 당신을 모르더라도 당신을 사랑해요. 왜냐하면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해야 하는 모습일 테니까요.” 세상 물정 모른다고, 너무 순진한 발언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진짜로 그렇게 한다. 그에게 뮤지션의 의무란 음악으로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다. -
반복과 누적 취향 이전에 습관 과학 저술가 스티브 존스가 주창한 ‘느린 예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영감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무르익고, 실현하려면 큰 노력을 요구한다. 피카소의 말과 어쩌면 일맥상통한다. 이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 크라잉넛이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1995년 8월경 홍대 앞 작은 클럽 드럭이 시작이었다. 1996년쯤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던 때를 잊지 못한다. 진짜 못했다. 어쩌면 펑크다웠다고 할까. 그런데 계속 기억에 남았다. 좌충우돌하는 에너지에서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의 역사가 30년 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그들이 세대를 뛰어넘는 록 찬가를 내놓고, 장수 밴드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